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광개토왕비12 내 대가리를 희생한 광개토왕비 독법讀法 왜 아무도 광개토왕비에 묻지 않았을까? 왜 저리 큰가? 글자는 또 왜 저리 크게 썼나? 왜 비면을 다듬지 않았는가? 이제는 조금은 이유를 알 것 같다. 묻지를 않았으니 답을 구하지 못할 수밖에.... (2011. 11. 10) *** 그래서 내가 시도한 것이 내 대가리를 활용하는 방식이었다. 내 대가리를 들이밀었다. 그랬더니 모든 의문이 봄눈 녹 듯 풀렸다. 광개토왕비? 장수왕비? 그 새로운 독법을 위한 한 시도 광개토왕비? 장수왕비? 그 새로운 독법을 위한 한 시도어제 국립중앙박물관이 '문자, 그 후' 특별전 개최와 맞물려 박물관 강당에서 개최한 자리에서 나는 '광개토왕비, 父王의 運柩 앞에서 靑年王이 보낸 경고'라는 題下의 발표문에서 다음 세 가지historylibrary.net 내친 김에 대가리를 .. 2022. 11. 10. 광개토왕비는 장수왕의 친정親政 기념비 2011년 11월 19일, 국립중앙박물관이 '문자, 그 후' 특별전 개최와 맞물려, 그날 박물관 강당에서 개최한 학술대회에서 나는 '광개토왕비, 父王의 運柩 앞에서 靑年王이 보낸 경고'라는 발표를 했다. 이 발표문은 이후 한국고대사탐구학회 기관지에 정식 논문으로 공간이 되었다고 기억한다. 이에서 나는 다음 세 가지를 강조했다. 첫째, 이른바 광개토왕비에서 능陵과 묘墓라는 글자가 엄격히 구별돼 사용되니, 전자가 광개토왕릉임에 견주어 후자는 이를 포함한 고구려 선대 왕릉 전반을 포함하는 왕가 전체의 묘역을 뜻하는 말이다. 따라서 이 비는 광개토왕릉이라는 단일 왕릉을 위한 기념비가 아니라 고구려 전체 왕릉 묘역 수호를 위한 법령 포고비다. 둘째, 나아가 이들 왕가 묘역 전체 관리를 위해 광개토왕의 존시교언存時.. 2020. 11. 20. 광개토왕비? 장수왕비? 그 새로운 독법을 위한 한 시도 어제 국립중앙박물관이 '문자, 그 후' 특별전 개최와 맞물려 박물관 강당에서 개최한 자리에서 나는 '광개토왕비, 父王의 運柩 앞에서 靑年王이 보낸 경고'라는 題下의 발표문에서 다음 세 가지를 강조했다. 1. 이른바 광개토왕비에서 陵과 墓라는 글자가 엄격히 구별돼 사용되고, 전자가 광개토왕릉임에 대해 후자는 이를 포함한 고구려 선대 왕릉 전반을 포함하는 왕가 전체의 묘역을 뜻하는 말이다.따라서 이 비는 광개토왕릉이라는 단일 왕릉을 위한 기념비가 아니라 고구려 전체 왕릉 묘역 수호를 위한 법령 포고비다. 2. 나아가 이들 왕가 묘역 전체 관리를 위해 광개토왕의 存時敎言에 따라 배치된 수묘인(守墓人. 묘지기) 330家는 중국 황제릉에서는 흔한 능읍(陵邑)의 일종이며, 그들 330家 중 220家는 포로로 충당하.. 2019. 11. 19. 가차假借, 뜻보단 발음 은작산 한묘銀雀山漢墓 우리 학계, 특히나 고물딱지를 신주보물단지처럼 여기는 우리네 역사 관련 학계에서 고질과도 같은 믿음이 있으니, 오래에 대한 과도한 믿음이 그것이다. 텍스트로 국한해 볼짝시면, 덮어놓고 오래된 것일수록 그에 대한 상대적인 믿음이 더 강한 노골과도 같은 신념이 있다. 오래된 것일수록, 그것이 소위 당대當代의 증언이라 해서, 그것이 후대에 나온 판본들에 견주어 당시의 실상을 훨씬 더 잘 전한다는 믿음이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소위 당대 혹은 당대에 가까운 텍스트일수록 의심을 살 만한 구석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언제나 그 보기로 들 듯이, 나는 광개토왕비, 그 기록의 진실성을 믿지 않는다. 그것이 광개토왕 혹은 장수왕 시대의 기록이라 해서, 그것이 저 시대 사정을 후대의 다른.. 2019. 9. 17. 텍스트의 기념비성, 독자는 누구인가? 모든 텍스트는 독자(a reader or readers)를 염두에 둔다. 누구를 독자로 한 것인가? 이 점을 망각하고 텍스트에 접근하면, 그 역사문화 99%를 망실하고 만다. 광개토왕비는 독자가 누구인가?북한산 비봉 진흥왕비는 독자가 누구인가?무령왕릉 묘권墓券은 독자가 누구인가? 적어도 저 셋 중에서 가장 대중성이 강한 텍스트가 광개토왕비요 독자가 지극히 제한된 곳이 진흥왕비와 묘권이다. 묘권은 독자가 지하세계 귀신들이요 북한산비는 독자가 천신지기天神地祇다. 이를 알아내는 것이 텍스트의 기념비성을 파헤치는 지름길이다. 그것을 해체하는 것이 역사가의 책무다. 저들 텍스트에 대한 저런 고려를 하지 아니하니, 개소리가 넘쳐난다. 기념비성을 몰각한 까닭이다. 내가 본 고대 금석문 중에서 가장 대중성이 높은 기념.. 2019. 4. 13. 머리통 하나에 두 글자 점제현신사비의 국적 소위 점제현 신사비(秥蟬縣神祠碑)다. 낙랑 유물로 본다. 낙랑군을 구성한 현(縣) 단위 지방행정 구역 중에 점제현(秥蟬縣)이란 곳에서 무슨 제사를 하고 그 기념으로 세운 비석이라 해서 대서특필한다. 후한(後漢)시대에 세웠다 한다. 나아가 낙랑군 평양설을 입증하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 중 하나로 채택한다. 한데 그 판독에 적지 않은 논란이 있다. 낙랑군인가? 개소리다. 그렇담 어느 시대 유물인가? 고구려다. 그 근거는 무엇인가? 머리통이다. 똑똑히 봐라. 머리통 하나에 글자 두 줄 들어간다. 이런 금석문 지구상에 오직 고구려밖에 없다! 머리통 뿐인가? 서체도 같자나? 나아가 중국엔 저런 비석 없다. 저리 무식한 비석 중국엔 없다. 그럼에도 후한시대 중국인이 만든 비석이라고? 안 믿겨? 왼쪽 상단이 저 유명.. 2018. 12. 16. 이전 1 2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