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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에 참석하고 회포를 푸나니 연회에 참석하여(侍宴) 황제는 밝음이 일월과 같으니 皇明光日月황제는 덕이 천지를 실을 만하고 帝德載天地삼재 모두 태평 창성하니 三才竝泰平만국이 신하로 엎드리노라 萬國表臣義 회포을 푸나니(述懷) 도덕이 하늘의 가르침 이으니 道德承天訓염매는 진재(眞宰)에 맡기노라 鹽梅寄眞宰부끄러워 부리며 어루만질 줄 모르니 羞無監撫術어찌 사해에 군림할 수 있으리 安能臨四海 아버지 텐무천황(천무천황)이 죽은 671년에 23세로 집권해 천황이 되었으나 이른바 진신의 난(壬辰之亂)에 휘말려 반란을 기획한 작은 아버지 텐지(천지)에게 밀려나 25세에 죽임을 당한 오오토모황자(대우황자. 大友皇子) 작품으로 전하는 한시 두 수이다. 이 대우황자는 나중에 홍인천황(弘引天皇)으로 추존되는데, 그것이 언제인가? 메이지 시대였던 것으로 기억.. 2018. 2. 27.
경복궁(景福宮)과 경복전부(景福殿賦) 지금까지 만난 한문 원전 텍스트 중에 나를 질려버리게 하고, 나 스스로는 똑똑하다고 자부하는 내 머리가 이 정도에 지나지 않는가 라고 의심케 만든 두 부류가 있다. 1. 최치원 사산비명(四山碑銘)이니, 최치원이란 사람이 누구인지는 말 안 해도 알 터이고, 사산비명이란 치원이가 왕명을 빙자해 돈 받고 이 인간은 매우 매우 훌륭하다고 선전해 준 비문을 말하는데, 당시 신라 저명한 고승이 죽은 다음에 그 비명을 지어달라는 부탁을 받고 써준 것이 바로 사산비명이라. 이들 비명이 각각 자리잡은 곳이 네 山이라 해서 저리 일컫는다. 한데 이 사산비명은 문체가 사륙변려문이라. 이거 한문 시간에 한 두 번 잠깐 보고는 지나치기 마련인데, 사륙변려문이란 4글자와 6글자가 세트가 되는 것은 물론 그런 세트와 세트끼리로 照.. 2018. 2. 27.
김부식金富軾 진삼국사기표進三國史記表 進三國史記表金富軾 臣某言。古之列國。亦各置史官以記事。故孟子曰。晉之乘,楚之擣扤,魯之春秋。一也。惟此海東三國。歷年長久。宜其事實。著在方策。乃命老臣。俾之編集。自顧缺爾。不知所爲。中謝。 伏惟聖上陛下。性唐堯之文思。體夏禹之勤儉。宵旰餘閒。博覽前古。以謂今之學士大夫。其於五經諸子之書。秦漢歷代之史。或有淹通而詳說之者。至於吾邦之事。却茫然不知其始末。甚可歎也。况惟新羅氏高句麗氏百濟氏。開基鼎峙。能以禮通於中國。故范曄漢書,宋祁唐書。皆有列傳。而詳內略外。不以具載。又其古記文字蕪拙。事迹闕亡。是以君后之善惡。臣子之忠邪。邦業之安危。人民之理亂。皆不得發露。以垂勸戒。宜得三長之才。克成一家之史。貽之萬世。炳若日星。如臣者本匪長才。又無奧識。洎至遟暮。日益昏蒙。讀書雖勤。掩卷卽忘。操筆無力。臨紙難下。臣之學術蹇淺如此。而前言往事幽昧如彼。是故疲精竭力。僅得成編。訖無可觀。祗自媿耳。伏望聖.. 2018. 2. 27.
