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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양사10

정철鄭澈〈약사대藥師臺〉 정철(鄭澈, 1536~1593), 〈약사대(藥師臺〉 남쪽 시내에서 머리를 감고, 南溪沐余髮, 다시금 찾아 올라온 약사대. 更上藥師臺。 단약 찾아 따라와 머무는데, 服食從渠住, 이따금 보이는 찾아온 우객. 時看羽客來。 *** 台植補 *** 장성 백양사 뒷산을 백암사라 하고 그 봉우리 중 병풍처럼 깎아지른 암봉을 백학봉이라 하는데 약사대는 그 중턱 암반에 똬릴 틀었다. 이곳을 약사대라 한다. 2020. 11. 1.
김우급金友伋〈백양산 노대암에 백학이 날아와 둥지를 지었다[白羊山露臺巖白鶴來巢]〉 김우급(金友伋, 1574~1643), 〈백양산 노대암에 백학이 날아와 둥지를 지었다[白羊山露臺巖 白鶴來巢]〉 선금이 이미 새끼 낳았단 기쁜 소식에 喜聞仙禽已化胎。 늙은이 생각 없이 높은 노대암 올랐소 衰年無意上高臺。 대사님 이 병든 노인 가련히 여긴다면 師乎倘或憐吾病。 하얀 털에 붉은 이마 단정학 그려오소 畫取霜毛丹頂來。 2020. 11. 1.
정철鄭澈〈영천굴靈泉窟〉 정철(鄭澈, 1536~1593), 〈영천굴(靈泉窟)〉 만고 세월 전해온 영천굴은, 萬古靈泉窟。 천계에 이르는 조그만 동굴. 三天小洞門。 창문 앞엔 파랑새 둥지 있고, 窓前巢翡翠。 처마 끝엔 떠돌던 구름 잔다. 簷際宿歸雲。 《송강원집(松江原集)》 권 1 *** 台植補 *** 영천굴靈泉窟은 장성 백양사 암자 약사암 인근 굴이다. 약사암은 깎아지른 바위산 백학봉 기슭에 있다. 이곳에서 백양사를 한 눈에 조망한다. 2020. 11. 1.
백양사 단풍구경 코로나팬데믹이라 해서 건널 순 없어 다시 찾았다. 백학봉 쳐박아 봤다. 빛이 들어오니 영롱하다. 약사암 올라 백양사 조망한다. 헉헉하며 오른 보람은 있다. 비자나무 숲을 지난다. 이른 아침 저걸 담겠다고 사진학교 늙은 학생이 몰린다. 가을은 늙음이다. 2020. 10. 30.
절과 문중이 붙은 100년 전 "내 땅이다" 불대산 결투 [불대산의 결투] 1918년부터 1935년까지 조선총독부는 임야조사사업을 진행하였더란다. 당시 장성군 장성읍 불대산을 두고 백양사와 연일정씨청안이씨 연합군의 싸움을 담은 1924년 12월 2일자 《매일신보每日申報》 기사이다. 결론은 백양사의 압승이었다. 長城의 鄭、李兩家 佛臺山野의 紛爭 地元住民의 陳述 全南 長城郡 長城面 流湯面[里] 佛臺山으로 하여금 白羊寺, 鄭李兩姓家間에 係爭함에 對하여 一般의 非難과 地元住民의 陳情書까지 提出하였던 事實은 既爲報導한 바이거니와 該陳情書의 全文은 左와 如하더라. 陳述書 長城郡 長城面 流湯里 所在 山野(山名佛臺山) 一圓에 對하여는 白羊寺, 鄭、李兩姓家間에 現今 紛爭中인 地인바 本人等은 右의 山野에 對하여 地元住民으로써 慣行上 元來農作의 時 一切草肥를 採用하는 緣故가 有하.. 2020. 10. 8.
조선후기 장성 입암산성 고갯길 새재[鳥峙] 장성長城 입암산성笠岩山城 동쪽에서 정읍井邑으로 넘어가는 고개가 오늘날 새재라고 하여 아름다운 길이다. 새재라는 문헌 근거가 있느냐고 묻는 분이 계셨는데, 당시에는 찾지 못하여 월은치月隱峙만 말씀드렸다. 1899년 간행된 《장성읍지長城邑誌)》에 수록된 지도에 조치鳥峙가 있다. 이 지도에는 19세기 백양사白羊寺가 어떠했는지가 잘 나타난다. 그 말사인 운문암雲門庵에는 탑이 있다고 표시돼 있지만, 지금은 흔적도 없다. *** (김태식 보) 고갯길에 새재라고 이름 붙인 일이 각지에 산재하거니와, 내 고향 경북 김천시 대덕면 조룡리 봉곡사 라는 절이 위치한 곳에도 고갯길이 있어 새재라 하며, 그 아래 사하촌 두 곳을 각기 상대적 위치에 따라 아랫새재 윗새재라 부른다. 물론 이런 새재로 가장 이름 높은 데가 문경새재.. 2020.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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