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문화재건 국가지정문화재건, 혹은 등록문화재건 세계유산이건 그 지정 등록 혹은 등재 절차는 까다롭기 짝이 없어 무엇보다 시간이 엄청 걸리니 이것이 해당 문화재에 대한 실수 오판 혹은 예상 민원발생을 감쇄하는 긍정효과가 있는 것만은 분명하나 그에 따른 문제도 적지 아니해서 무엇보다 시급을 다투는 사안에서 이런 절차제도는 답답하기 짝이 없어 애를 태우게도 한다.
하지만 인간이 위대한 점은 그것을 수정보완하는 잔머리도 굴리게 마련이라 저 느릿느릿 문화재행정에서도 그런 꼼수를 발견하니 국내에선 직권상정, 유네스코에선 fast track이라 부르는 제도가 그것이라 결국 같은 말이다.
세계유산 등재가 얼마나 시일이 오래 걸리며 복잡한가? 하지만 패스트트랙이라 해서 저 초고속 등재 방식을 드물지 않게 보기도 하니, 전쟁 위험에 노출되거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지구 같은 데서 흔히 쓰는 얄팍한 수법이라, 이 경우 세계유산 등재와 더불어 해당 유산은 보통 위험에 처한 유산 Heritage in danger에 동시에 탑재된다. 이는 그만큼 해당 유산 보호가 시급하다는 신호인 셈인데, 팔레스타인은 이 제도를 악용하는 대표적인 정치체다.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언제나 숭고한 피해자라는 인식을 심는 데 성공한 팔레스타인은 그런 심성으로 세계에 호소해 우리는 맨날맨날 이스라엘에 얻어터지는 불쌍한 정치체이니 패스트트랙이 아니면 세계유산도 못 만들어요 읍소하는 방식으로 세계유산을 야금야금 만들어가는 중이다. 그에 삐진 이스라엘이나 그 든든한 후원자 미국은 야마 돌아 기어이 유네스코에서 탈퇴하는 초강수를 두기도 한다.
국내 문화재행정에서 직권상정은 문화재행정 총수인 문화재청장한테 허여된 고유 권능이다. 문화재청장은 시급한 사안 혹은 그에 준하는 촉급성이 있다 판단할 때는 이런저런 제반 절차 다 생략하고는 이런 걸 문화재로 만들어주십시오 하고는 문화재위원회에다가 상정해 버린다. 이게 아주 좋은 점이 문화재 지정 등재에 따르는 무수한 절차를 아주 간략하게 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에 따른 문제도 없지는 아니해서 무엇보다 저 제도를 악용하면 문화재행정 전반이 붕괴할 우려도 있다. 가끔씩 써먹어야 한다. 다른 부문에서 견준다면 검찰총장에 대한 법무장관의 지휘권 발동이라 할까? 이게 문재인 정부에서는 걸핏하면 써먹는 바람에 걸레가 되어 버린 감이 없지는 않다.
서론이 길었지만 본론으로 돌아가 우영우 팽나무가 바로 이 직권상정 방식을 통해 마침내 천연기념물 지정을 앞두게 되었으니 어제 문화재위원회가 그 지정예고를 심의 의결했다. 지정예고하고는 혹 그에 따르는 판단 미스 등등은 없는가 하는 요식하는 절차를 거쳐 대개 한 달 뒤에 다시 문화재위원회를 열어 그 요식에다가 최종 도장을 꽝 찍으면, 그것을 대체로 문화재청장은 확인 도장을 찍으니 그렇게 해서 바로 법적 효력을 발휘한다.
저 창원 우영우 팽나무는 아다시피 느닷없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히트 드라마가 준 선물이었다. 누군들 예상이나 했겠는가? 그 드라마가 마침 저 현장을 소재 삼은 프로그램을 방영했으니 총 16부작 중 내 기억에는 7~8회 에피소드에 등장했다. 그 드라마가 마침내 지난주인가 지지난주에 종영했으니, 그 화려하면서도 느닷없는 등장에서 천연기념물 지정까지는 불과 두달이 걸리지 아니했다.
이만큼 초고속 지정(예고)은 한국 문화재행정에서 전례가 없다. 그만큼 전광석화처럼 진행되었다. 그런 초고속 진행에 물론 곱지 않은 비판도 있었으니, 뭐 문화재가 드라마에 편승한다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그에 대한 내 생각은 실로 간단해서 "신세 지면 또 어떤가? 드라마 선풍과 그에 등장하는 팽나무도 그 자체가 하나의 역사다"라는 것이었다.