동문행(東門行) : 2000년 전 생계형 범죄 客이 있어 날 더러 너는 왜 역사를, 특히나 고대사를 공부하느냐 물었다. 내가 客에게 답하여 가로대, “현재에 대한 상대화니라”고 했다. 客이 再問하기를 “그것이 何謂?” 하되, 내가 다시 答曰, “우리가 지금 절대적이라고 믿고 있는 도덕을 비롯한 일체의 것들이 장구한 역사를 보건대 절대가 아닌 상대임을 알려주나니, 예컨대 어머니 아버지 중 하나가 다른 형제와 자매가, 또 조카가 이모나 고모와, 삼촌이 조카와 결혼하는 행태만 해도 지금은 근친상간이며, 패륜이라 하지만 이것이 시대를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가깝게는 고려시대에도, 나아가 더욱 거슬러 올라가면 삼국시대에도 그러했으니, 더구나 그런 근친상간적인 결혼 행태가 하등 이상하게 통용되지 않았으니, 이로써 우리가 믿는 패륜의 추억 또한 장구한 역사의 흐.. 2018. 2. 26.
서문행(西門行) : 2000년 전의 CARPE DIEM 바로 앞서 나는 동문행(東門行)이라는 애절한 악부시(樂府詩)를 소개한 바 있거니와(그 옛날 블로그에 올린 글로서 새로 만든 블로그에 옮겨왔으니 순서가 뒤바뀌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먹고 살 길이 없어 강도 행각에 나설 수밖에 없는 2000년 전 애잔한 어느 평민 가정을 노래한 것이려니와, 이번에 소개하는 서문행(西門行)이라는 또 다른 악부시는 우선 제목에서 앞선 동문행東門行과 對를 이룬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제목만 西門行 ↔ 東門行이 아니요, 그 내용 또한 극한 대척점을 이루고 있다고 할지니, 이 西門行이 지향하고자 하는 바를 간단히 낭만주의 시대 유럽에서 유행하는 문예 사조를 빌려 추리자면 CARPE DIEM이다. CARPE DIEM! 흔히 이 말은 Catch(or Seize) th.. 2018. 2. 26.
혼돈에 말뚝박기 : 한문강독을 겸하여 현존 《장자》(莊子)는 내편(內篇) 외편(外篇) 잡편(雜篇)의 모두 3개편으로 구성되어 있음은 널리 알려진 바라. 이런 分章은 진(晉)나라 때 문사인 곽상(郭象. AD 252?~312)라는 자가 그 전대부터 전하는 《장자》 텍스트에 주석을 가한 《장자주》(莊子注)에서 비롯됐다. 이 《장자주》 이전 《장자》는 어떤 외양을 띠고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따라서 우리에게 익숙한 《장자》란 모두 이 곽상이라는 사람에게 뿌리를 둔다. 따라서 일반 시중에 선보인 모든 《장자》 텍스트는 편의상 ‘현통용본’이라 할 수 있으니, 실상 현재의 통용본 《장자》는 말할 것도 없이 이 곽상이 손을 댄 《장자주》와 동일한 체제를 갖추고 있다. 이 《장자》는 도교가 국교가 된 당나라 때는 매우 존숭을 받게 된다. 왜 당나라가 도교.. 2018. 2. 26.
쇠돌 엄마 기슈? 서가를 채운 책 중에는 대학시절에 사서 모은 게 일부나마 남아 있으니, 며칠 전에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서가 한 켠에 저번 이삿짐 싸서 이곳으로 옮겨올 때 뭉탱이로 묶인 그 빛바랜 책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하도 먼지가 덕지덕지 끼어 있어 작심하고 책을 닦았다. 잦은 자취생활, 1986년 서울 유학 개시 이후 언젠가 내가 이사한 횟수를 헤아려 보았더니 18 비스무리한 숫자가 나오더니, 그처럼 잦게 주거를 전전하는 동안에도 용케도 살아남아 지금에 이르고 있는 빛바랜 책들이다. 지금은 헌책방에나 가야 재수 좋게 만나게 되는 것들인데, 개중 한 책을 보니 1985년 글방문고라는 출판사에서 출간한 ‘글방문고’ 시리즈 중 하나인 ‘동백꽃’이라는 단편소설집이라. 금광에 미쳐 요절한 강원도 춘천 출신 소설가요, 내 .. 2018. 2. 26.
