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쪽 주장을 보면 일본의 주자학 도입은 가마쿠라 시대부터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 시대에 이미 중국쪽에서 들어왔다는 것이다.
이런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주자학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다. 주자학은 주자의 글을 좀 얻어보았다고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자의 글은 어떻게 보면 간단히 얻어볼 수 있다. 왜냐하면 원대 이후 사서에는 주자의 주가 붙어 있어 그 것만 봐도 주자학에의 입문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도 사찰 등지에서 논어 맹자는 읽었기 때문에 당연히 따라 붙어 있는 주자 주를 접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 주자의 주를 읽는다고 해서 성리학에의 입문은 쉽지 않다. 주자학이란 그런 것이다.
만약 일본에서 하고자 하는 주장이 주자 주가 붙어 있는 사서가 언제 도입되었냐를 말하는 것이라면 주자 주가 일본으로 들어온 시점을 들어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주자학이라는 것은 입도의 문이 참으로 험난하여 이해하는 데 시간이 무척 걸리는 학문이다.
한국의 경우에도 성리학의 어렴풋한 편린은 언젠가도 썼지만 무려 고려시대 전기 최충의 사학에 그 흔적이 나타난다.
이 시기에는 분명히 북송 유학의 흐름에 공명한 흔적이 보이지만 이런 흔적만으로 고려에 성리학이 이해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한국사에서 명실상부한 주자학 전통의 시작은 누가 뭐래도 여말선초의 유학자들이다.
이들에 의해서 주자학이 본격적으로 연구가 시작되었는데 이로부터 이 주장이 완벽히 이해하는 데까지 무려 200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 이해의 최종산물이 바로 퇴계와 율곡이다.
일본도 같은 잣대를 대고 주자학 도입을 이야기 하자면 당연히 임란 이후이다.
그 이전에도 주자의 주를 접할 수야 있었겠지만 이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본다. (이는 지금도 사서를 배우는 사람들 사이에서 볼수 있는 현상이다. 성리학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사서의 주자 주를 읽으면 매우 모호하고 추상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사실은 이 주자 주는 매우 정밀한 철학체계이다. 들어가는 문이 좁고 어려울 뿐 일단 들어가면 매우 편안한 철학체계라고 봐도 좋다).
결론적으로 일본이 주자학을 본격적으로 그 사상과 철학을 연구하기 시작하여 그 학풍의 전통이 본격적으로 내려가기 시작한 것은 임란 중 일본으로 피납된 전라도 영광 출신 유학자 강항의 전도에 의한 것이 맞다.
강항은 일본으로 피납된 후 그를 찾아와 성리학에 대해 문난하는 일본의 공족 후지와라 세이카를 일본 최초의 주자학자로 바꾸는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데,
사실 후지와라 세이카는 강항을 찾아오기 전에도 주자학을 전혀 모르는 상태는 아니었고 아마도 사서의 회암 (주희) 주를 통해서 대충 읽었지만 정확히 이해를 못하는 상태였던 것 같다.
이는 아마 후지와라 세이카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당시 일본의 식자층 대부분이 그런 상태였을 것이라 본다.
주자학이란 그런 것이다. 워낙 복잡하여 이해가 어려운데 그렇다고 해서 대충 아무말이나 떠든 것이냐 하면 그게 아니다.
매우 정밀하고 완성도가 높은 철학이라 한번 그 오의를 이해하면 주희가 설계한 지적 구조물에 감탄할 수 밖에 없는 것.
그것이 성리학이다. 따라서 주자학에서는 처음 입도의 길을 찾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주자의 주를 읽어 내려갈 때 반드시 나올 수 밖에 없는 질문에 답해 줄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조선시대 15-16세기 유학자들이 성리학을 둘러싸고 이루어졌던 수 많은 논변은 모두 그런 의문에 대한 토론이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강항은 바로 그런 후지와라 세이카의 질문에 응답하고 독학으로는 돌파하기 어려운 성리학 입문처를 제시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효과가 지대하여 마침내 후지와라 세이카는 승복을 벗어 던지고 (그는 유학자로 변신하기 전 승려였다) 일본 최초의 성리학자가 된 것이다.
따라서 따지고 보면 강항은 일본 성리학의 개조는 아니다. 그는 일본 성리학의 개조가 되는 후지와라 세이카의 어려운 질문에 계속 응답하고 의문을 풀어 이해의 수준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한 것 같은데, 이런 부분이 성리학 이해에 있어서는 정말 중요하다.
이때가 16세기 말-17세기 초이다.
바로 일본에 근세적 학문이 처음 열린 시기이며 후지와라 세이카가 성리학자로 재탄생한 순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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