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가 썼지만 1944년 미연방우정국에서 Overrun Countries라는 우표 시리즈를 만들었는데 이 시리즈 마지막에 예정에 없던 한국이 포함되어 발행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1944년의 미국 우표와 카이로 선언
기억을 돕기 위해 이 우표의 특이한 점을 써 보자면,
1. 원래 이 우표는 추축국에 의해 소멸한 2차대전 중 국가를 격려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점
2. 처음 기획단계에서는 한국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
3. 한국이 12개국 우표의 발행 이후 마지막으로 추가되어 발행된 때가 1944년 11월이라 했다.
이 우표는 단순히 미연방 우정국의 우표에 한국 태극기가 들어갔다는 내용 이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왜나햐면,
이 우표가 발행된 시기가 1944년 11월로 카이로선언 (1943년 11월 27일)과 포츠담 선언 (1945년 7월 26일)의 중간쯤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카이로 선언의 한국 독립 조항이 포츠담 선언에서 재확인되었고, 이 내용이 일본 패전 후 미국 군정명령 1호에 그대로 포함되어 미국의 대한정책이 "적당한 절차를 거쳐 독립" 시키는 쪽으로 계속 유지되었는데,
이 우표는 이러한 미국의 정책이 1943년 카이로 선언과 1945년 포츠담 선언 사이인 1944년 후반에도 여전히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이 우표는 여러모로 의문점이 많다.
원래 계획이 없다가 추가된 것도 그렇고,
도대체 누가 이 계획을 처음 시작했는지가 아직도 학계에서 제대로 규명이 되지 않았다.
엄청나게 중요한 사건이었음에도 상대적으로 주목도 덜 받은 부분이고.
여러모로 뜬금없이 조선을 독립시키겠다는 이야기가 튀어나와버린 '카이로선언'만큼이나 역사적으로 중요하고,
또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거의 아는 부분이 없는 사건이라 하겠다.
개인적으로,
카이로 선언도 그렇고 이 우표사건도 그렇고,
미국 정부내에 한국의 독립에 대해 상당히 동정적이고 이해가 깊은 누군가가 있었던 것 같은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현재로서는 카이로 선언과 이 우표사건도 그 핵심에 가장 가까이 접근해 있었던 한국인은 이승만이었다는 점은 분명한데,
이승만도 카이로 선언과 우표사건은 그 전체 정황을 확실히 알고 대응한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 우표건만 해도 우표가 나온 이후 이승만이 적극 대응하여 독립운동에 활용하고자 한 정황은 분명히 있는데
이 우표의 발행 자체를 미국 정부가 이승만과 협의한 것 같지는 않다는 말이다.
아마 미국 정부 문서를 잘 뒤져 보면 관련 정보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데.
아직도 국내 학계에서는 관심이 많이 없는지 관련 정보를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적당한 기회에 한 번 다루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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