술로 살던 사람이 갑자기 술을 끊었더니 중국 북송(北宋)시대를 살다간 광세(曠世)의 박학이요, 절세(絶世)의 천재로 심괄(沈括·1031~1095)이란 괴짜가 있었으니, 왕안석(王安石)이란 사람이 일으킨 일대 국가개혁 프로젝트인 변법(變法)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참여한 그가 저술한 문헌으로 지금도 전하면서 널리 읽히고 있는 명저로 《몽계필담》(夢溪筆談)이 있을 지니라. 내 오늘은 이 땅의 주당(酒黨)들에게 이 책 한 구절에 수록된 어떤 고주망태 일화를 소개하고자 하노라. 본론에 들어가기 전, 내 주위로 아래에서 말하는 주당과 비슷한 부류가 많으니, 폭탄주에 찌들어 사는 원시인들이 아직 내가 다니는 회사에도 더러 포진하고 있을 지니, 이 자리에서 내가 선배가 대부분인 그들에게 이제부턴 인생 똑바로 살라고 훈계는 더 이상 못하겠노라. 대신 나.. 2018. 2. 26.
완당 김정희가 돌아가시매 : 조희룡의 만가 완당학사(阮堂學士)는 壽를 누리기를 71세이니 500년만에 다시 온 분이라네. 천상에서는 일찍이 반야(般若)의 業을 닦다가 인간세(人間世)에 잠시 재관(宰官)의 몸을 나셨네. 하악(河嶽)의 기운 쏟은 적 없으나 팔뚝 아래 금강필(金剛筆)은 신기(神氣)가 있었네. 무고무금(無古無今)한 경지로 별스런 길 열었으니 정신과 재능의 지극함이요 모두 종정운뢰(鍾鼎雲雷)의 문장이라네. 글씨 때문에 문장이 가리운 왕내사(王內史), 그와 천고(千古)와 같은 경우라네. 그 글씨의 흉중(胸中)의 구파(九派)와 교룡(蛟龍)의 노숙함은 주옥 같은 전분(典墳)과 진한(秦漢) 문장의 온축이라네. 승평(昇平)의 시대를 문채나게 함은 응당 이유가 있었으니 어찌하여 삿갓에 나막신 차림으로 비바람 맞으며 바다 밖의 문자를 증명했는가? 公.. 2018. 2. 26.
조희룡이 증언하는 김홍도와 그의 아들 조선후기 최대 화가로 꼽히는 단원 김홍도. 하지만 그 일생에 대해서는 그다지 알려진 바가 없다. 가장 신빙성 있는 기록이 아래에 소개하는 조희룡이라는 당시 사람의 증언이다. 조희룡(趙凞龍·1789~1866)은 김홍도의 아들 김양기라는 사람과 친분이 많았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는 조희룡의 문집 중에 '김홍도전'(金弘道傳)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김홍도(金弘道)는 字가 사능(士能)이요 號는 단원(檀園)이다. 아름다운 풍채와 태도에 마음은 활달하고 구애됨이 없어 사람들이 신선세계에 사는 인물이라 했다. 그가 그린 산수(山水), 인물(人物), 화훼(花卉), 영모(翎毛)는 묘함에 이르지 않은 것이 없었으니, 특히 신선(神仙)을 잘 그렸다. 준찰(?擦), 구염(句染), 구간(軀幹), 의문(衣紋)을 앞 사람들에게.. 2018. 2. 26.
스스로 눈을 찌른 칠칠이[七七이] 화가 최북崔北 최북은 字가 칠칠七七**이니 자 또한 기이하다. 산수와 가옥 및 나무를 잘 그리니 필치가 짙고 무게가 있었다. 황공망黃公望을 사숙私淑하더니 끝내는 자기의 독창적인 의경意境으로 일가一家를 이루었다. 스스로 호를 호생관毫生館이라 했다.사람됨이 격분을 잘 하며 외곬수였으며 자잘한 예절에 얽매이지 않았다.일찍이 어떤 집에서 한 달관達官을 만난 일이 있다. 그 달관이 최북을 가리키면서 주인에게 묻기를 “저쪽에 앉아 있는 사람은 姓이 뭔가?”라고 하니 최북은 얼굴을 치켜들고 달간을 보면서 “먼저 묻건대 그대의 성은 무엇이오”라고 했다.최북의 오만함이 이와 같았다.  금강산金剛山을 유람하다가 구룡연九龍淵에 이른 그는 갑자기 “천하의 명사名士인 내가 천하의 명산名山에서 죽는 것이 족하다”고 소리치고는 못에 뛰어들었는데.. 2018. 2. 26.
