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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중부서 로마 시대 장옥長屋 30채가 이룬 게르만 정착지 발견 독일 빌레펠트-지커Bielefeld-Sieker에서 서기 2세기에서 5세기 사이에 조성된 대규모 게르만 정착지가 발굴되었다. 베스트팔렌-리페 지역 협회Regional Association of Westphalia-Lippe (LWL) 발굴 조사 결과, 당시 대부분의 공동체가 소규모 농가나 흩어진 주택군에서 생활한 동부 베스트팔렌East Westphalia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정착 형태가 드러났다.발굴팀은 최소 30채 대형 장옥longhouses을 확인했는데, 일부는 너비가 최대 8미터(26피트), 길이가 최대 30미터(98피트)에 달했다. 연구진은 또한 공예 작업이나 저장 공간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움푹 들어간 구조물을 포함한 여러 개 작은 건물도 발견했다.이 정착지 규모와 배치로 미루어 보아 로.. 2026. 7. 30.
발굴 조사를 통해 드러난 칼리닌글라드의 전신 쾨니히스베르크의 역사 러시아 칼리닌그라드Kaliningrad의 역사적인 외곽 지역(Far Forstadt)에서 진행된 긴급 발굴 조사에서 400년이 넘는 세월을 아우르는 놀라운 유물들이 발견되어, 16세기부터 제2차 세계 대전까지 옛 프로이센 도시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의 일상생활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한다.러시아 과학 아카데미 고고학 연구소 삼비아 고고학 탐사대Sambian Archaeological Expedition가 2026년에 실시한 이번 발굴 조사는 레닌스키 프로스펙트Leninsky Prospekt, 크라스누크탸브르스카야 거리Krasnooktyabrskaya Street, 모레호드나야 거리Morekhodnaya Street로 둘러싸인 공원에서 계획된 재개발 공사에 앞서 진행되었다.고고학자들은 쾨니히스.. 2026. 7. 29.
중세 공동묘지에서 드러난 유럽 최후의 이교 국가 리투아니아로의 이주 역사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Vilnius에 있는 중세 공동묘지에서 실시된 동위원소 연구를 통해 이 도시 초기 기독교 거주민 중 일부가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이주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리투아니아가 유럽에서 마지막으로 공식적으로 이교 국가였던 시절에도 민족적, 종교적 다양성이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새로운 증거다.이번 연구는 빌뉴스 구시가지 복슈토 거리Bokšto Street에 있는 13~14세기 중세시대 공동묘지를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고고학자들은 이곳에서 도시 초기 기독교 공동체와 관련된 매장지를 발굴했다. 연구진은 인골에 보존된 화학적 특징을 분석해 많은 사람이 어린 시절을 어디에서 보냈는지 밝혀냈다.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곳에 묻힌 사람 상당수는 리투아니아 토착민이 아니었다. 동위원소 분석 결과.. 2026. 7. 29.
[시장 없는 귀신 왕조] (5-총결) 봄날 신기루 같은 오일장의 추억 대략 10년 안쪽에 일어난 일이다. 무형유산 삼을 만한 먹거리를 찾던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이 5일장을 착목한 적이 있다. 그 무렵이면 김치 담그기 문화가 일약 인류무형유산에 등재하고, 그에 힘입어 장담그기니 하는 유사 상품 개발이 잇따를 때라, 옳거니 해서 이런저런 의견 받아서 그래 오일장도 있지! 해서 조사에 나섰더랬다. 그 기초 조사를 어느 연구소에서 맡았으니, 그네들이 그렇게 조사하고선 (무형)문화재위원회에 보고까지 했더랬다. 당시 나는 그 위원이었으니, 그날 일을 어렴풋이 기억한다. 문제는 그 오일장이 유구한 전통쯤 되는 줄 알았는데 웬걸?근현대를 지나 조선시대로 들어가니?오일장이 없네?당혹스럽기는 연구소도, 위원회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나는 그런갑다 했다.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2026. 7. 29.
[배째!] 일제시대 족보 편찬 흔한 풍경 일제시대 일기를 보면, 그 당시 족보를 만들던 정황이 적혀 있어 흥미를 끈다. 모 집안에서 족보를 만들던 시점은 1930년대 중반-. 일제시대는 이전에 목판으로 찍던 족보가납활자로 전환하였던 시기이다. 인쇄가 깨끗하고 제본 등이 폼 나는 대신에, 가격이 많이 상승한 것 같다. 그 당시 족보를 만들던 정황이 일기에 적혀 있는데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이 집안은 족보를 만들 때 비용이 넉넉치 않았던 것 같다. 가장 문제는 수단收單 작업에서 명단을 보내 오고는, [수단이란 단자를 거두어 들인다는 족보 용어다.]납부해야 하는 비용을 내지 못하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는 참 난처하겠다. 명단이 왔으니 뺄 수도 없는데 나 돈 몬냅니다 하고 뒤로 자빠진 것이다. 그래서 일기를 적은 이가 대금을 받기 위해 후손들을 만나.. 2026. 7. 29.
