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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양사10

백암사 쌍계루에 부친 정몽주의 노래 장성 백암사 쌍계루에 붙이는 노래[長城白嵒寺雙溪寄題] [高麗] 정몽주(鄭夢周·1337~1392) / 기호철 譯評 지금 시를 지어 달라는 백암산의 중을 만나니붓을 잡고 시구 읊조리며 재주 없어 부끄럽소청수가 누각 세워 비로소 훌륭한 이름이 났고목옹이 기문을 지었으니 값어치 더욱 더하네노을빛 저 멀리 어렴풋이 저무는 산이 붉었고달빛이 왔다갔다 흔들리는 가을 물이 맑구나오래도록 인간 세상에서 근심으로 애타는 고뇌언제나 옷자락 걷고서 그대와 함께 올라갈까 求詩今見白巖僧, 把筆沉吟愧未能。淸叟起樓名始重, 牧翁作記價還增。烟光縹緲暮山紫, 月影徘徊秋水澄。久向人間煩熱惱, 拂衣何日共君登。 이 시는 《신증동국여지승람》 권 36 장성현(長城縣) 불우(佛宇) 정토사(淨土寺)에 실려 있으며 《포은집(圃隱集)》 권2에 〈장성백암사쌍.. 2018. 11. 17.
비자나무 숲 뚫고 백양사 약사암에 오르며 부부 탄생을 축하하는 풍악 뒤로하고는 비자나무 숲을 지나 약사암 향해 산길 오른다. 저 비자나무 숲은 천연기념물이라, 현지서 만난 장성군 담당 공무원이 이르기를, 저 나무는 죽어도 베어내지 못한단다. 썩은 시체 용케 얻어걸리면 바둑판 몇개라도 만들려 했더니 예선 걸러먹었으니, 지정되지 않는 구역에서 찾아봐야겠다. 저 나무 주된 용처가 바둑판이다. 오후 세시가 넘었으므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며 선사하는 끝물단풍은 홍등가요 갓잡은 소에서 썰어낸 살코기 빛이다. 붉음 노랑 교집합 화려하다. 문득문득 돌아보며 저를 찬탄한다. 땀 많은 체질 탓이기도 하려니와, 금새 온몸은 땀 범벅이라, 찌린내 몸에 밸까 약사암 올라 훌러덩 잠바때기 벗어제끼니 이파리 향기 머금은 계곡 바람 쏴 하니 피부를 훝는다. 이 약사암은 저.. 2018. 11. 12.
원님 덕에 나발 분 백암산 단풍구경 올해는 놓치는가 했더랬다. 지난 여름이 기록적인 폭염을 선물한 만큼 겨울 역시 그만큼 걸음걸이가 빠른 듯한 까닭이었다. 다행히 막차를 탔으니 끝물은 겨우 부여잡은 셈이다. 남도 장성 땅, 백암산이 품은 백양사 쌍계루에선 주말 지인의 결혼식이 있었다. 단풍 축제가 끝물이라 그런지 백양사로 들어가는 외길 일차선은 차량으로 범벅이나, 거북이 걸음이 좋은 까닭은 그래도 몇가닥 남지 않은 단풍 끝물을 느긋이 감상케 하기 때문이다. 경내로 들어서니 곶감을 깎고 말린다. 처마밑 곶감이 주변 단풍과 하모니를 맞춘다. 좌판 벌여놓곤 모시 송편을 파는데, 빚어 찌기 시작한 송편이 김이 모락모락한다. 녹색이 빛을 발하는데 참기름을 발라서인지 아님 빛이 그랬는지 알 수는 없다. 듣자니 송편 만드는데 쓰는 모시는 영암이 산지라.. 2018. 11. 12.
서거정이 말하는 내장산 백양사 단풍철이다. 그런 대명사로 내장산을 으뜸으로 꼽는다. 그 내장산에 백양사가 있다. 조선초기 사가정 서거정의 다음 증언은 현재의 내장산 백양사 내력 중 고려말~조선초 일단을 증언하거니와, 이에 의하면, 당시에는 백암사라 일컬은 백양사가 실은 행촌 이암 집안 고성이씨 원찰이라는 사실이 그것이다. 그런 성격이 언제까지 지속했는지 알 수는 없으나, 사가정 당대까지 100년이나 이어졌다는 사실을 소홀히 보아넘길 수는 없다. 이는 당대 불교사를 고찰할 때도 여러 문제의식을 고취하거니와, 불교가 일방적인 탄압대상이었다는 데 대한 반론 역시 요즘 만만치 않거니와, 불교가 그리 호락호락하니 당하지는 아니했다. 강고한 유교사회에서도 불교는 여전히 효용이 있었으며, 특히나 가정 주도권을 장악한 이는 남자가 아니라 여성들이었.. 2018.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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