이용휴가 김홍도 초상화를 보고서 김홍도 초상화에 부친 찬가〔對右菴金君像贊〕 남이 남의 초상화를 그리면 그 사람의 고움과 추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반면, 내가 나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면 내 주견에 제약을 받는다. 그런 까닭에 김군金君이 신군申君을 시켜 자기 얼굴을 그리도록 했다. 문인은 자기 글에 서문을 쓰지 않고, 명사는 자기 자신의 전기傳記를 쓰지 않는 옛날의 법에서 나온 생각이다. 세상에서 재능있는 예술가로서 김군을 소중히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도 예술가로서의 재능 때문에 김군을 소중히 여긴다. 그러나 이제 김군의 초상화를 보니 영롱한 옥인 듯, 향기로운 난초인 듯하여 듣던 것보다 훨씬 나은 인물이다. 이야말로 그저 화가에 지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참으로 온아溫雅한 군자로구나. 그랬더니 김경오金景五와 정성중鄭成仲이 이렇게 말했.. 2018. 2. 26.
김홍도의 집에 부친 이용휴의 글〔對右菴記〕 하늘이 사물을 탄생시킬 적에는 이치를 그 형상 속에 깃들게 하는 법이다. 그러고서 가장 신성한 성인에게 하늘을 대신하여 하고 싶은 말을 하고 교화를 널리 펴게 하니, 그러한 말과 교화가 담겨 있는 곳이 바로 경서(經書)일지니라. 그러나 말이란 모름지기 문자의 힘을 빌어서야만 전달되므로 하늘은 또 창힐(蒼?)을 시켜 문자를 만들게 했다.  문자는 처음에는 형상을 본떠 만들었기에 그 활용에는 한계가 있는지라, 하늘은 또 이번에는 사황史皇에게 그림을 그리게 했다. 이렇게 그림과 문자가 서로 어울리자 비로소 말과 교화를 완벽하게 표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숱한 세월을 거치고 드넓은 세상을 확장하는 동안, 문자는 늘 세상에서 제자리를 지킨 반면, 그림은 나타나기도 하고 깊이 숨기도 해서 ‘빈풍도’(?風圖.. 2018. 2. 26.
200년만에 빛을 본 《대동운부군옥》 내가 경탄해마지 않는 조선시대 저술로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이 있다. 우리 교육이 대개 그렇듯이, 이 책에 대해서도 분명 중고교 역사 수업 등지에서 적어도 이름 한 번은 들어봤음직하거니와, 그럼에도 막상 그 책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우리 교육이 이 모양이다. 이 《대동운부군옥》은 우선 ‘대동/운부군옥’이라고 끊어 읽으니, 이는 말할 것도 없이 대동大東의 운부군옥韻府群玉이라는 뜻이다. 大東이란 말할 것도 없이 東을 존칭한 것이니, 동쪽 중에서도 큰 동쪽이라는 뜻이라 여기서 동쪽은 조선을 말한다. 조선이 조선을 자칭하는 용어가 大東이라, 왜 우리가 中이 아니고 東이냐 하는 반문은 하지 말기 바란다. 中國을 천하 중심으로 놓았던 조선시대 지식인들에게 그걸 따져 무엇 하겠는가? 그러니 대.. 2018. 2. 26.
