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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1870년 무렵 사진이 포착한 이집트 카르낙 신전 단지 Karnak Temple Complex 한 장면이다.
붕괴 일보 직전인 기둥은 아마 바로 세웠을 것이다. 현장 가면 이미 다 곧추 섰다.
복잡한 상형문자로 덮인 거대한 이들 기둥은 흔히 이집트 건축의 웅장함을 말해주는 증좌로 거론하지만 글쎄 과연 그렇게 보아야 할까?
카르낙 사원 단지는 기원전 2000년 무렵 중왕조 때 건설이 시작되어 이후 2천년간 간단없는 변화가 있었다.
파라오마다 뭔가 하나 남기고 싶어해 추가하곤 했다.
배향한 주신은 아문라Amun-Ra지만 꼭 그에게 한정할 필요가 있겠는가? 나한테 복만 내려준다면 무당신도 좋다. 이집트라고 달랐을 것 같은가?
고도하는 문명을 구가했지만, 그 문명도 고립은 결국 붕괴를 자초하고 만다.
아시리아에 이어 아케메네스가 침략해 쑥대밭을 만들고 이후 알렉산더 치하 마케도니아에 넘어갔다가 이내 로마에 넘어가고 말았다.
뭐 저 시절 사진 한두 장으로 원형이 훼손되었네마네 하는 짓이 한국에서는 아주 자주 있는데 저짝이라 해서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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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는 세우는 데서, 조루 혹은 발기부전의 다른 이름 민아문 Min-Am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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