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라사에서 말갈은 아주 일찍이 등장하기 시작해 끊임없이 신라를 괴롭히는데, 그 접근 지점이 거의 예외없이 신라 북경 북쪽 근방, 그러니깐 태백산맥 이동 동해안 지역이며, 가장 핫한 지점이 지금의 삼척이나 강릉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기준으로 저네는 벌써 지마니사금 14년(125) 봄 정월에 북쪽 경계를 대거 침입해 관리와 백성을 죽이고 노략질하는 존재로 등장하거니와, 이 지점이 어디인지 확실치 아니하나 삼척 근방 일대였다.
물론 이를 고대사학도들은 후대 사실의 가탁이라 하지만, 개소리다. 귀 기울일 필요없다.
신라는 저 시대에 이미 동해안을 따라 북상했다.
이어 같은 해 가을 7월에도 내침하는데, 이때 저네가 대령大嶺 목책을 습격하고, 이하泥河를 넘어왔다고 한다.
저 대령, 곧 큰 고개를 혹자는 대관령이라 하지만 근거 없다. 동해안을 달리다 보면, 곳곳이 산과 암벽에 막히는데, 그 어느 지점을 말할 공산이 크다.
말갈이 미쳤다고 서쪽 대관령을 넘어 들어온단 말인가?
이하는 신라의 북방 진출과 관련해 자주 논급되는데 지금의 어느 강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남대천 같은 곳일 수 있다.
일성니사금 4년(137) 봄 2월에도 말갈이 침범하는데 이때는 장령長嶺의 다섯 목책을 불태웠다 하거니와, 아무래도 이 장령이 앞에서 말한 대령 아닌가 싶다.
말갈은 그 2년 뒤인 일성니사금 6년(139) 겨울 10월에도 다시 쳐들어왔다가 마침 폭설을 만나 물러난다.
하도 말갈에 시달리니 일성니사금 7년(140) 봄 2월에는 장령長嶺에닥 목책을 세워 말갈靺鞨을 방비한다.
이로 보아 말갈과 신라가 접하는 지점에 자연 장벽 역할을 하는 큰 산 혹은 암벽이 있었고, 그 관문에다가 목책을 세워 방비했음을 엿본다. 이 장령 남쪽 어딘가로 니하라는 강이 흘렀음을 본다.
야마가 돈 신라에서는 수세로는 9년(142) 가을 7월에 여러 신하를 불러 말갈 정벌을 논의케 하는데 이때 이찬伊飡 웅선雄宣이 뜯어말겨서 그만 두게 된다.
나는 신라 북방 진출과 관련해 이 증언이 매우 중대하다고 본다. 왜? 결국 신라는 치고 올라가기 때문이다.
말갈은 공세가 끝이 없어 나해니사금 8년(203) 겨울 10월에도 침범한다.
그러다가 한동안 주춤한 모습을 보이는데 나는 이를 기록 탈락이라고 본다.
그렇게 자최를 감춘 말갈은 나물니사금 40년(395) 가을 8월에 말갈靺鞨은 북쪽 변경을 다시 침략하는데, 신라에서는 군사를 내서 그들을 실직悉直 들판에서 대파한다. 평지에서 붙었음을 본다.
자비마립간 11년(468) 봄에 고구려가 말갈과 더불어 1만명을 동원해 신라 북쪽 변경 실직성悉直城을 습격한다.
이때 비로소 고구려가 개입했음을 본다.
주시할 대목은 주축 부대는 여전히 말갈이라는 사실이다.
나아가 소지마립간 2년(480) 11월에도 말갈은 북쪽 변경을 친다.
이듬해 3년(481) 3월에는 역시 고구려 말갈 연합군이 북쪽 변경을 들이쳐 호명성狐鳴城을 포함한 7성을 빼앗고, 또한 미질부彌秩夫까지 진군한다.
이 호명성은 어디인지 모르지만 삼척 혹은 강릉 일대 어디였을까 하며, 미질부는 놀랍게도 포항 흥해읍 일대로 간주된다.
이때 말갈로서는 상당한 남진이 있었음을 본다. 신라로서는 한때 저 지역을 상실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나아가 유의할 점은 이런 침투 주된 경로가 육로가 아니라 해로라는 사실이다. 이 점은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겠다.
이후에도 여전히 말갈이 중요하게 등장한다.
이런 종적들을 통해 내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가?
첫째 동해안 일대, 특히 강원도와 함경도 일대 주인은 시종 일관 말갈로 대표하는 별도 종족 소유였다.
둘째, 고구려는 단 한 번도 저 동해안을 직접 지배한 적이 없다.
셋째, 고구려는 필요에 따라 저 지역 주인, 혹은 그 연고권을 주장하는 말갈과 연합해 그들을 부용국으로 삼아 간접 통제했을 뿐이다.
넷째, 그 간접 통제도 시종일관 그랬던 것이 아니고 고구려와 말갈의 이해관계가 맞았을 때로 국한한다.
말갈이 계속 신라를 들이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이 그들한테는 실지失地인 까닭이다.
덧붙여 신라 북쪽 변경을 치는 주체가 처음엔 말갈 단독이었다가 자비왕 무렵에 비로소 고구려가 합세하기 시작하는 저 흐름이 무엇을 말해주겠는가?
동해는 일언반구 언급도 없는 고구려 국경
https://historylibrary.net/entry/east-sea
동해는 일언반구 언급도 없는 고구려 국경
탁발 선비 왕조인 북위北魏 정사로 기획한 위서魏書에는 이역 열전 중 하나로 고구려가 채택되어 그 역사를 북위 왕조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정리했으니 그에 얽힌 일화 중 하나로 다음을 적기
historylibrary.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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