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실록 8권, 고종 8년 3월 20일 경술 4번째기사 1871년 조선 개국(開國) 480년 전국의 서원 중에서 47개 서원만 남기고 나머지는 철폐하다
예조(禮曹)에서, ‘한 사람에 대해 중첩하여 세운 서원(書院)을 헐어버리는 문제는 두 차례의 하교에 따라 신 조병창(趙秉昌)이 대원군(大院君) 앞에 나아가 품의(稟議)한 결과, 「성묘(聖廟)의 동쪽과 서쪽에 배향하는 제현(諸賢)과 충절(忠節)과 대의(大義)를 남달리 뛰어나게 지킨 사람으로서 실로 백세토록 높이 받들기에 합당한 47개 서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제사를 그만두며 현판을 떼어내도록 하라.」는 뜻으로 하교를 받들었습니다. 이미 사액(賜額)하여 계속 남겨두어야 할 47개의 서원을 별단(別單)으로 써서 들입니다. 계하(啓下)한 뒤 각도(各道)에 행회(行會)하겠습니다.’라고 아뢰었다. 【경기(京畿) 개성(開城) 숭양서원(崇陽書院), 용인(龍仁) 심곡서원(深谷書院), 파주(坡州) 파산서원(坡山書院), 여주(驪州) 강한사(江漢祠), 강화(江華) 충렬사(忠烈祠), 광주(廣州) 현절사(顯節祠), 김포(金浦) 우저서원(牛渚書院), 포천(抱川) 용연서원(龍淵書院), 과천(果川) 사충서원(四忠書院), 양성(陽城) 덕봉서원(德峰書院), 과천(果川) 노강서원(鷺江書院), 고양(高陽) 기공사(紀功祠), 충청도(忠淸道) 연산(連山) 돈암서원(遯巖書院), 홍산(鴻山) 창렬사(彰烈祠), 청주(淸州) 표충사(表忠祠), 노성(魯城) 노강서원(魯岡書院), 충주(忠州) 충렬사(忠烈祠), 전라도(全羅道) 태인(泰仁) 무성서원(武城書院), 광주(光州) 포충사(褒忠祠), 장성(長城) 필암서원(筆巖書院), 경상도(慶尙道) 경주(慶州) 서악서원(西嶽書院), 선산(善山) 금오서원(金烏書院), 함양(咸陽) 남계서원(藍溪書院), 예안(禮安) 도산서원(陶山書院), 상주(尙州) 옥동서원(玉洞書院), 안동(安東) 병산서원(屛山書院), 순흥(順興) 소수서원(紹修書院), 현풍(玄風) 도동서원(道東書院), 경주 옥산서원(玉山書院), 상주(尙州) 흥암서원(興巖書院), 동래(東萊) 충렬사(忠烈祠), 진주(晉州) 창렬사(彰烈祠), 고성(固城) 충렬사(忠烈祠), 거창(居昌) 포충사(褒忠祠), 강원도(江原道) 영월(寧越) 창절서원(彰節書院), 철원(鐵原) 포충사(褒忠祠), 금화(金化) 충렬서원(忠烈書院), 황해도(黃海道) 해주(海州) 청성묘(淸聖廟), 배천(白川) 문회서원(文會書院), 장연(長淵) 봉양서원(鳳陽書院), 함경도(咸鏡道) 북청(北靑) 노덕서원(老德書院), 평안도(平安道) 영유(永柔) 삼충사(三忠祠), 안주(安州) 충민사(忠愍祠), 영변(寧邊) 수충사(酬忠祠), 평양(平壤) 무열사(武烈祠), 정주(定州) 표절사(表節祠)다.】
禮曹以"書院疊享毁撤事, 謹依兩度下敎, 臣秉昌進詣大院君前稟議, 則以爲‘聖廟東西廡配食諸賢及忠節、大義卓然炳烺, 實合百歲崇奉之四十七院外, 竝爲撤享撤額’之意, 奉承敎意, 已賜額常存處, 四十七院, 謹玆別單書入, 待啓下, 行會各道"啓。 【京畿: 開城 崇陽書院、龍仁 深谷書院、坡州 坡山書院、驪州 江漢祠、江華 忠烈祠、廣州 顯節祠、金浦 牛渚書院、抱川 龍淵書院、果川 四忠書院、陽城 德峰書院、果川 鷺江書院、高陽 紀功祠。 忠淸道: 連山 遯巖書院、鴻山 彰烈祠、淸州 表忠祠、魯城 魯岡書院、忠州 忠烈祠。 全羅道: 泰仁 武城書院、光州 褒忠祠、長城筆巖書院、慶尙道: 慶州 西嶽書院、善山 金烏書院、咸陽 藍溪書院、禮安 陶山書院、尙州 玉洞書院、安東 屛山書院、順興 紹修書院、玄風 道東書院、慶州、玉山書院、尙州 興巖書院、東萊 忠烈祠、晉州 彰烈祠、固城 忠烈祠、居昌 褒忠祠。 江原道: 寧越 彰節書院、鐵原 褒忠祠、金化 忠烈書院。 黃海道: 海州 淸聖廟、白川 文會書院、長淵 鳳陽書院。 咸鏡道: 北靑 老德書院。 平安道: 永柔 三忠祠、安州 忠愍祠、寧邊 酬忠祠、平壤 武烈祠、定州 表節祠。】
【원본】 12책 8권 18장 B면
【국편영인본】 1책 358면
【분류】 사상-유학(儒學)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안동 병산서원
이를 도별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경기도 12곳
충청도 5곳
전라도 3곳
경상도 14곳
강원도 3곳
황해도 3곳
함경도 1곳
평안도 5곳
경상도가 압도적으로 많고, 경기도는 수도권이라 많다. 당시 전라도에 포함된 제주도엔 한 곳도 없어 아예 王化에서는 방치된 지역임을 알 수 있고, 함경도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꼴랑 1곳 겨우 명맥을 유지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도별로 나열한 까닭은 그런대로 지역 안배를 하려 했기 때문이다.
경주 서악서원. 이곳이 훼철을 견뎌낸 서원 중 한 곳이라는 사실이 의외로 거의 부각되지 않는 점이 기이하다. 경주에서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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