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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아직도 납득할 수 없는 풍납토성 시유도기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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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아마 연합뉴스를 통해 발행한 사진 한 장면으로 기억하는데 지금 여러 키워드 묶음해서 검색해 보니 아래 기사가 걸린다. 
 
백제판 달항아리 시유도기 복원 한창
송고시간2009-03-03 07:00 
 
2009년이면 저 유명한 2000년 풍납토성 사태가 한 단계 진정하고, 그 이후 조금은(하지만 여전히 소란스러웠다) 안정된 상황에서 발굴이 재개되어

그 조사단인 한신대박물관이 풍납토성 경당지구를 재발굴하게 되면서 수습한 유물들을 정리하는 모습을 현장 취재를 겸해 박물관을 찾아가 보고 들은 것을 정리했을 것이다. 

저 인물 속 주인공이 권오씨다.

서울대 국사학과로 들어갔다가 역사로는 먹고 사는데 지장 있겠다 싶어 고고학이랑 양다리 걸치기 해서

동아대랑 한신대 거쳐 두 가지 다 해 먹다가 다 늙은 지금은 뒤늦게 모교라 해서 서울대 국사학과에 안착해 그 박물관장을 겸하며 편안한 노후를 즐기는 사람이다.

이제 정년이라는 강제퇴직 초읽기에 들어갔다. 

각설하고, 2011년 8월 8일, 나는 비교적 장황하게 다음과 같이 적었으니,

이 문제는 꼭 이때가 아니더라도 줄기차게 나는 이 문제를 지적하고 있거니와,

그것은 내가 도무지 납득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풍납토성 경당지구 출토 시유도기施釉陶器. 

첫번째 사진(앞 사진) 속 인물이 한신대 권오영 교수. 

이 양반은 이들 전문도기가 백제에서 자체 제작됐을 가능성을 제로라 단언한다. 

하지만 난 아무리 생각해도 그리 생각할 수가 없다. 

첫째, 저 생긴 꼬라질 봐라. 저게 어디 이역만리 바다를 건너 올만한 물건이더냐? 저 정도 도기는 당시 백제로서는 수입할 가치가 없다. 

둘째, 장거리 해상운송을 하기에는 너무나 파손 위험이 많다. 

셋째, 중국 수입품이라면, 그리고 백제지역에서 아주 많은 출토량을 기록하거니와, 이 시유도기만한 중국 수입제 청자가 어디 있으며,

무엇보다 그것을 제작했다는 중국 본토에서는 나는 저렇게 생겨먹은 시유도기를 아직은 보지 못했다. 


풍납동 미래마을지구 백제 대옹과 비교해 주기 바라노라.

저 대옹(바로 아래 사진)에 견주어 이 시유도기가 무에 비교 우위가 있어 그걸 머나먼 중국에서 가져왔겠는가?

 

 
이걸 여러 사람한테 물었지만 한결같이 권 교수랑 같은 반응이었다. 

내가 그걸 몰라서 물었겠는가? 

문제는 중국 수입산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그 근거가 허약한 까닭이다. 

내 의문은 단순한다. 

저딴 거지 같은 걸 왜 수입한단 말인가? 

나는 내가 납득할 때까지는 끊임없이 의심할 것이며 끊임없이 물을 것이다.

아주 용케 저걸 굽던 가마가 나와주면 그냥 끝나버리겠지만.
 

 
덧붙이건대 시유도기施釉陶器란 암것도 아니어서 유약을 베푼 도기를 말하며, 

저런 백제시대 시유도기 중에서는 전문錢文, 곧 동전 무늬를 새긴 것이 더러 있어 시유도기 중에서도 그러한 것들을 골라내어 전문도기錢文陶器라 일컫기도 한다. 

저런 전문이 육조시대 중국에서 자주 보인다. 

그에 직접 세례를 받은 백제에서는 풍납토성 시대에 동전 문양을 넣은 와당을 만들기도 한다.  
 

 
이 분은 석촌동고분군 출토품이다.

워터마크를 꼭 저리 붙여야 하나? 저작권이 연합에 있는 것도 아니면서?

저거 제공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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