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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과 이를 통한 견문 확대가 하도 급속하게 이뤄지는 바람에 이제 이 이야기도 새로울 건 없다.
나 역시 그 옛날 에페수스에서 저 로마 똥통을 보고선 오잉? 했지만 이젠 무덤덤하다.
견문이야말로 생소의 추방 지름이다.
거의 모든 로마 도시에는 호화로운 환경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대규모 공공 변소가 있었다.
기원전 1세기경, 공공 변소는 목욕탕과 마찬가지로 로마 기반 시설의 주요 특징이 되었다.
공동 화장실에는 흐르는 물의 수로 위에 작은 구멍이 뚫린 긴 벤치가 있었다.
고대 로마인들은 테르소륨 tersorium으로 닦았다.
이 고대 장치들은 식초나 소금물에 적신 스펀지가 부착된 막대기로 구성되어 있었다.
다음 사람이 사용할 수 있도록 남겼다.
재활용 정신에 투철했다.
우린?
걸리는 대로 다 썼고 거름으로 쓴다고 내 밭에 가서 쌌다.
뒤닦이는 암거나 걸리는 대로 썼다.
뽕이파리 풀때기 막대기 잡히는 대로 썼다.
수세식과 비데는 혁명이다.
저랬던 유럽 놈들이 왜 그리 인심이 야박해져 오줌 싸는 데도 유로화를 걷는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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