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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의 특별하지 않은 박물관 이야기

박물관이 직장 : 무엇이 있는지 물으신다면

by 느린 산책자 2023.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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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뭐가 있는데?”

이것은 직장을 밝히면 종종 듣는 질문이다. 이름만으로는 어떤 박물관인지 모르겠으니, 대표 소장품을 알려달라는 의미다. 대표 소장품은 그 박물관이 가진 주요 컬렉션 중 하나로, 박물관의 이미지를 결정한다. 이를 보려고 박물관에 가기도 한다. 가령 국립중앙박물관의 반가사유상이랄지 루브르의 모나리자를 떠올렸다면, 딱 맞는 연상이다.

그러면 우리 박물관의 대표 소장품은 무엇일까. 그런데 여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나의 직장 적응기에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야 우리 소장품을, 우리 전시를, 우리의 활동을 어떻게 봐야할지 전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래야 본래 소소한 나의 일상을 쓰려했던 목적에 더 적합한 글이 되겠다.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박물관 브랜드실로 조성되었다. 국보 78호와 83호 반가사유상 두 점을 국립중앙박물관의 대표 브랜드로 설정하고, 두 점만을 위한 단독 상설전시뿐 아니라 여기서 파생되는 다양한 굿즈들도 출시하고 있다.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직장에 적응하지 못한 이유
돌이켜 보면 이 직장에 적응하기란 상당히 힘들었다. 고백하자면 이 박물관을, 이 박물관에서 하는 일을 좋아하기까지는(과연 100%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고민은 되지만) 대충 계산해보자면 3~4년 정도는 걸렸던 것 같다. 여기에는 여러 원인이 있었지만, 그중 가장 큰 이유는 나의 전공에서 비롯됐다.

학예사-큐레이터라고도 하는 직업-가 되기 위해서는 박물관과 관계된 전공을 선택해야 한다. 요즘은 그 전공이라는 것이 다소 넓어졌는데, 그래도 전통의 강자라 한다면 ‘사학’, ‘미술사학’, ‘고고학’ 이렇게 꼽을 수 있다. 나는 이 중에서 ‘미술사학’을 전공했다. 

내가 6년 넘게 배운 것은 미술의 역사였다. 대부분 한국이나 중국의 미술 작품에 대해 배웠다. 늘 예쁜 것들을 공부하고 예쁜 것들을 눈에 담고 지냈다. 박물관에 가는 것이 즐거웠던 이유는 예쁜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너무 단순한 이유인가? 여기서 더 파생되는 이유가 있기는 한데, 시작점은 역시 아름다운 것을 본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미술사 전공자들은 학계에 남는 경우가 아니라면,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일하고는 한다. 대부분은 흔히 떠올리는 도자기나 그림, 서예 작품들, 책 등을 가진 곳이 많다. 그리고 ‘이 미술품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떻게 쓰였는지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우리 박물관은 포커스가 다소 다르다. ‘서울을 어떻게 볼 것인가’가 포인트이다. ‘서울 사람들은 어떻게 생활했을까?’, ‘지금의 서울은 왜 이렇게 형성되었을까?’. 이것이 우리가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이다. 그래서 서울을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은 전시품이 된다.

#여의도 시범아파트 분양 홍보지. 아파트 광고지는 지금도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작품의 아우라는 없지만, 우리 생활의 일부를 보여주는 자료이다

 
세탁기, 냉장고, 텔레비전. 심지어는 우리가 학창 시절에 썼던 문구류도 진열장에 들어갈 수 있다. 서울 사람들이 사용했던 것이라면 가능하다. 이들은 서울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했는지 보여주는 증거물이기 때문이다. 그 외에 서울이 그려진 지도, 서울에서 작성된 행정문서, 각종 홍보물  등도 우리가 종종 전시하는 것들이다. 당연히 고미술품이나 현대 미술 작품들이 지닌 ‘아우라’는 없다. 

아름답지 않다! 

이것이 내가 직장에 적응하기 힘든 이유였다. 나의 즐거움을 빼앗긴 느낌이었다. 나는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그것들을 분석하는 데 훈련이 되어있는 사람이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갖고 있던 지식은 이 박물관에서는 크게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았다. 가끔은 미술사적인 지식이 필요할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문서 해독 능력이 필요하거나 혹은 건축사적 지식이 더 요구되었다. 부적응자 혹은 부적격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찾고 있는 답이지만
어느 날, 그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전시 준비를 하면서, 나의 능력에 대해 자괴감에 가득 차 있던 때였다. 

“전시를 망친 것 같아요.”라고 하니, 

선배 학예사가 말했다.

“각자가 잘하는 것이 있어. 어떤 사람은 공간을 잘 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전문 지식이 많기도 하고. 모든 것을 잘 할수 없어. 자기가 잘하는 것을 장점으로 삼고 그것을 특화하면 돼. 다른 것은 동료들이나 과장님이 도와줄 거야.”라고. 

그때부터 나는 나의 장점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했다. 아직도 그것에 대한 답은 정확히 찾지 못했지만, 다른 전공자들에 비해 시각적인 면을 자세히 본다는 장점은 있는 것 같다. 6년 넘게 그것을 훈련했으니까!
(그런데 실은 최근 들어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시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있지만, 그래도 일단 이전에 느낀 것을 써봅니다.)

또 다른 고민도 있었다. 가끔은 ‘종이에 불과한 이 문서들에서, 집에 흔히 있던 생활용품에서 어떤 것을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 이들이 전시되어야 하는 당위성을 뭐라 설명해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사실은 아름다운 유물을 전시하는 다른 박물관에 대한 자격지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들이 전시되어야 하는 이유를 찾는다는 목적에서 비롯된 고민이었지만, ‘이 박물관의 전시가 왜 필요할까’라는 고민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른 이전의 기억에서 답을 찾았다. 대학원 시절, 지도 교수님의 말씀이었다. 

“우리가 공부하는 것은 우리의 층위를 발견하기 위해서야. 고고학자가 층위와 그 안의 유물들을 통해 옛 사실들을 파악하듯이, 우리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들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지를 밝히는 거지.”

그때는 ‘아! 그래. 내가 공부하는 것은 결국 나를 알기 위해서야.’라고 유레카를 외쳤는데,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던 것이었다. 교수님이 말씀하셨던 ‘사람들이 만든 것’은 작품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던 것을. 

'사람들이 만든 모든 것'을 통해 현재 우리의 생각이, 우리의 기반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알수 있는 것이었다. 미술사 전공자의 직장 적응이 그제서야 시작되었다.



이야기를 듣고 싶으시다면
그런 면에서 우리 박물관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는 곳이다. 많은 수의 글자를 읽는다는 진입장벽이 있고, 화려한 무언가는 없긴 하다.

하지만 어떨 때는 옛 추억을 소환할 수도 있고, 어떨 때는 우리 동네의 옛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다. 그 이야기는 가깝게는 오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저 멀리는 조선시대까지 갈 수도 있다.

국가라는 거대한 시각에서 벗어나서 서울이라는 프레임으로, 그리고 그 안에서 서울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그것은 나의 이야기로도 이어질 수도 있다.

어느날, 우연히 나도 몰랐던 나의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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