저 팽나무는 7회에 처음 등장했다. 이 7회에 등장할 때만 해도 그렇게 중요한 존재일 줄은 거의가 몰랐다. 그 팽나무가 이 드라마가 다룬 소재 하나의 결정판으로 드러난 것은 그 이튿날 방영된 8회를 통해서였다. 이 팽나무가 그리 중요하다 해서 천연기념물로 지정예고됨으로써 마침내 그것이 있는 마을, 팽나무를 없애버리고자 하는 도로건설 계획 자체가 무산한 것으로 드라마는 그렸다.
이 이상한 등장을 삼은 7회를 보고서는 나는 그 팽나무가 요상함을 직감했다. 그러고서는 그 7회가 끝나자마자 바로 저 팽나무가 실제로 어디에 존재하는지를 조사했으니, 그 웅대한 수세樹勢를 보건대 천연기념물이 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리하여 혹 그것이 이미 천연기념물이 아닌가 의심하면서 문화재청 홈페이지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팽나무를 모조리 검색했지만 걸리지 아니했다. 천연기념물이 아님이 분명했다.
이에 그것이 실제 어디 팽나무인지를 묻는 질문을 페이스복 내 계정에 올렸더니, 세상에 나, 생평 애들 불러다가 돌이나 깨면서 이게 구석기네 하는 사기를 치면서 어린애들 앞에서 박수갈채를 유도하는 연천 전곡선사박물관장 털보 이한용이가 떡 하니 그에 창원 팽나무요 하면서 관련 증거를 제출하지 않은가?
보니 그거였다. 문화재는 아니었고 보호수로 지정 보호받는 중이었다.
그 순간 나는 직감하면서 결심했다. 저 팽나무 우영우에 기대어 초고속으로 천연기념을 지정하겠노라고. 그리하여 그 7회 에피소드가 끝난 직후 나는 곧바로 문화재청 모 담당자한테 저 팽나무 주시할 것을 요청하면서 내일 8회 드라마 전개를 보자 했더랬다.
8회 방영이 끝났다. 나는 다시 그 담당자한테 연락했다. "천연기념물로 가자. 초고속으로 가자. 어물쩍하다가 실기하고 만다. 하늘이 준 기회다. 내일 아침 당장 문화재청에서는 문제의 팽나무 조사에 착수한다는 보도자료 뿌리자" 이렇게 말한 것이다.
문화재청이 저 팽나무 조사 방침을 기자들한테 공지한 것은 8회 방영 이튿날인가 사흘째였다고 기억한다. 매주 금요일인지 토요일 그 다음주 주요 문화재 일정을 기자들한테 공지하는데, 거기에 그 다음주 월요일 배포 예정 보도자료에 우영우 팽나무 현지조사 방침이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내가 시종일관 이 일이 관여하면서 유념한 대목은 저 앞에 말한 그것이지만, 진행상황을 보아가며 수시로 체크했으니, 이 팽나무가 마침내 화제가 되어 현지로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우영우 팽나무 말고도 천연기념물이 되어야 하는 노거수는 전국에 산재한다"는 문제 제기를 나는 주시했다.
맞다! 저 정도 급이 되지만 아직 천연기념물이 되지 못한 노거수는 전국에 많다. 하지만 이 경우 우리는 선택과 집중을 해야했다.
그래서 나는 일단 우영우 팽나무에 집중할 것을 요구했다. 자칫하면 시선이 분산되어 우영우가 선사한 그 호기를 망실할 위험성이 아주 컸다. 우영우 팽나무 말고도 다른 것들도 같이 문화재 지정을 추진하겠다? 이건 하세월이다. 이런 식으로 시선이 분산되면 볼짱 다 본다. 어느 세월에 우영우 팽나무가 천연기념물이 된단 말인가?
일단은 우영우 팽나무를 지정하고 보자. 그것도 초고속으로 하고 보자.
이런 판단은 한달 남짓 뒤에는 우영우가 종영한다는 절박감이 크게 작동했다. 종영하면 그 열기 잃어버리며 그에 덩달아 우영우 팽나무 지정 움직임도 동력을 상실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더욱 촉박했던 것이며, 그래서 우영우 팽나무 하나로 집중할 것을 나는 요구했던 것이다.
어찌 우영우 팽나무 하나로 그치겠는가? 하지만 주어진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일단은 우영우 팽나무를 그 우영우 열기가 살아있을 적에 천연기념물로 만들어야 했다.
드라마가 천연기념물로 예고한 우영우 팽나무가 실제로 천연기념물로 지정예고되는 사태를 목하 우리는 목도 중이다.
이를 시발로 제2, 제3의 우영우 나무를 발굴해야 한다. 돌이켜 보면 한국 문화재행정은 너무나 느려 터졌고 시대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고 언제나 뒤쳐져 구석기시대를 헤맸다.
이번 우영우 팽나무 사태는 그에 대한 스스로의 경종이다. 문화재행정이 언제나 지금과 같이 전격 Z작전일 수는 없지만, 때로는 전광석화 같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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