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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7

에도시대 학문이 분석되어야 실학의 견적이 나온다 필자는 그렇게 생각한다. 에도시대 학문사가 제대로 분석되어야 (난학 포함) 우리나라 실학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견적이 나온다. 이 분석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조선성리학의 황혼에 해당하는 다산이 졸지에 근대적 사상가가 되어 교과서에 실리는 것이다. 실학의 정확한 역사상 포지셔닝은 에도시대 학문분석이 끝난 후에 진행해도 늦지 않다. 거듭 이야기 하지만 조선후기 실학은 근대의 선구가 아니다. 가장 빛났던 16세기 조선 성리학 2024. 9. 8.
세계사에서 번지수도 찾기 어려운 실학의 개혁론 조선후기 실학의 개혁론을 들어 이것을 근대화의 선구 혹은 앙샹레짐의 붕괴의 징조로 간주하는 주장이 목하 대한민국 한국사의 주장이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엔 우리나라 실학의 개혁론, 특히 토지개혁론 같은 이런 것은 세계사에서 소위 말하는 중세의 붕괴와 근세의 출발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족보도 없고 번지수도 있는 얼토당토 않은 주장이 대부분이다. 전통적인 유교적 세계관을 한편에서 따오고, 실현가능한지 아닌지도 확신없는 이야기를 가지고 여전제니 한전제니 떠들고 있는 것을 도대체 세계사 어느 동네에서 이런 공상같은 이야기를 근대의 출발이라고 본다는 말인가? 한국의 실학론은 전혀 근대와는 무관하며, 굳이 세계사에서 찾는 다면 헤이안시대로 돌아가자는 딱 일본의 장원정리령 수준의 언설이다. 그나마 실학을 빼고 나면 .. 2024. 5. 6.
실학은 근대의 선구가 아니다 이 이야기는 이 블로그에 몇 번을 쓰는 지 모르겠는데. 실학이 근대의 선구면 잠자리가 새다. 실학은 18-19세기 조선사회 위기 국면에서 완전히 핀트에 어긋난 이야기를 해결책이라고 내 놓은 책벌레들의 넋두리다. 차라리 그 당시 상인들에게 조선사회 국면타개 해결책을 물어봤다면 훨씬 그럴 듯한 대답이 나왔을 것이다. 조선이 당시 일본의 난학蘭學 정도로만 세계에 대한 이해가 있었다면 절대로 나올 수 없는 소리가 실학, 특히 중농학파들의 시무책이다. 실학은 근대의 선구가 아니다. 실학을 근대의 선구로 보니 조선이 왜 망했는지를 모르는 것이다. 2023. 4. 15.
조선후기 실학사에 묻는다 소위 조선후기 실학파 중 중농학파 토지개혁론 중에 실제로 실현될 만한 게 뭐가 있는가? 죄다 유교 경전 정전법에 기초하여 중국의 인민공사 내지는 북한 집단농장 같은 것을 만들자는 주장 뿐인데 이것을 정말 "근대의 징후"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만약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이런 "중농학파"를 근대의 선구로 보는 사람들의 "근대화"라는 실체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쉽게 말해서 조선시대 중농학파 주장을 따라간다면 그 최종 종착역은 지금 북한 정권과 같은 사회 아니겠는가? 조선후기 실학파, 특히 중농학파는 "근대의 선구"가 아니다. 이걸 근대의 선구라고 보는 데서 우리나라 조선 후기의 모든 역사 서술은 꼬이기 시작한다. 특히 다산의 토지개혁론은 말이 좋아 개혁이지 인민공사를 만들자는 것인데, 중국 인민공사와 .. 2022. 12. 4.
이재난고, 실학자로 포장된 성리학도 황윤석의 일기 학자들은 이재 황윤석을 실학자라고 주장하지만 철저한 성리학자였다. 그의 실사구시 자세가 바로 성리학자의 기본이었으나 그에 대한 몰이해로 그를 실학자라는 틀에 구겨 넣으려고 한다. 그의 《이재난고》는 독특한 일기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자세히 살피면 그는 한 번 쓰면 화석처럼 퇴적되어버리는 일기를 쓰지 않으려고 했다. 작성된 일기를 이후에도 자꾸 수정 보완하여 완성된 연구노트를 만들고자 했다. 그가 일기를 쓸 때 시종 견지한 태도를 《이재난고》 권17 에 적어두었으니, "조정의 일을 쓰지 않고, 잡스러운 사람의 말을 쓰지 않고, 성인의 말씀이 아니면 쓰지 않고, 허원한 주장을 쓰지 않는다.[勿書朝廷事 勿書雜人語 勿書非聖言 勿書虛遠說]" 는 것이었다. *** 편집자주 성리학과 실학을 맞장뜨게 하는 구도는 .. 2022. 11. 11.
실학 실학은 역사학자들이 연구해낸 개념으로 벌써 70년이 넘었다. 조선 후기에 이전과는 뭔가 다른 사조가 있다는 것은 일제강점기부터 알려져 있었다. 언론인이며 역사학자였던 고 천관우(千寬宇, 1925~1991) 선생이 서울대 국사학과 학부 졸업논문으로 ‘磻溪 柳馨遠 硏究’를 제출하였다. 당시 지도교수는 이병도 선생이었는데, ‘군계일학(群鷄一鶴)’이라고 칭탄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천관우 선생 동창이 이기백 선생인데, 덕분에 닭이...) 그는 반계 유형원의 개혁론을 실학 발생의 시초라고 보았다. 이 방대하고 충격적인 논문은 《역사학보(歷史學報)》 2집과 3집에 나누어 실리게 되었으니 바로 〈磻溪 柳馨遠 硏究 (上)·(下) - 實學 發生에서 본 李朝社會의 一斷面〉(1952·1953)이다. 여기에서부터 실학이라는 .. 2021.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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