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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노년의 연구

호적과는 또 다른 검안 서류

by 신동훈 識 2025.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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官에서 초검한 시체검안 문서 한 점으로 서두 부분 갈라짐과 말미 수결부분 훼손이 있으나 본문은 온전하다. <크기> 76×31cm. 출처 한옥션.

 

필자는 60세 이후의 작업으로 

조선시대 검안서류에 대한 의학적 분석을 하고 있는 바, 

현재 보는 호적에 대한 개략적 검토도

이 분야 전공자도 아닌 필자가 여기서 뭐 대단한 성과를 내고자 함이 아니라, 

검안서류에 붙어 있는 관련자의 취조 내용에 대한 이해를 얻기 위해서이다. 

조선시대 검안서류라고 하지만 

사실 남아 있는 것은 대부분 구한말의 것으로

19세기 최후기 및 대한제국시대에 해당한다. 

이 검안서류를 보면 죽은 이에 대한 검안 기록 외에 

그 앞에 사망 사건과 관련하여 피의자와 관련 증인의 취조 내용이 들어 있는데

이 부분이 사회사 혹은 미시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어

이미 훌륭한 연구자가 많이 다루었으므로 그에 대해서는 따로 쓰지 않겠다. 

필자 역시 검안서류에 대한 의학적 검토를 함에 있어

이 내용에 대한 이해를 위해선 조선시대 사회사 전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였으되, 

그를 위해선 남아 있는 조선시대 호적에 대해 한 번 보는 게 좋다는 조언이 있어 

조선시대 호적과 그와 관련된 족보를 들고 

대조하며 읽어갔는데 의외로 큰 성과가 있었다. 

각설하고-. 

현재 남아 있는 조선시대 호적의 시계열 자료는 

대개 1870년대가 마지막이다. 

물론 그 이후에도 호적 자료는 있을 수 있겠지만

연속된 시계열 자료로는 그 시점이 마지막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 호적 자료의 최후기보다 약 한 세대 정도의 갭이 발생한 후 

검안서류의 사회상이 펼쳐지게 되는데

필자의 느낌으로는 검안서류가 그리는 조선사회가

1870년대 조선사회와는 또 다르다는 느낌을 받는다. 

바야흐로 구한말을 넘어 식민강점기의 시대가 시작되기 직전인데, 

또 다른 변화가 그 사이 한세대 동안에 있었던 것 같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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