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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멀어지는 책, 그렇다고 글과의 단절은 없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5. 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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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생평 기자질이라고는 문화부 근처만 얼쩡거리다 어쩌다 문화재청장까지 해 자신 정재숙 누나가 이호철 북콘서트홀에 연사로 섰으니,

그 누님이 그 자리서 이르기를 늙어서는 책이나 봐야지 하는 말에 이미 늙은 선배들이 그러더랜다. 

"늙어봐라 책이 보이는지."

맞는 말이다. 

그리 늙었다 할 순 없으니 이미 노안이 올대로 온 나는 절감하고 또 절감한다.

나는 책을 더는 못 본다. 

첫째 시력 때문이고 둘째 졸음 때문이다. 

느긋이 앉아 책을 읽을 여력이 없다.

체력도 신체 조건도 이미 꽝이다. 

그렇다고 글을 안 읽는가는 다른 문제다.

내가 볼 때는 책을 놓는 대신 다른 글읽기로 진화해갈 뿐이다. 

나는 이를 전통시대 글쓰기에 마냥 빗대어 이젠 집주集註 시대를 벗고 소품小品시대로 간다 하는데,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읽어내릴 수 있는 글은 한계가 지금 원고 기준으로 천자 안팎이다. 

이 천자 안팎을 넘어가면 읽기가 무척이나 힘들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나는 글로는 신문 기사가 딱이다.

신문 기사 대개 길어봐야 천자, 혹은 천이백자 이내다.

이런 글 이상은 앉은 자리에서 이젠 읽기가 힘들다. 

그래서 늙으면 시집으로 손이 많이 가는지 모르겠다. 

책이라고 해도 챕터가 빨리빨리 끝나고, 그 챕터끼리는 연관성이 있되, 그 챕터 하나를 뚝 떼어놔도 독립성과 완결성은 어느 정도 갖춘 책이어야 한다.

그래야 앉은 자리에서 내키는 대로 아무데나 펼쳐 읽고 덮어두었다가 나중에 다시 다른 챕터로 손이 가기 때문이다. 

논문. 지금 인문학 기준 거대 논문 한편이 200자 원고지 150장 이내인데,

이거 이젠 도저히 못 앉은 자리에서 읽어내지 못한다. 

물론 이것도 이골이 나면 10분만에 해치우기는 한다.

서론 결론 초록 보고 본론 대충 훑으면 되니깐. 

내가 지금 쓰는 글, 이런 글들이 요새 외국 저명 학술지 요약을 인용하는 일이 많이 좀 길어지기는 한다만 그래도 최대한 천자 이내로 맞추려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늙을수록 책을 안 읽는 게 아니라 읽는 패턴, 읽는 글 스타일이 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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