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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말부터 18세기 말까지는 숙종-영조-정조로 이어지는 세기다.
이 시대를 지배한 세 왕은 어쨌건 한국사에서 명군으로 불리는 분들이다.
조선이 나름의 중흥을 이루어 인문의 부활을 가져왔다는 시기이다.
하지만 흥미로운 부분은 이 시기야말로 일본과의 격차가 크게 벌어지기 시작한 때라는 점 역시 주목해야 한다.
이 시기 동아시아를 요약하자면 조선이 나름의 중흥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주변 국가의 발전은 더 빠른-.
그래서 19세기가 개막되면 이미 조선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물질적인 면이나 인문적인 면 모두에서 동아시아 2류 국가로 전락해 있었다.
특히 18세기가 중요하다.
영정조 시대를 화려한 문예부흥의 시대로 보는 분도 있지만,
사실 이 시기야말로 일본의 인문적 수준이 한반도를 최초로 압도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18세기를 우리가 잘못 읽은 가장 큰 이유가 뭔고 하면, 바로 숙종-영조-정조로 이어지는 세 왕의 명군론 때문이다.
이 분들이 명군이었냐 아니었냐는 다음 문제이고, 19-20세기 조선의 몰락-쇠락이라는 악성 고리는 이미 이 시기에 시작되고 있었다고 본다.
영-정조 시대 문예부흥론에 가려 우리가 그 사실을 잊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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