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재사 흐름을 간취하면 1916년(대정大正 5)에 공포된 ‘고적 및 유물 보존규칙’과 1933년(소화昭和 8) 8월 제령 제6호로 공포된 ‘조선 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 보존령’이 획기를 이룬다.
이 두 차례 법 정비를 통해 우리가 아는 문화재가 비로소 탄생하는 까닭이며, 저를 통해 마련한 골격이 현재까지 이어지는 까닭이다.
무엇보다 저를 통해 과연 무엇이 문화재인지 개념과 실체가 윤곽을 드러냈다. 그 이전에는 무엇이 문화재인지 그 어떤 개념도 없었고 범주도 없었다.
특히 1933년 ‘조선 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 보존령’은 명칭이 시사하듯이 무엇이 문화재인지를 확실히 규정했다.
물론 문화재라는 말은 저때도 아주 간혹 보이기는 하는데, 훗날 저들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정착한다.
문제는 명승과 천연기념물.
저 명승名勝이라는 말은 전통시대에도 아주 자주 보이는 표현이라 근대 문화재로 정착하는 과정에서 그다지 위화감이 없었는데, 천연기념물은 저때 비로소 등장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전 단계 움직임이 없었는가.
근자 국역 조선총독부 30년사(상), 박찬승·김민석·최은진·양지혜 역주 | 민속원 | 2018년 10월 23일을 훑다 보니 무릎을 치는 구절을 만났다.
5) 거수명목과 특유식물의 조사·보호
조선에서는 느티나무·은행나무·회화나무·향나무·백송白松 등의 거목巨木 또는 명목名木으로서 인구에 회자되는 것이 적지 않았다. 이들은 역사 또는 식물 연구의 자료로서 귀중할 뿐 아니라 애림·애향 사상의 함양 혹은 풍치상 보존할 필요가 있어 이를 조사하였다. 특히 울릉도 도동道洞 국유림과 남망대산南望臺山 국유림에는 특유식물特有植物이 많으므로 그 보호도 추가할 필요가 있어, 총독부의 승인을 거치지 않으면 채취를 허가하지 않았고 이 외의 식물이라고 해도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채취를 허가하지 않았다. [259] (동 번역서 250쪽. [259]는 원서 쪽수를 표시한다.)
이것이 바로 훗날 천연기념물 중 식생을 범주화한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추후 그 흔적들을 차례로 추적해 보려 한다.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1933년 천연기념물 도입 이전에 그 밑천이 될 조치가 벌써 법률적으로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도입 목적을 애림愛林 애향愛鄕 사상 고취로 든다는 점도 주시해야 한다.
총독부 일이라면 덮어놓고 쌍심지 켜서는 안 된다는 말, 다시 한다.
식민통치 효율을 위해? 그 딴 말 다시는 듣고 싶지 않다.
참고로 동 역주서 관련 항목을 소개한다.
3) 조선 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 보존령의 공포
조선에서 고적 및 유물의 보존에 관한 법규로는 1916년(大正 5)에 발포된 ‘고적 및 유물 보존규칙’이 있어, 이후 이에 따라 보존이 필요한 고적 및 유물을 등록하고 단속했다.
이 밖에는 경찰 관계 법규가 있을 뿐이었다. 고적 및 유물 보존규칙은 실제 소유 권에 제한을 가하게 됨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총독부령으로 이를 정하는 등 형식상의 결함이 있었고, 이 외에 그 내용이 시세에 적합하지 않은 점이 적지 않았다.
또한 명 승·천연기념물의 보존과 관련해서는 종래 어떠한 법령으로도 제한을 가한 적이 없었 다. [911]
그런데 근래 교통의 발달, 내외 관광객의 격증 등에 따라 고적 및 유물의 훼손·망실亡失이 속출하게 되어, 이 또한 적당한 법규를 마련하여 보호를 철저히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항은 그 성질상 동일한 법규로 다스리는 것이 편리했다.
이에 1933년(昭和 8) 8월 제령 제6호로 ‘조선 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 보존령’을, 같은 해 12월 총독부령으로 그 시행규칙을, 그해 같은 달 훈령으로 그 시행수속을 각각 발포하여 이해 12월 11일부터 시행했다.
이와 동시에 기존의 ‘고적 및 유물 보존규칙’과 그 관계 규정을 폐지했다.
또한 이 보존령과 동시에 ‘조선총독부 보물·고적·명승· 천연기념물 보존회 관제’를 공포하여, 회장은 정무총감에게, 위원은 총독부 각 국장 및 관계 직원, 내선內鮮의 학자들에게 맡겼다.
보존회를 나누어 2부로 하여 제1부는 보물·고적에 대해, 제2부는 명승·천연기념물에 대해 보유상 중요 사항을 심의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 보존회 제1회 총회를 1934년(昭和 9) 5월 1일 총독부에서 개최하여 보존회의 의결을 거친 후, 1934년(昭和 9) 8월 27일과 1935년(昭和 10) 5월 24일 2회에 걸쳐 보존령 제1조에 따른 최초의 지정을 실시했다.
그 수는 보물 208건, 고적·명승 24건, 천연기념물 16건에 달했다. (동 역주서 861~8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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