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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창밖의 여자를 쳐다보는 장발 조용필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9.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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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을 망실하는 까닭에 젊은시절 혹은 그 이전 어린시절 나 자신을 증언하는 도판이 거의 없어 다른 사람을 모델로 빌려온다. 

조용필옹 이 LP가 정확히 어느 해에 나왔는지는 내가 조사치 못했으나, 70~80년대 그 어간임은 분명하다. 그 근거는 저 장발에 기인한다. 

내 기억에 이 땅에서 남자들의 장발이 유행 저편으로 사라진 시점이 80년대말, 90년대 초 아닌가 하는데, 물론 그렇다 해서 완연히 종적을 감추었다는 말로 이해할 등신들은 없으리라 본다. 

이른바 유행이라는 이름의 대세, 그것으로서의 장발은 90년대에 접어들면서 구시대 유물로 퇴장했다. 

내가 대학을 다닌 80년대 중후반만 해도, 대세는 장발이라, 그때 찍은 내 사진과 친구들 사진을 기억에서 휘말려 보면, 모조리 더벙머리라, 마당쇠만 같았다. 

한데 내가 군복무를 마치고 졸업한 92년 졸업진을 보니, 단발이라 할 순 없지만, 이미 대세는 단발로 가 있었다. 

장발은 시대의 산물이었다. 그것이 유래한 뿌리가 그에 대한 저항의 반저항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박정희시대 그 압제적인 단속의 움직임과 맞물려, 중고등학교에선 모조리 까까머리 바리깡으로 빡빡 밀게 했으니, 그에 대한 반작용 역시 크다고 나는 본다. 

장발은 두발자율화 움직임과 더불어 자연히 퇴장했다. 물론 요새야 주로 로커인지 뭔지 하는 친구들이 머리를 질질 길러 머리를 따는가 하면, 민족운동하신다는 분들을 중심으로 흰고무신에 우와기 걸치고는 맨날맨날 머리 길러 뒤로 고무줄로 꽉 짜매는 일이 없지는 않으니, 혹 시대가 바뀌어 또 장발의 시대가 오지말란 법이 없으나, 

암튼 저 장발만으로도 우리는 저 시대가 70~80년대임을 안다. 

이걸 유행이라 하며, 그런 유행의 요소들을 합쳐 그려낸 도식을 우리는 양식type라 하며, 그것을 나름 체계화하는 도식 일체를 우리는 타이폴로지typology라 한다. 

이 타이폴로지는 그 시대 역사상을 구성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예컨대 어떤 사진, 유물에 등장하는 사람이 어느 시대에 해당하는가를 가늠하는 기준 중 하나다. 

한데 이 유형 혹은 유행분류를 하는 방식 자체가 주객이 전도되어, 다른 차원 높은 것들을 구명하기 위한 방편이 되어야 할 그것이 주인 행세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주로 고고학 미술사 혹은 건축학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저건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방편이란 무엇인가? 임시라는 뜻이다. 언제나 방편은 임시에 지나지 않는다. 

한데 그런 임시가 영구의 자리를 차지하고, 그것이 그 시대를 구현하는 그런 무수한 방편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 것이 유일로 둔갑해서 그것이 독재를 구가하니, 한국고고미술건축학에서 이 꼴이 벌어진다. 

주객을 전도하지 말지어다. 주인 자리로 가야 할 것은 뒤칸으로 밀어버리고 손님을 신주 혹은 시동으로 세우는 일만큼 멍청한 짓 없다. 

시동은 시동이지, 그 시동이 조상이겠는가? 



*** 앞 글을 더 보완한다. 

제사에서 시동은 신주를 대신해서 앉히는 어린아이다. 조상이라 생각해서 임시방편으로 세웠을 뿐이요, 시동이 조상인 것은 아니다. 

주객이 전도해서 임시방편이 본령으로 둔갑하는 일이 많다. 특히 문화재학이라 간주하는 고고학미술사건축학을 보면 이런 일이 많아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은 형식분류 한다고 날을 새고 만다. 

왜 형식분류를 하는가? 그 목적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본질 혹은 본령에 다가가가 위한 한 방편인 까닭이다. 

예컨대 미생물 조사한다고 하자. 그를 위해 예컨대 현미경이 필요하다. 미생물 조사를 위한 방편이다. 한데 미생물 조사할 생각은 않고 #현미경 조사를 하다 날 샌다. 형식이란 현미경과 같은 것이다. 

물론 현미경을 연구하는 학문이 따로 있겠지만, 그걸 미생물학자가 할 일은 아니다. 미생물학자한테 현미경은 연구를 위한 방편일 뿐이다. 주객이 전도되어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 형식분류한다고 날을 샌다. 날을 샐 뿐만 아니라 그 임시방편을 연구라 하고서는 성과로 제출한다. 

70~80년대 조용필은 장발이다. 조용필이 장발이라 해서, 무엇을 장발이라 할 것인지 그것만 쳐야봐야겠는가? 어떤 시대정신이 장발을 불렀고, 그런 장발 문화가 미친 여파는 무엇이었으며 그것은 왜 느닷없이 90년대가 되어 소멸했는가 그에 어떤 시대정신들이 투영하는가 이걸 연구해야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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