[시장 없는 귀신 왕조] (4) 시장 자체가 아예 없는 고려 왕도 개경 고려 중기 송나라 사신단 일원으로 와서 개경을 둘러보고선 그 귀국 보고서로 완성한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이 증언하는 당시 고려사회 단면이다. 아 물론 이것이 당시의 실상은 백퍼 완벽히 전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암튼 그 제3권 성읍城邑 편에서 채록한 방시坊市 논급 전문이다. 왕성王城에는 본래 방시가 없고, 광화문廣化門에서 관부官府 및 객관客館에 이르기까지, 모두 긴 행랑을 만들어 백성들의 주거를 가렸다. 때로 행랑 사이에다 그 방坊의 문을 표시하기를 ‘영통永通’ㆍ‘광덕廣德’ㆍ‘흥선興善’ㆍ‘통상通商’ㆍ‘존신存信’ㆍ‘자양資養’ㆍ‘효의孝義’ㆍ‘행손行遜’이라 했는데, 그 안에는 실제로 시장 거리나 민가는 없고, 적벽에 초목만 무성하며, 황폐한 빈터로 정리되지 않은 땅이 있기까지 하니, 밖에서 보기만 좋.. 2026. 7. 29.
대장장이가 재현한 전설적인 '울프베르트Ulfberht' 바이킹 검 노래, 희곡, TV 시리즈, 영화와 같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대를 초월해 불멸의 존재로 자리매김한 바이킹 시대는 수 세기 전의 약탈을 넘어 훨씬 더 광범위한 유산을 남겼다. 바이킹의 활동은 약탈에서 탐험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웠다. 그중에서도 울프베르트 검Ulfberht sword은 오랫동안 전설로 남았다. 노련한 바이킹 전사의 손에 이 검이 들려 있는 것을 본 적은 누구나 그것이 단순한 지위의 상징이 아니라 치명적인 무기임을 즉시 알아차렸다. 이 검에 사용된 강철 특성 덕분에 다른 검에 비해 압도적인 내구성을 자랑하며 전투에서 치명적인 위력을 발휘했다. 이 검은 대장장이들이 재료 과학이나 고에너지 물리학을 이해하지 못한 시대에 만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습지 철bog iron, 제련smelting, 패턴 .. 2026. 7. 29.
초기 인류 아이들도 태어날 때는 비실비실해 손이 많이 갔다! 화석화한 인류 기형적인 머리 분석 결과 드러나 by 도쿄대학교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고대 인류의 부모는 현대 부모처럼 무력한 유아를 돌봐야 했다.인류의 아기는 다른 유인원의 아기보다 발달이 덜 된 상태로 태어나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다.그 결과 기형성 사두증deformational plagiocephaly, 또는 납작머리 증후군flat head syndrome이라고도 불리는 증상이 흔히 나타난다.도쿄대학교 유스케 카이후(Yousuke Kaifu)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살아있는 유아의 두개골 스캔, 일본의 역사적 유골, 호모 에렉투스와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의 화석 표본, 그리고 다른 유인원의 건조된 두개골 측정 자료를 이용해 머리 모양을 연구했다.이 연구는 왕립학회보 B: 생물과학(Proceedings .. 2026. 7. 29.
[시장 없는 귀신 왕조] (3) 넘쳐나는 책 도둑, 내사본에 환장하고 손목 나갈 때까지 열라 베끼는 조선 사회 조선왕조는 겨우 18세기 넘어가야, 것도 본격으로 19세기 중후반에 가야 화폐경제를 기반으로 삼는 사회로 접어들거니와, 그 이전은 경제라 해 봐야 관급 공사 납품밖에 없었고 이렇게 삥땅친 물품을 왕의 이름으로 하사 분배하는 경제였으니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지표 중 하나가 도서라조선시대 책은 함부로 빌려주지도 않았고, 빌려와도 걸핏하면 삥땅 쳐서, 그 빌려준 놈이 죽기만 기다렸다.인쇄본 책이라 해 봐야 몇 부 되지도 않아, 왕실 종친 그리고 힘 있는 관리 몇 놈 농가묵고 나면 남지도 않았으니, 도서시장? 그딴 게 어딨어?그래서 중국 한 번 다녀오면 유리창 가서 신간 구해왔단 소문 나면 우루루 몰려가 것 좀 한 번 보여주라 해서 도서 품평회가 열린다.이건 박지원 시대도 마찬가지였으니, 노론 정통 가문 출신.. 2026. 7. 29.
