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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경주를 다녀오고선, 그러고 또 어쩌다 황룡사 터를 찾고선 흔연欣然해져 넋을 잃은 작가는 말한다.
"겨울이고 저물녘이라 더 그랬을 것이다. 봄이나 여름이나 가을이고, 새벽이나 한낮이라도 나름의 정취는 고스란했을 테다. 예술품에 '완벽하다'는 말이 쓰일 수 있다면 석굴암에 그러할 거라 했는데, 폐허에 '완벽하다'는 말을 쓸 수 있다면 황룡사지에 그럴 것이다."
그러면서도 못내 독자 혹은 청중이 믿기지 못한 듯 "그냥 가보시라, 황룡사지, 그토록 위대한 폐허"를 부르짖는다.
무엇이 이토록 그를 매료했을까? 그는 말한다.
"화려했던 과거를 되짚을수록 현재의 폐허는 허무로 깊어진다."
상술하기를 "거대한 초석들 위에 세워졌을 거대한 기둥은 온데간데없다. 사라진 영화, 사라진 신전 앞에 머리를 조아릴 필요는 없다."
그러면서 왜 그 자신은 머리 조아림을 넘어 갖은 아부를 퍼부어댈까?
황룡사 터는 그런 데다.
저 대목을 마주하고선 작가한테 기별을 넣었다.
"작가야, 당신 황룡사 터에서 일몰은 안 봤제?"
"녜. 저물 무렵에 갔어요. 한데 왜요?"
"거기서 일몰을 봤다면 니 죽었을 거다, 황홀해서. 살아났다 해도 갖은 찬사로 오도방정 떨었을 텐데, 그 오도방정이 없어."
황룡사 터를 내세워 경주 찬양가를 부른 김별아 작가 신작 《월성을 걷는 시간》(해냄, 2022. 8)을 마주하고선 새삼 경주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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