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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흑판승미黑板勝美, 고문서학과 고고학의 만남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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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친구가 흑판승미黑板勝美..쿠로이타 카츠미(현행 외래어표기법상으로는 구로이타 가쓰미)다. 1874년에 태어나 1946년에 향년 73세로 졸했다. 도쿄제국대학 출신이나 늦은 나이에, 아마 서른살인가에 대학을 졸업했다.

그의 업적은 초인 그 자체다. 박사학위 논문이 고문서 양식론이다. 그는 일본 고문서학의 아버지다. 사료 정리에 혼신을 쏟았다. 제도로서의 역사학과 제도로서의 문화재정책을 수립한 일등 공신이다. 미친 듯이 일했고 미친듯이 써제꼈다. 열성적이었다.

자비로 유럽 문화재 현장을 시찰했다. 이집트를 보고는 고고학 겸업을 선언했다. 혼자 배운 고고학을 실현할 현장을 찾다가 마침내 조선에 상륙해 지산동 무덤을 파고 능산리 고분을 팠다. 그의 발굴보고서는 그래서 동시대 세키노 사단의 그것과는 달리 무척이나 디스크립티브하다. 세키노의 그것이 현미밥을 씹는 기분인데 견주어 그의 보고는 기자의 기사 스타일이다.



그 열정은 결국 비참한 말로를 빚었다. 죽기 십년 전..그때도 현장 조사 중이었으니 쓰러져 영영 일어나지 못하고 십년이나 병상에 쓰러졌다가 죽었다.

그의 사관은 말이 많고 그 역시 역사학을 국가의 종속물로 만들었으나 학문에 대한 열정은 그야말로 활화산이었다. 이런 미친 학도를 나는 내 세대 내 주변에서 만나고 싶다.

(2017.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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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이 지네들만이 고고학을 한다 흔히 생각하나, 모든 학문은 실상 고고학이다. 내가 생각하는 고고학 핵심 혹은 근간은 층서학이다.

그 점에서 고문서학이야말로 고고학이라는 관점에서는 고고학 그 자체다. 고문서를 조사하는 그 과정 하나하나가 트렌치 파서 조사하고, 그걸 토대로 본발굴에 돌입해서 하나씩 층서 layer를 벗겨가는 과정이 고고학 딱 그것이다.

왜 고문서학 하는 사람이 고고학을 병행했는가? 내가 생각하는 고리는 바로 이 두 학문의 상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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