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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10

무엇이 근대인가? 덕수궁과 측량의 경우 덕수궁 권역 공중에서 꼬나본 평면이라 건물 중심축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 권역은 크게 두 갈래가 있음을 직감한다. 왼편이 석조전과 지금 국립현대미술관이 쓰는 공간이라 그 전면에 언뜻 봐도 조선시대 고래古來하는 전통과는 어울리지 아니하는 분수대가 정좌함을 본다. 이 건물들은 정확히 남북 중심축을 맞추어 설계되었음을 본다. 이런 배치는 서구 근대과학 도입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 B라 표시하는 지점이 근대기 세례를 정통으로, 듬뿍 받은 형적이 되겠다. 반면 A라 표시한 지점은 남북 중심축을 따르기는 했지만 기울어져 있음을 본다. 내가 실측 수치 혹은 재보지는 않았지만 대략 5~8도 어간에서 틀어져 있을 것이다. 저것이 전근대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생각한 남북 중심축이다. 거의 모든 전통식 건축물이 이 구도.. 2025. 11. 20.
망국의 제1 원흉은 고종 망국의 제1 원흉, 고종이다. 그의 이런 책임을 면탈하는 것이 마치 식민사관 청산인 듯이 주장하지만 첫째, 그것이 결코 식민사관을 극복하는 첩경일 수가 없고 둘째, 그것이 식민사관을 극복하는 일도 아닐 뿐더러 셋째, 그렇다고 해서 그의 책임이 면탈되는 것도 이 아니다. 망국의 모든 책임이 고종 한 사람에게 귀결하지는 않는다 해도 상당한 책임에서 그는 자유로울 수 없고 그래서도 아니된다. 덕수궁을 경운궁으로 돌려야 한다는 주장, 그 뒤켠에는 이런 책임 면탈론이 있다. 그렇게 책임이 면탈한 자리에 강포한 일제가 자리잡는다. 순진한 처녀를 강포한 군인이 강간했다고 한다. (2011. 12. 3) *** 마침 저 무렵에 대한제국과 고종, 그리고 그 왕비 민씨를 구국의 영웅처럼 치받들고자 하는 움직임이 서울대 국.. 2020. 12. 4.
[발굴조사보고서] 덕수궁 돈덕전지 발굴조사 보고서 《덕수궁德壽宮 돈덕전지惇德殿址 발굴조사 보고서》 문화재청文化財聽·고려문화재연구원高麗文化財硏究院, 2019 돈덕전은 덕수궁에 건립된 서양식 양관으로 사바친 (Afanasij Ivanobich Scredin Sabatin, 1860 - ?) 이 설계했을 것으로 추정되나, 명확하지 않다. 원래 이곳은 총해관이 있었던 곳으로 고종 즉위 40주년 칭경예식 때 사용할 연회장 용도로 신축되었다. 돈덕전이 훼철된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덕수궁이 공원화되기 이전인 1921년에서 1926년 사이로 추정할 수 있다. 조사를 통해 확인된 돈덕전은 붉은 벽돌건물의 2충 서양식 건물로 베란다와 전면계단, 원형의 튜렛 등을 갖추고 있다. 또한 1907년 작성된 평면도(의례를 치루기 위한 약식도면)에 의하면 전면(前面) 계단이.. 2019. 9. 3.
Deoksugung Palace (덕수궁, 德壽宮) of Today 봄비 촉촉한 지금 덕수궁德壽宮이다. 꽃으로 범벅이다. 막바지 이른 봄이 붉음을 탐하며 헉헉댄다. 이 정도면 지랄이라 하리라. 2019. 4. 25.
Jungmyeongjeon Hall Area of Deoksugung Palace(덕수궁 중명전) The Jungmyeongjeon Hall Area formerly was a residential area for Western missionaries. The area was incorporated into the palace premises when Gyeongungung Palace (today's Deoksugung Palace) was expanded in 1897. Because the American legation had already been established between here and the main buildings of Gyeongungung Palace, this area was used as a kind of separated palace. Jungmyeongjeon H.. 2019. 4. 14.
야음 틈타 찾은 덕수궁 살구꽃 지나는 길에 살구꽃 향기 담 타고 넘어 오기에 막무가내로 끌려갔다. 어둑한 하늘 백댄서 삼아 살구꽃 여전히 만발이더라. 진즉에 졌을지 모르나 꽃샘에 살아남았을지도 모른다. 호롱불은 아닐터 심지 돋우다 코밑에 검댕이 바를 일은 없겠으나 엄마가 두들기는 다듬이질 소리 금방이라 들릴듯. 그래, 그땐 풀먹이고 인두로 지지고도 했어. 하긴 우리집은 초가였어. 저런 기와등 같은 집은 꿈이었더랬어. 손가락 침발라 창호지 뚫고픈 욕망 솟음한다. 혹 모를 일 아닌가? 누군가 연지곤지 바르고 쪽두리 쓴 채 수줍게 기다릴지. 벌써 힘 잃고 해파리마냥 흐물흐물한 참꽃을 장송한다. 그래 꿈이었어. 모든 게 꿈이었어. 그래도 꿈꾼 그 순간만큼은 그리도 행복했노라 해둔다. 꿈에서나마 함께 있었으니, 그래서 무척이나 행복했노라 해둔다. 2019.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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