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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텍스트의 기념비성, 독자는 누구인가?

북한산 비봉 진흥왕순수비



모든 텍스트는 독자(a reader or readers)를 염두에 둔다.  


누구를 독자로 한 것인가? 이 점을 망각하고 텍스트에 접근하면, 그 역사문화 99%를 망실하고 만다. 

 

광개토왕비는 독자가 누구인가?

북한산 비봉 진흥왕비는 독자가 누구인가?

무령왕릉 묘권墓券은 독자가 누구인가? 


적어도 저 셋 중에서 가장 대중성이 강한 텍스트가 광개토왕비요 

독자가 지극히 제한된 곳이 진흥왕비와 묘권이다. 


광개토왕비



묘권은 독자가 지하세계 귀신들이요 

북한산비는 독자가 천신지기天神地祇다. 


이를 알아내는 것이 텍스트의 기념비성을 파헤치는 지름길이다. 그것을 해체하는 것이 역사가의 책무다. 


저들 텍스트에 대한 저런 고려를 하지 아니하니, 개소리가 넘쳐난다. 기념비성을 몰각한 까닭이다. 


내가 본 고대 금석문 중에서 가장 대중성이 높은 기념비는 영일 냉수리비와 울진 봉평비다. 

저들이 여타 금석문과 달리 대중성을 확보하는 곳에 건립된 이유다.


광개토왕비 얘기 나온 김에 이 텍스트가 누구를 독자로 상정했는지와 더불어 그 발화자發話者가 누구인지도 심대하게 고려해야 한다. 그 발화자는 장수왕이지, 결코 죽은 광개토왕이 아니다. 


광개토왕비



따라서 저 기념비는 좁게는 장수왕, 넓게는 그의 시대 고구려의 마스터베이션이다. 


그에 보이는 내용이 그 어느 기록보단 정확하다? 


웃기는 소리다.


나는 전부 거짓말로 본다.  


역사학은 물론이요 모든 학문에서 관건은 "왜"이지 "무엇"이 아니다.


So what? 


이에 대한 물음에 답변이 없거나 할 수 없는 학문은 학문이 아니다. 그것은 수도pseudo, 사이비 학문이다. 



テキストの記念碑性、読者は誰ですか?


すべてのテキストは、読者(a reader or readers)を念頭に置く。

誰を読者にしたのだろうか?この点を忘却し、テキストにアクセスすると、その歴史、文化99%を亡失してしまう。


広開土王碑は、読者が誰なのか?

北漢山碑峰眞興王碑は、読者が誰なのか?

武寧王陵墓券は、読者が誰なのか?


少なくとも私三の中で最も大衆性が強いテキストは広開土王碑よ


読者が極めて限定された場所が眞興王碑と墓券である。


墓券は、読者が地下世界鬼たちであり、
北漢山碑は、読者が天神地祇だ。

これ調べることテキストの記念碑性を暴く近道である。それ解体することが歴史の責務である。

彼らテキストのあんな考慮をしないので、でたらめがあふれている。記念碑性を沒却した理由である。

私が見た古代金石文の中で最も大衆性が高い記念碑は浦項冷水里新羅碑と蔚珍鳳坪新羅碑だ。

彼らが他の金石文とは異なり、大衆性を確保するところ建立された理由だ。

広開土王碑の話が出たついでに、テキストが誰を読者に想定していることに加え、その發話者が誰なのかも甚大に考慮する。そのバルファジャは長寿王であって、決して死んだ広開土王はない。

したがってその記念碑は狭くは長寿王、広くは、彼の時代高句麗のマスターベーションである。

それに見える内容がどの記録より正確である。

面白い話だ。

私は完全に嘘とみなす。

歴史学はもちろんのすべての学問でカギは「なぜ」で「何」ではない。

So what?

これに対する問いに答えがないかできない學問は學問ではない。それはpseudo、似而非學問あ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