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일본육사 경력이라는 것이 절대적으로 감춰야 하는 경력으로 되어 있지만,
중국 근현대사의 거물 장개석의 경우, 잘 알려진 사실로,
이 양반은 과거에 일본육사 졸업생이라고 버젓이 그 자신 스스로도 밝히고 국민당 쪽에서도 그렇게 광고하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사실 알고 보면 일본육사 졸업생은 아니었고,
신해혁명 전, 청나라가 일본육사 위탁입학을 시키기 위해 보낸 유학생에 장개석이 끼어 있었다.
엄밀하게 이야기 하면 장개석은 일본육사가 아니라 일본육사 입학을 위한 청나라 유학생의 예비교 (진무학교라 부름)에서 2년간 교육받은 그 학교 졸업생이었고 (1909년 졸업),
진무학교 졸업 후 바로 일본군 13사단에 배속되어 일본군 예비사관후보생으로 2년간 (1909-1911) 근무한바 있다.
이 일본군 예비사관후보생이 뭔고 하니 사관학교 졸업 후 정식 임관하기 전에 1-2년간 부대에 배속되어 교육받는 것으로,
예전에 우리나라 학병 출신으로
김 단장께서 인터뷰하다가 발설되어 곤혹을 치렀다던 현승종 선생의 '견습사관'이란 것과 같은 것이다.
장개석의 일본군 사관경력은 그 자신도 이후 자신의 혁명 수행에서 군사학의 기술적 기반이 되었다고 스스로 밝힌 바 있었고,
앞에서도 썼지만, 장개석의 프로필에는 일본육사졸업이라는 내용이 최근까지도 들어간 경우가 많았다고 하니 (최근에는 육사 기록은 빠지고 대신 진무학교 기록이 제대로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프로필 자체에 대해서는 스스로도 무덤덤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장개석은 일본군에 근무하다가, 신해혁명이 발발하자, 부대에 휴가를 신청하고는 귀국하여 그대로 신해혁명에 가담해 버렸다.
이후 다시는 일본에 돌아가지 않았고, 그후 일본군과 장개석은 서로 적군으로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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