먼저 죽은 아우를 위한 형의 통곡 내가 이곳에서 영정조 때 활약한 이용휴(李用休.1708~1782)-이가환(李家煥.1742~1801) 부자의 글을 소개했거니와, 이번에는 이용휴가 두 살 아래 친동생 이병휴(李秉休.1710~1776)가 향년 67세로 먼저 세상을 떠나자 이를 애도하면서 지은 제문(祭文) 두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당시 용휴는 서울에 머물고, 동생은 고향인 충청도 덕산현(德山縣) 고산면(高山面) 장천리(長川里)라는 곳으로 낙향해 있다가 그곳에서 병들어 죽었다. 아우가 죽은지 한 달이 지났으나 병이 들고 길이 멀어 가지 못하고 제문을 지어 애도하는 마음을 드러냈다. 이병휴는 字가 경협(景協)이요 號는 정산(貞山)이다. 성호 이익의 수제자로 역학(易學)과 예학(禮學)에 뛰어났다. 둘째 제문은 첫 대목에서 서울과 장천이 멀어 .. 2018. 2. 26.
판타지를 즐긴 실학자(심경호 글) 판타지를 즐긴 실학자(펀글. 심경호)출처 : 실학산책, 제19호 (2006.10.18) 판타지를 즐긴 실학자 심경호(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연암 박지원은 시를 별로 남기지 않았다. 그런데 「영대정잡영(映帶亭雜詠)」에 「수산해도가(搜山海圖歌)」라는 기이한 제목의 장편시를 남겼다. 박지원은 언젠가 큰 형 박희원(朴喜源, 1722-1787), 종제 박수원(朴綏源, 1738-1811) 및 이덕무와 현원(玄園)이란 동산에 노닐면서 거대한 크기의 를 펼쳐 놓고 감상하였다고 한다. 시의 서문은 이렇다. “여름날 형님을 모시고 종제 이중(履仲, 綏源)과 함께 덕보 무관(이덕무)과 약속하고는 현원에 노닐었는데, 각각 명품[翫]을 하나씩 내놓고 비교하기로 하였다. 이 그림 축의 길이는 거의 화살의 비거리 만하였다. 동.. 2018. 2. 26.
어쩌다 마주친 옛남편 : 上山采蘼蕪(산에 올라 궁궁이<미무>를 캐다가) 자고로 조강지처 버렸다가 쪽박찬다는 소리 있거니와, 이 시는 애절하기만 하다. 최근 도서출판 소명출판에서 전 3권으로 완역된 권혁석 역 《옥대신영(玉臺新詠)》을 참조하되, 몇 가지를 덧붙이고 간추렸으며, 번역문 또한 약간 손질했다. 나아가 인용문은 별도로 표시했다. 중화서국에서는 중국고전문학기본총서 중 하나로 전 2권짜리 《옥대신영전주(玉臺新詠箋注)》가 나왔거니와 몇 가지 사항은 주석에서 이를 참조해 대폭 보강했다. 출천 : 《옥대신영(玉臺新詠)》 권 제1 고시(古詩) 8수 중 제1시대 : 한대(漢代) 上山采蘼蕪 산에 올라 궁궁이를 따고는 下山逢故夫 산을 내려오다 옛 남편 마주쳤네長跪問故夫 무릎 꿇어 옛 남편께 여쭙기를 新人復何如 “새 사람은 또 어떤지요?”新人雖言好 “새 사람 좋다 하나未若故人姝 옛 사.. 2018. 2. 26.
벼루광 유득공(안대회 글) 다산연구소 발간 '실학산책'에 수록된 글을 원필자인 안대회 교수의 허락만 얻어 전재한다. 올해(2007)는 마침 유득공 사거 200주기가 되는 해다. 벼루광 유득공 안대회(명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한국의 옛 역사에 관심이 많아 《발해고》를 비롯한 저술을 여럿 남긴 유득공(柳得恭)은 학문적 관심사와 취미가 다양했다. 그가 관심을 기울인 것에는 벼루도 포함된다. 그는 벼루를 많이 가지기도 했고, 또 조선 벼루의 역사를 정리하여 《동연보(東硯譜)》란 저술을 짓기도 했다. 자연 먹에도 관심이 깊었다. 하기야 어느 문인치고 벼루와 먹에 무관심할 수 있으랴! 그러나 그뿐, 벼루의 요조조모를 조사하고 분석하고 평가하는 수준에 나아간 선비는 거의 없었다. 벼루에 관한 다양한 글 남겨 유득공은 유달랐다. 벼루를 소재로.. 2018. 2. 26.
