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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거란전쟁70

뜯어먹다 남은 고려사 목종 이전 실록, 황주량의 고군분투 고려는 왕건 이래 사관을 두었으며, 각 왕대별로 실록을 편찬했다. 즉, 새로운 왕이 즉위하면 곧바로 전대 왕 실록 찬수에 착수해 왕대별 실록을 찬진해 나갔다. 하지만 고려사나 고려사절요를 통독하다 보면, 왕건 이래 제7대 목종穆宗(재위 997~1009)까지 기록은 빈한하기 짝이 없어 뜯어먹다 버린 다랑어 같다. 이리 된 까닭은 제2차 고려거란전쟁에 개경이 함락당하면서 궁궐이 불타버리고 전대 실록 역시 모조리 소실된 까닭이라, 그런 흔적이 너무나 뚜렷해서 목종 이전과 목종 이후 고려사는 질과 양 모두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전기가 빈약하기 짝이 없다. 목종시대까지 실록을 흔히 7대실록이라 이름하니, 고유명사가 아니라 그 전 시대 통사를 통칭하는 것이다. 실록을 편찬하려면 그를 위한 임시기구라 출범하는데,.. 2024. 2. 3.
심지어 곰보라는 전설도 있는 강감찬 형 강감찬은 성품이 청렴하고 검소해 집안 일은 돌보지 않았다. 겉모습은 조그맣고 남루하였으며, 옷가지는 더럽고 낡아서 보통 사람보다 낫지 아니하였다. 邯贊性淸儉, 不營産業. 體貌矮陋, 衣裳垢弊, 不踰中人. ㅡ 강감찬 열전 중에서 여기에 더하여, 민담에 따르면 이 어른은 어려서 마마를 앓아서 잔뜩 얽었었다고 한다. *** Edtor's Note *** 드라마 고려거란전쟁 중 강감찬을 연기하는 최수종과는 사뭇 달랐음에 틀림없다. *** related article *** 땅딸보에 못생긴 강감찬, 최수종은 아니었다 땅딸보에 못생긴 강감찬, 최수종은 아니었다 한동안 강감찬 하면 최수종을 떠올릴 것이다.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실제의 강감찬은 하이틴스타 원조에 해당하는 최수종과는 한참이나 거리가 멀었다. 역사는 아주.. 2024. 2. 1.
쏜살 같은 도망길, 돌아올 땐 장가도 가고 느릿느릿 고려 현종 밤에 몰래 왕궁을 빠져나가 보름 만에 나주까지 줄행랑을 친 고려왕 현종 왕순. 따라오지도 않는 거란군을 피해 도망다니다, 돌아보니 거란군은 흔적도 없어 쑥쓰러워지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이젠 가오를 생각할 때였다. 1010년 1월 13일일 노령을 넘어 나주에 도착하고서는 거란군이 물러났다는 보고를 접하고는 맥이 풀렸는지, 아니면 이젠 온 김에 좀 쉬고 가야 한다 생각했음인지, 거기서 물경 8일이나 퍼질러 놀다가는 21일 을미乙未가 되어서야 행장을 꾸려 북상을 시작하는데 앞서 본 남행 도망길과 이제 시작하는 복귀하는 길은 조금 달랐다. 그만큼 여유가 많아졌기 때문이기도 하겠거니와, 이제는 민심을 다독일 때가 된 까닭이다. 도망길이 순행길이 된 희유한 케이스가 바로 현종의 피난길이었다. 귀경길에 오른 그는 첫.. 2024. 1. 31.
혈혈단신, 보재기 들고 가는 사신 없다 전통시대 왕조국가 체제에서 저런 식으로 선물 꾸러미 몇개 든 쫄개 몇 명 데리고 가는 사신 행렬단은 유사 이래 없다. 외교를 내 아버지가 내 담임 선생님 뵈러 갈 때 우와기 걸치고 쌀 가마니 하나 들고 가는 그런 모습으로 할 수는 없다. 심지어 전투 중인 양쪽 군대에서도 협상을 벌일 때도 저런 식으로 하지 않았다. 비상 사태에 대비해 적어도 수 백 명 이상 되는 중무장한 양쪽 군대가 뒤쪽에서 집결한 가운데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물론 이해는 한다. 드라마니깐. 고려거란전쟁에서 2차 전쟁이 끝나고 양측에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전쟁을 막아보고자 고려 조정에서 김은부를 거란에 파견하는 장면이다. 촬영 무대가 어딘지 모르겠는데, 저런 장소 찾는다고 애를 먹었겠다 싶다. 배경은 CG 처리해야 했으니 돈도 .. 2024. 1. 30.
아부는 거룩한 충성, 죽일 수 없다 바로 앞에서 거란군에 사로잡힌 고려군 수뇌부 넘버 원 강조와 넘버 2 이현운이 걸은 너무나 다른 길을 소개했거니와 아부는 거룩한 충성이라는 말을 새삼 생각하게 된다. 내가 기자 초년 시절, 아부로 출세가도를 달린 공장 선배가 한 말을 잊을 수가 없다. "태식아, 너 아부 말이다. 그거 첨에 들으면 참 거북해, 한데 말이야, 자꾸 들으면 그렇게 이쁠 수가 없다?" 결국 자신한테 아부하라는 뜻이었다. 물론 나는 아부를 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할 줄 몰랐다. 그러니 해고까지 당하지 않았겠는가? 그렇다 해서 내가 무슨 절의 절개남? 웃기는 소리, 똑같은 놈이다. 거란 성종 야율융서가 진짜로 대인이라면 고려왕한테 끝까지 충성을 다하는 강조를 풀어주어야 했다. 대신 "제 두 눈이 이미 새로운 해와 달을 보았으.. 2024. 1. 26.
인간 심연을 후벼파는 죽음의 공포, 이현운의 경우 임금을 시해하고 권력을 잡은 강조를 고려사 편찬자들은 당연히 반역叛逆으로 분류했다. 하지만 그의 충절은 높이 살 만했으니, 통주성通州城 남쪽 전투 현장에서 거란군에 사로잡힌 그는 투항하라는 거란군주 야율융서의 회유를 끝까지 거부하며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목종을 시해하고 현종을 앉힌 강조는 그것을 구실로 토벌을 앞세운 거란 40만 대군을 맞아, 30만 대군을 이끄는 총사령관이자 당시 고려 조정 최고 실권자로서 직접 전장에 뛰어든다. 보통 최고 권력자는 최전선에 나서지 않고 대리인을 내세우는 데 견주어 그 자신이 직접 나섰다는 점이 이채롭다. 다만 이 전쟁에서 무참히 패배하고 어처구니 없는 판단 미스로 그 자신이 사로잡히는 신세가 됐다는 점에서 그는 지장智將이라 볼 수는 없으며, 우직한 군인이라는 인상을 .. 2024.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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