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심히 보면 이런 학제간 통섭의 길을 걸은 사람들은 제레드 다이아몬드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이아몬드의 글은 필자가 아주 높게 평가한다.
대중서를 쓰기 이전 장기간에 걸친 기초의학자로서의 경륜이 잘 녹아 있어 책 수준이 아주 높다.
반면 유사한 기조의 책이지만 최근 각광을 받는 유발 하라리는 명성에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이다.
일단 하라리 역시 학제간 통섭을 지향하지만 자연과학이나 인류학 분야 스토리를 제대로 소화시킬 역량이 모자라는 것으로 보인다.
다분히 언론이 만든 스타라고 생각한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학제간 통섭 수준이 높은 사람으로 마이클 크라이튼 Michael Crichton (1942~2008)을 들 수 있다.
하버드 의대 출신 의사로 일찍부터 작가 길을 걸었다.
이 사람은 대중 작가로 유명해서 작품들이 거의 영화화, TV드라마화를 거쳤지만,
실제로 영화 드라마보다 책을 읽어보면 그 수준이 아주 높다는 것을 직감하고
문제의식이 상당한 수준이라는 것을 느낀다.
예를 들어 주라기 공원.
헐리웃 영화에서는 공룡과 사람들이 벌이는 사투극으로 나왔지만 (이것도 뭐 나름 괜찮다)
실제로 책을 읽어보면 주라기 공원은 그렇게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에서는 탐욕스런 기업가와 과학자가 분란의 원인으로 지목되지만,
책에서는 그런 개인의 탐욕은 부차적인 문제로 주라기 공원의 멸망은,
자연을 백프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 인간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이 실제 현실과 괴리가 생기면서
그 노이즈가 점점 증폭되어 전체 구조가 붕괴하는 것으로 그린다.
이를 역사에 적용하면 완벽히 설계된 국가, 사회일수록
그 사회나 국가가 완성되는 그 순간부터 붕괴가 시작된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이다.
인간이 디자인한 구조물은 현실에 적용하면 반드시 안맞는 부분이 나오기 때문에
어딘가 그 헛점을 인정하는 전제를 놓고 사고하지 않으면 구조물은 매우 취약해진다는 것.
그것이 이 사람의 바닥에 깔린 생각이라 할 수 있다.
유발 하라리는 통섭의 깃발을 들고 자연과학과 역사학 사이를 누볐지만
정확히 그 의미를 이해하고 있는 것 같지 않은 반면,
크라이튼은 겉으로는 헐리웃 드라마의 옷을 입고 있지만
그 내부의 사고의 수준은 아주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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