蘭若生春陽(난약생춘양) : 전쟁같은 사랑 vs 발광한 사랑 중국 대륙에 위진남북조시대가 종말을 고해 가던 무렵, 지금의 장강 일대에 명멸한 남조(南朝)의 마지막 양(梁) 왕조와 진(陳) 왕조는 문학사에서는 연애시의 전성시대였다. 이런 연애시를 당시에는 염가(艶歌)라고 하거니와, 낭만주의 시대 서구 유럽 프랑스에서 베를렌느가 그러했듯이 눈물 질질 짜는(tear-jerking) 감수성 예민한 연애시가 쏟아져 나왔거니와, 대체로 이 시대 이런 염가는 여성을 화자(話者)로 두는 경우가 많았다. 이 시대는 연애시가 흥성하던 전성기일 뿐만 아니라,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그런 연애시만을 모은 연애시 앤쏠로지가 편찬되던 시기이기도 했으니, 이 시대 유신(庾信)과 함께 남조의 염가 시단을 양분한 서릉(徐陵507~583)이 편집한 《옥대신영》(玉臺新詠)이 그것이다. 이 《옥대신영.. 2018. 2. 26.
만리장성에서 온 편지(A Letter from the Great Wall) : 음마장성굴행(飮馬長城窟行) 위진남북조시대 말기 남조의 대표적인 시인인 서릉(徐陵)이 편찬한 연애시 앤쏠로지 (玉臺新詠) 중 권제1에는 작자를 진림(陳琳)이라 했다. 진림에 대해서는 시 아래에 첨부한 그의 행적을 보라. 아래 시를 읽으면 어째 기분이 쏴 하다. 飮馬長城窟行一首 飮馬長城窟 장성굴에서 말에게 물 먹이니水寒傷馬骨 물은 차가워 말이 뼈 속까지 어네往謂長城吏 장성 관리에게 가서 부탁하기를 愼莫稽留太原卒 부디 태원 출신 졸병은 잡아두지 마오官作自有程 관청일이란 정해진 길이 있는 법擧築諧汝聲 달구 들어 네 노랫소리에 맞추어라男兒甯當格鬬死 사내라면 싸우다 죽어야 하거늘何能怫鬱築長城 어찌 찌질하게 장성만 쌓고 있으리오長城何連連 장성은 어찌나 끝없이 이어지는지連連三千里 끝없이 이어져 3천리라네邊城多健少 변경엔 젊고 건장한 사내 많고 .. 2018. 2. 26.
새벽이슬 터는 당신은 누구인가? 심약전(沈約傳)을 겸하여 수레에 몸을 실은 채 새벽길을 가다 한 때 나와 정분을 나눈 여인을 만났다. 그 몰골 보아 하니 영 말이 아니다. 간밤 외출할 때 곱게 찍어 바른 연지 분 자국 이제 얼룩덜룩하다. 기름기가 묻어 나온 까닭이다. 틀림없이 외박하고 돌아가는 길일 터. 어땠을까? 혹여 내가 버렸기 때문에 저 여인 지금과 같은 신세가 되진 않았을까? 남조 유송(劉宋)~양조(梁朝) 교체기를 살다간 연애시의 최고봉 심약(沈約). 그 姓으로 볼진댄 아마도 심봉사~심청이 부녀의 조상쯤 될 듯한데, 그의 입을 빌려 본다. 심약보다 반세기 이상을 뒤에 나타나 심약이 개척한 연애시를 완성한 서릉(徐陵)이란 사람이 편집한 중국 역대 연애시 앤솔로지 《옥대신영》(玉臺新詠) 맨마지막 권 제10에 ‘조행봉고인거중위증早行逢故人車中爲贈’라는 이름으로.. 2018.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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