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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행단을 표식하는 은행나무 두 그루와 부처의 전당을 차지하는 쌍탑

by taeshik.kim 2023.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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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사진은 장흥 보림사 석탑이다. 보다시피 동서 쌍탑이다. 

탑파가 말할 것도 없이 인도 불교전통에서 비롯하나, 그것이 상륙하는 지점에 따라 끊임없는 변신을 꾀했으니, 예컨대 인도에서는 음양사상이 없다. 

그런 불교가 동북아시아로 침투하면서 그쪽 외피를 입게 되는데, 개중 하나가 인도에서 없는 음양오행, 특히 음양사상 영향을 짙게 받으니 그것이 시각화한 대표 증좌가 탑파를 쌍으로 만든다는 사실이다. 

이것도 한 시대 유행이기는 하지만, 살아있는 부처를 봉안하는 금당을 중심으로 그 전면에는 죽은 부처님 산소를 배치하는데 이것이 바로 탑, 스투파다. 

한데 동아시아는 독고다이를 증오한다. 반드시 음양사상에 따라 쌍으로 짝을 지어야 했으니, 이것이 신주로 넘어가서는 요새 한국 전통에서 조상 부부를 같이 지방에 쓰는 이유가 그것이고 합장분이 많은 이유도 그것이다. 

부처님 산소 스투파는 그 주전인 금당이 남향인 까닭에 그 전면 마당 양쪽에 세우게 되니 그리하여 동서탑이라 일컫게 된다. 

둘을 비교하면 해가 뜨는 쪽에 위치한 동탑이 양이요 해가 지는 서쪽에 위치한 것이 음이다. 

또 탑 자체도 모름지기 남자의 성기를 상징하니 하늘로 불뚝 솟은 이유가 그것이라, 그러면서도 이에다가 음이라는 요소를 가미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평면 개념에 반영한다.

하늘로, 공중으로 발기를 전제로 하는 층수는 반드시 홀수로 삼아 양을 반영하는 반면, 땅을 향하는 기단, 곧 공중에서 내려다본 꽂아들이는 평면 형태는 짝수로 삼아 자궁, 곧 음을 반영한다. 

층수가 홀수인데 반해 평면은 모름지기 짝수라, 사방 육방 팔방 그리고 원형이다. 혹 12방이 있기도 하다. 
 

이게 사진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성균관 문묘 남대문 앞마당 양쪽 은행나무가 섰으며, 대성전 구역 앞마당에도 또 한 쌍 은행나무 거수가 있다.

 
이 그랜드 디자인에 유가의 성전인 서원이나 향교 혹은 성균관에는 어떤 형태로 반영되는가? 

공자의 가르침을 배우는 이들은 금당 자리에 해당하는 지점에서 반드시 사당을 두니, 향교나 성균관의 경우 이를 대성전이라 해서 공자 이하 그 제자들 안식처로 삼고, 서원은 공자가 차지해야 하는 그 자리에다가 그 서원을 있게 한 내력의 주인공, 곧 작은 공자를 내세우게 되니 퇴계니 율곡이니 우암이니 하는 사람이 정좌한다. 
이 성균관 향교 / 서원 관계는 실상 동시대, 혹은 그 직전 불교의 우라까이라, 

사찰이 석가모니 중심 배치임은 말할 나위가 없거니와, 이것이 바로 향교와 성균관이라.

하지만 저런 언터처블 자리를 넘보는 자들이 등장하기 마련인데, 이걸 아예 대승불교에서는 문을 열어 버려 누구나 성불할 수 있다는 신학을 내세웠으니, 것과 마찬가지로 유가에서도 공자의 자리를 대체하는 대사까지 나오게 되니, 공자와 유리한 채 그들만을 내세운 전당이 필요했으니 그것이 바로 서원이다. 

이들 유가 성전에서 음양사상, 저 불교에서는 동서쌍탑을 고스란히 반영한 표식이 은행나무다. 

저들 유가 성전을 보면 거의 예외없이 대성전 앞마당 양쪽에 두 그루, 혹은 전체 전당 구역 앞마당 양쪽에 두 그루 은행나무가 섰음을 본다. 
 

전주향교인데, 은행나무가 고사하는 등의 변란이 있으면 꼴랑 한 그루만 살아남기도 하지만, 본래는 쌍이다.

 
이는 공자의 가르침을 배우는 전당을 행단杏壇이라 부른 데서 말미암는다. 이 행이 살구인가 은행인가 하는 해묵은 논란은 이 블로그에서도 수없이 다뤘으므로 생략하거니와 

아무튼 이곳이 행단이라는 표식으로 은행나무를 심는데, 하필 그 은행나무를 쌍 그루로 앞마당 동서 양쪽에다 심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이 통합적 이해가 있어야 하며, 내가 이를 관통하는 분모를 그랜드디자인이라 부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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