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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거란전쟁70

고려거란전쟁과 초조대장경 대장경 목판은 어마어마한 문화재다. 필자 생각으로는 이건 한국 같은 크기의 나라에서 나올 수 있는 볼륨의 문화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금속활자만 해도 적은 카피수를 다양하게 찍고 싶다는 욕망이 보이지 않는가. 한국적인 인쇄 전통이라 할 것이다. 금속활자는. 반면에 고려시대 대장경 사업은 그 무지막지한 분량. 게다가. 초조대장경은 조판이 1011-1877까지 만들었다는 설이 옳다면 993-1018년의 고려거란전쟁의 후반기와도 겹치는 것이니, 전쟁하랴 대장경 만들랴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이런 대장경을 두 번을 만들고 그 사이에 의천의 교장까지 있었으니 이 당시의 고려는 싸우고 남는 시간에 목판을 죽도록 팠던 셈이겠다. 참고로 지금 남아 있는 팔만대장경은, 1236-1251년에 조판한 것으로 1231-125.. 2024. 1. 26.
고려거란전쟁이 건진 영웅은 양규와 지채문이다 이 두 사람 저 드라마가 아니었던들 언제까지 묻혀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언젠가는 부각했겠지만, 솔까 양규는 그나마 개설서에 이름은 잠깐 들이밀기는 하지만 지채문은 노답이었다. 실제 고려사나 고려사절요를 보면 두 사람 활약은 영웅적이다. 그 압도적 거란군 위력에도 굴하지 아니하고 40만 거란군을 상대로 흥화진을 사수하고 드라마처럼 곽주성을 천700명으로 탈환했으며, 회귀하는 거란군을 곳곳에서 요격해 공포에 빠뜨린 이가 양규다. 회귀하는 거란군을 상대로 7전7승인가 하고는 나중에 장렬히 산화했다. 그는 역사가 추앙해야 할 영웅이다. 지채문. 동북면 지금의 함경도 쪽에 배치되어 있다가 급보를 받고는 서경을 구원하러 갔다가 여의치 않게 되자 개경으로 곧바로 달려 내려가 몽진하는 현종을 끝까지 지킨 사람이.. 2024. 1. 25.
김은부의 딸 색공色供이 제기하는 의문 앞서 본 고려사 김은부金殷傅 열전에는 그가 수주水州 안산현安山縣 출신이라 했으니, 이곳은 지금의 수원과 화성 정도에 해당하는 곳이다. 그가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랐는지는 저런 표현으로는 알 수 없다. 누가 어디 사람이라는 기록이 그가 반드시 거기서 나고 자랐다는 의미가 아닌 까닭이며, 엄밀히는 그 조적祖籍을 말하는 까닭이다. 이 열전에서 우리가 주목할 다른 대목이 있다. 성종成宗 때 견관승甄官丞을 지냈고, 목종穆宗 때에는 여러 차례 전임하여 어주사御廚使가 되었다가, 현종顯宗 초에는 공주절도사公州節度使가 되었다. 왕이 거란契丹을 피하여 남쪽으로 피난하다가 공주公州에 머무르게 되었는데, 김은부가 예를 갖추어 교외에서 마중하면서 (하략) 이를 보면 그는 성종 시대에 중앙 관료 사회에 편입되어 공무원 생활을 하다.. 2024. 1. 23.
거란 침공에 부활의 팡파르를 울린 팔관회 고려 성종은 종교 성향이 좀 묘한 구석이 있어, 정치에서는 철저히 유가 지향을 보인 반면, 그 시대 국교라 할 만한 불교 역시 열심히 신봉했다. 이 둘은 주자성리학이 착근하기 전에는 실상 그닥 정면으로 충돌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유불도儒佛道 중에서는 유독 불교랑 도교가 서로 맞지 아니해서 죽자사자 대판 쌈박질을 벌였지만, 그에서 유교는 한 걸음 비켜 나 있었다. 왜 이런 현상이 빚어지는가를 보면 둘은 지향점, 혹은 착근한 데가 달라서였다고 본다. 물론 이것도 주자성리학 이전이라, 중국에서도 중당 무렵 한유와 이고 시대가 되면, 이 두 사람은 원리주의 유가 신봉자라, 정치는 물론이고 여타 생활 분야에서도 불교가 활개하는 모습을 용납치 아니하는 모습을 보이며 이것이 결국 북송 남송 시대가 개막하면서 유교가 .. 2024. 1. 23.
드루와! 거란을 농락하는 고려 몇 차례 걸친 고려 정벌전에서 거란이 얻은 소득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특히 마지막 정벌전에서는 강감찬 강민첨 두 강씨한테 참패를 맛봤으니 가오만 열라 상하고 말았다. 그에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거란을 요동케 하는 내란이 발발한다. 발해 왕족 후손 대연림大延琳이 태평太平 9년(1029) 요 왕조 부수도 중 하나인 요양遼陽을 공격 점거하고 흥료국興遼國이라는 별도 왕조를 건국 선포하는 한편 자체 연호가 제정해 천경天慶이라 반포하기에 이른다. 이 흥료국은 이듬해 진압되고 말았지만, 이 반란은 반란으로 그치지 아니하고 동아시아 국제정세까지 흔들어댔으니, 신국가 선포 직후 그 신왕조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주변국가의 승인을 받는 것이다. 대연림 역시 고려와 송나라 등지에 사신을 보내서 연합을 제안하게 되니, 고.. 2024. 1. 14.
강조康兆의 변變, 앞뒤가 안 맞는 고려사 미스터리 목종이 승려가 된 대량원군(훗날의 현종)을 궁중으로 불러들였다는 건 죽음을 앞둔 후계자 지명이다. 회생 불능이라 판단한 목종은 태조 왕건의 혈육(손자)인 대량원군을 환속시켜 보위를 물려주려 했다. 이미 죽음을 앞둔 왕이었다. 분란이 생길 것을 우려해 그 후견인으로 목종은 서부지역 사령관 강조에게 군사를 이끌고 들어와 호위하라 했다. 근데 강조가 칼을 거꾸로 돌려 목종한테 겨눴다고? 왜? 목종을 폐위케 하고 유배를 보냈다고? 그리고 자객을 보내 죽였다고? 죽음을 앞뒀다는 그가 살아났다고? 안 맞자나? 이미 죽음이 눈앞에 둔 왕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간다. 강조康兆의 변變 도대체가 이 난은 원인과 결과를 설명하지 못한다. 내가 이 난을 접하게 되기는 중학교 때 처음이었을 것이니, 그때부터 지금까지.. 2024.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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