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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revision의 시대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9.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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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자료 찾아 이런 것이 발견되었네 저런 것이 확인됐네 하는 시대는 끝났다. 새로운 자료를 찾아 발굴하고, 그것으로써 의미를 찾는 시대는 끝났다는 것이다. 


이젠 재음미의 시대다. 실록을 필두로 하고, 고문서 자료들까지 대부분이 공개된 마당에 평지돌출하는 자료가 나올 가능성은 매우 작다. 물론 고려 이전 중세사나 고대사는 언제건 새로운 금석문을 비롯한 새로운 자료 출현 가능성이 언제나 열려 있지만,

그것이 차지하는 비중은 왕청나게 낮아질 것만은 분명하다.


포항 중성리비가 출현했다 해서, 그것이 20년 전 냉수리비나 봉평비 발굴에 결코 비견할 수 없는 까닭은 시대가 변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기존에 보고되고 공간된 자료들을 재가공하고, 그것을 재음미하는 시대다. 이 재가공과 재음미의 대상에 기존 연구성과도 포함됨은 말할 나위가 없다.


이 말을 실로 안이하게도 선행연구성과 검토로 치환하는 者가 한국 지식인 사회에는 부지기수에 달하나, 너희가 말하는 선행연구성과 검토와 내가 말하는 재음미는 전연 결이 달라, 선행 연구들을 그 자체로 사료로 치환해서, 그런 주장들이 어떤 시대 맥락에서 어떠한 의도에 따라 생성되었는가를 파헤치는 작업을 말한다. 


이제 실록이나 일성록, 승정원일기, 고려사,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특정한 집단이 독점하는 시대는 끝났다. 그 무수한 문집 역시, 한국고전번역원 주도 아래 상당히 묵직하고도 중요성을 차지하는 문건은 상당수가 번역 완료되고, 더구나 그것들은 대부분 공짜 웹 서비스를 실시하는 중이다. 이런 사정은 외국 자료 역시 마찬가지다. 


이렇게 알려진 자료들을 어떤 시각에서, 어떤 목적으로 배열하느냐가 관건인 시대를 맞이했다. 같은 자료라 해도 '다르게 보는 시각'을 길러야 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다르게 보기가 내 보기엔 여직 걸음마 수준을 면치 못한다. 아니, 그 수준들이 여전히 형편없어, 차마 눈뜨고 못봐 줄 지경이다. (December 23, 2017) 


*** 


이른바 문화재학으로 분류하는 고고학 건축학 미술사학 역시 마찬가지다. 이젠 끝났다. 아주 가끔식 새로운 자료가 출현하기도 하지만, 그 새로운 자료로 할 수 있는 얘기는 지극히 한정한다. 그래 강진 도요지에서 만두요가 나왔다 해서, 그것이 처음으로 확인되었다 해서 뭐가 어떻게 달라진단 말인가? 달라질 것도 없다. 


펭수 닮은 사람 얼굴모양 그릇이 나왔다 해서, 거기에서 새로운 문자자료 나왔다 해서 뭐가 달라지는가? 달라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리 생각하는 사람들 뿐이다. 그 그릇이 5세기에 만들어졌건 6세기에 만들어졌건 그게 무에 중요하단 말인가? 어줍짢은 토기 편년으로 휙휙 바뀌는 그런 역사를 나는 따를 생각이 없다. 토기를 25년 단위로, 10년 단위로 짜른다는 그 발상 자체를 나는 용납한 적이 없다. 


말도 안 되는 판독으로 중원 고구려비가 영락시대에 만들었네 하는 그런 호들갑을 대체 언제까지 떨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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