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밀교진언종 쿠카이空海는 굉장히 유명하다.
필자가 배우는 일본문화 윤독반에서 발표를 준비하다 알게 된 사실인데,
일본 불교계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밀교진언종의 사실상 개조이기 때문에 그가 처음 일본에 밀교를 들여와 이식한 과정이 굉장히 미화해 있다.
일본측 설명에 의하면, 그는 중국밀교의 정통을 이은 혜과의 사랑받는 제자로 그가 죽었을 때 구카이는 친히 스승 혜과를 기리는 비문을 짓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구카이는 혜과를 만난지 반년만에 혜과恵果가 죽었다. 쿠가이는 혜과의 제자가 맞기는 할까? 겨우 5개월만에 "스승"이 죽었는데?
필자는 그가 스승 혜과의 비문을 제자를 대표해서 지었다는 그 전승도 의심한다.
사실 이 비문은 전해오기는 하는데 내가 아는 한, 이 비문 출전은 구카이 개인 문집이다.
고대 일본의 유명인사들은 행복하다. 한 것에 비해 저렇게 칭송받으니.
쿠가이가 일본으로 돌아갔을때 밀교가 뭔지 알기나 했을지도 의심스럽다.
혜초-.
생각보다 엄청난 사람이다. 중국에 밀교승려가 처음 들어온 바로 그해에 혜초는 밀교에 입교하며 진리를 찾아 인도로 간다.
중국으로 돌아와 혜초는 죽을 때까지 중국에서 머물며 불경을 번역했다. 그는 밀교가 중국에서 처음 뿌리 내릴 때 핵심적 역할을 한 사람이다.
구카이 따위와는 비교가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혜초는 지금 국제 여행가 배낭족 비스무리하게 평가 받고 그 뿐이다.
혜초는 후손들이 못났을지 아닐지 신경도 안썼을 것 같기도 하지만, 아마 혜초가 일본 태생이라면 지금보다는 훨씬 유명할 것이다.
*** Editor's Note ***
일본어 표기가 항상 문제라, 필자가 말하는 저 승려는 공해空海라, 그 표기는 공해라 해야 그 의미가 확연히 드러나지 구카이 혹은 쿠카이라 하면 그 의미가 우리한테는 쉽사리 전달되지 않는다. 텅빈 바다. 딱 불교 냄새 확연한 이름이다.
물론 이 空海, 곧 くうかい(이것도 필자 쿠카이 라 해야지 현행 외래어 표기법이 경음 격음은 경멸해서 구카이가 되고 만다만) 헤이안시대平安時代 초창기 일본 승려로 현재까지 알려진 그의 법명法名은 교해教海를 거쳐 여공如空을 지나 공해空海로 정착한다.
호가 따로 있어 편조금강遍照金剛이라 했으며, 죽고 나서 약 백년 뒤에 홍법대사弘法大師라는 시호를 받는다. 이런 까닭에 흔히 지금은 홍법대사弘法大師라 일컫는다.
출가 이전 속명은 좌백진어佐伯眞魚(사에키 노마오, さえき の まお).
연력延暦 23년(803), 견당사遣唐使에 포함되어 중국으로 건너가 유학생활을 시작했으며, 영정永貞 원년(805) 2월에 장안 서명사西明寺로 들어가 장안 생활을 시작했다.
이때 그가 배우거나 교유한 승려가 예천사醴泉寺에 머물던 인도 승려 반야삼장般若三蔵이다. 그에게서 밀교를 배운 모양이다.
그해 5월 밀교 제7대조로 평가되는 장안 청룡사青龍寺 혜과恵果를 방문하고는 이후 약 반년간 스승으로 섬겼다. 어차피 유학승은 속성 코스라 공해는 일사천리로 각종 코스를 밟는다.
같은 해 12월 15일, 혜과恵果가 60세로 입적하자 이듬해 원화元和 원년(806) 1월 17일, 공해가 모든 제자를 대표해서 혜과의 업적을 현창하는 비문을 기초했다 하는데, 바로 이 대목 의문을 필자는 지적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그해 3월 장안을 출발해 다음달에 월주越州에 이르러 4개월을 빈둥빈둥하다가 8월에 명주明州를 출발해 귀국길에 오른다.
잠깐이지만 중국에 다녀왔으므로 당시 이런 유학 이력은 그 출세를 보장하는 자격증과 같았으니, 이는 동시대 같은 길을 걸은 신라 승려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무렵 최치원은 유학생 출신 아주 저명한 승려 비문을 짓다가 울분을 토하게 된다.
"중국 유학은 대사나 내가 마찬가지인데, 대사는 야부리로 세상을 호령하시는데 왜 저 같은 놈은 미관말직으로 대사님 같은 사람들 비문이나 짓고 있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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