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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18세기 탑골공원의 '폭소클럽' 백탑파白塔派

by taeshik.kim 2023.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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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골공원의 오늘


<18세기 한양의 '폭소클럽' 백탑파(白塔派)>
2005.10.05 10:23:01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1760년대 어느날 한양의 청성(靑城) 성대중(成大中, 1732~1812) 집에 여러 사람이 모였다. 한 참석자는 훗날 성대중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날 모임을 이렇게 회상했다.

"초정(楚亭, 박제가)과 냉재(冷齋, 유득공)는 악인연이라 / 기묘한 조롱과 해학으로 막상막하 다투네 / 오후에는 청장관(靑莊館, 이덕무)이 교감을 마치고서 / 소리 없이 걸어와서는 백중간에 서네 / 성흠(聖欽, 이희경李喜經)은 훤칠한 키가 마치 황새 같으나 / 콜록콜록 객혈하고는 끙끙대며 신음하네 / 바로 이 때 청성(靑城, 성대중)이 주인이 되어 / 드높게 앉은 자리 다른 산을 내려다보네 / 한 자리는 비워두고는 뚱뚱한 나를 앉게 하니 / 곤륜산 옥(玉) 사이에 괴석(怪石)이 끼어든 꼴이라 / 거리낌없이 돌아가며 희극을 하느라고 / 천상부터 지하까지 모든 일을 짓까부네."

이것이 조선후기 문학사에서 저 유명한 백탑파(白塔派) 문인들의 회합 모습이다.

여기서 말하는 "뚱뚱한 나'라는 화자(話者)는 자(字)를 자범(子範)이라 한 이기원(李箕元, 1745~?). 그는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의 재종형인 박명원(朴明源) 막료를 지내기도 하면서 연암이 주도한 당시 모임 그룹인 '백탑파'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이 '백탑파'는 '연암파'(燕巖派)라는 별칭이 있듯이 연암 박지원이 그 수괴적인 위치를 차지한 일군의 사교클럽이었다. 연암이 좌장격 역할을 하기는 했으나, 연암만이 유일한 리더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연암은 박제가나 유득공, 성대중 등과는 엄연히 '뼈다귀'가 달랐다. 뼈대깊은 명문 거족 출신인 연암이 서얼 출신이 대부분인 박제가 등과는 일단 혈통에서 격이 달랐으므로 자연 백탑파 모임에서 리더 역할은 연암이 맡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앞의 이기원 증언에서 독특한 점은 연암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탑골공원. 그 랜드마크인 석탑은 저 꼴로 만들어놨다.



최근에 공개된 그의 편지집까지 포함해 연암의 풍모는 이기원이 증언하는 다른 백탑파 일원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 풍긴다.

박제가와 유득공, 나아가 당시 모임을 익살스럽기 짝이 없이 묘사하는 이기원 등이 '개그맨'을 방불한 삶을 산 것과는 많이 다르다.

백탑파에 대한 학계의 연구성과는 적지 않으나, 실제 그들의 일상을 이처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자료는 일찍이 없었다. 명지대 안대회 교수가 연세대도서관 소장도서에서 찾아낸 이기원의 문집 '홍애집'(洪厓集)은 연암을 필두로 하는 백탑파 문인들에 관한 풍부한 실상을 증언한다.

이 중에서도 안 교수는 우선 박제가와 관련되는 증언들만 정리해 소개했다.

이기원의 증언은 여러 모로 주목이 필요한데, 우선 박제가와 유득공은 만나기만 하면 서로 골탕 먹이곤 했다는 사실이다.

1792년 9월에 상처하고 홀아비가 된 박제가가 장씨라는 여인을 소실로 맞게 되자, 신부의 집에 보내는 혼서(婚書)를 유득공이 썼다. 거기서 유득공은 이렇게 말했다.

"온 하늘에선 꽃을 뿌리고, 장씨의 별에서는 빛을 내려보내네. 백년을 약속하려니, 월하노인(月下老人)이 인연을 맺어주네. 법희(法喜.보살)를 아내로 맞이했으나 끝내 제불보살께로 마음을 돌렸으니, 애정에 사로잡힌 자는 내가 잊을 수 없는 바는 재자가인(才子佳人)이라. 족하께서 귀한 딸을 허락하여 제게 주어 소실로 삼게 하소서."

도무지 격식이라고는 없으나 시종 유머를 잃지 않고 있다.

이기원 문집에는 유득공이 박제가를 평소에 이렇게 놀렸다고 증언한다.

"키가 서너 치 더 크고 그림을 잘하기만 하면야 천하에 명성을 따를 자 그 누구겠나!"

박제가가 키가 작았다는 사실을 알려져 있으나, 그림은 젬병이었다는 대목은 전혀 새로운 대목이다. 이를 통해 당시 사대부가 갖추어야 할 교양으로 그림이 필수 항목이었음을 알 수 있다.

3.1운동 성지라 해서 이런 행사를 하는 듯한 탑골공원



한데 유득공보다 더한 이는 실상 문집 주인공인 이기원이다.

유득공의 입을 빌려 박제가를 마음껏 놀려대고 있기 때문이다.

연암이 내려준 13살짜리 안의 기생을 어리다는 이유로 할 수 없이 거절해야 했으며, 사랑에 빠진 기생을 그만 다른 남자에게 빼앗기고 말았다는 박제가의 전력을 시로써 농을 치고 있는 것이 그런 사례에 해당한다.

백탑파 일원인 박제가는 대식가였던 모양이다. 이기원은 박제가에게 첩으로 들게 된 딸에게 그 어미가 당부하는 대목을 다음과 같은 익살스런 시로 남기고 있다.

"매사에 어기지 말고 신중하고 부지런해야 한다 / (네 신랑될 사람은) 만두는 백 개, 냉면은 세 그릇이나 먹는다 하니 낭군 식성은 작은 아씨가 잘 안다더라."

아마도 작은 아씨는 박제가가 조강지처에게서 낳은 딸인 듯하다.
이 외에도 음담패설을 즐기는 당시 백탑파 멤버들의 모습도 드러난다.

'백탑파'. 그들의 모임은 어떤 면에서는 '개그 콘서트'였고, 그 멤버들은 '폭소 클럽'이었다.

taeshi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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