[시장 없는 귀신 왕조] (2) 마트 다녀왔단 말이 없는 신이한 왕조 특별한 제한이 없는 한 내가 말하는 조선은 19세기 중후반 이전을 말한다.19세기 이후 조선 사회는 따로 취급해야 한다.오늘의 두 번째 질문은 저것이라그 무수한 조선시대 문서 어디를 봐도 마트 가서 찬거리 사왔단 증언 자체가 없다.뭐 급하면 구해오기는 하는데 문제는 그게 시장이 아니라는 사실.알음알음 개인 네트워크를 통해 가서 구하지 뭐 시장통?봤어 시장통?집안 대소사가 있으면 전부 하인 머슴들 데리고 자체 해결하지 마트 가서 재료를 구한다?마트 봤어?뭐 돈이 돌아야 마트라도 있지 이건 뭐 돼지소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혼인 혹은 상사가 가장 큰일인데 이때 이 일을 주관하는 사람들은 거개 집안 원찰이다.일 생기면 콩 지고 가서 두부 만들곤 한다.뭐 마트가 있어야 물건을 사지물건도 없고 마트도 없고 돈.. 2026. 7. 29.
DNA가 카슈미르 고원 잊힌 고대 인류 존재 밝혀내 by 폴 아놀드, Phys.org 과학자들이 인도 북부 고산 지대 라다크Ladakh에서 이전에는 과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고대 인류 흔적을 발견했다.연구진은 약 1,500년 전에 산 사람들 중 남아시아와 티베트 계통 유전자가 거의 50대 50으로 섞인 개체를 발견했다.남아시아의 고대 DNA는 매우 드물어 이 지역 인구가 시간이 흐르면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한 이해에 상당한 공백이 있다.이번 발견은 2021년 해발 4,000미터(13,100피트)에 위치한 고고학 유적인 올드 레이디 스파이더 동굴Old Lady Spider Cave에서 발굴된 10구 유골 분석을 기반으로 한다.이 지역은 고대 무역로를 통해 오랫동안 남아시아, 티베트, 중앙아시아를 연결했다.유골 해독연구팀은 먼저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을 .. 2026. 7. 29.
스코틀랜드서 운반했다는 6톤짜리 스톤헨지 바위, 빙하가 밀어서? by Remy Veness, The Conversation2톤에서 25톤(2~28톤)에 달하는 돌로 지은 스톤헨지Stonehenge 구조물은 바퀴 발명 이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규모의 건축 기술을 보여준다.더욱 놀라운 것은 이 돌들이 현지 암반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그렇다면 왜 하필 이 돌들이며, 어떻게 그곳에 도착했을까?호주 커틴 대학교Curtin University 지구화학자 앤서니 클라크Anthony Clarke와 함께 진행한 최근 연구는 스톤헨지에서 가장 먼 곳에서 운반된 돌, 제단석Altar Stone에 대한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할지도 모른다.제단석은 스코틀랜드 북동부, 오크라디안 분지Orcadian Basin라고 일컫는 암반 지질 지역에서 가져온 것으로, 이곳은 한때 .. 2026. 7. 29.
지중해 한복판 섬 몰타, 그 중석기 시대 수렵채집인들은 반복적인 해상 이동에 의존 by PNAS Nexus 시칠리아 남쪽 지중해 작은 섬 몰타Malta에 중석기Mesolithic 시대에 인간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수수께끼다.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수렵채집인들은 8,500년에서 7,500년 전 사이에 몰타 제도에 거주했으며, 해상으로 이동했을 것으로 추정한다.이 작은 섬에서 제한된 자원 속에서 그들은 어떻게 그토록 오랜 기간 동안 생존할 수 있었을까?제임스 블링크혼James Blinkhorn과 그의 동료들은 후기 플라이스토세부터 홀로세까지 몰타와 시칠리아의 인구 및 생계 잠재력을 모델링했다.저자들은 해수면과 식생 생산성 변동을 고려해 최근의 인류학적 자료와 비교함으로써 수렵채집인 밀도를 추정했다.이 연구는 PNAS Nexus에 게재되었다.몰타와 시칠리아는 약 14,200년 전에 분리되었으.. 2026. 7. 29.
식단서 드러난 2,700년 전 이탈리아 공동체의 생활상: 성 불평등, 사회적 지위, 그리고 이주 by 코르도바 대학교University of Córdoba 스페인 코르도바 대학교와 이탈리아 피사 대학교가 주도한 국제 연구에서 이탈리아의 한 공동묘지에서 발견된 유골의 식단 흔적을 동위원소 분석을 통해 재구성함으로써 2,700년 전 그들의 일상생활을 밝혀냈다.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식단, 인구 이동, 성별 차이, 그리고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장례 상징의 역할과 같은 특정 행동 양식은 반복적으로 나타났다.이 연구는 피케네 문화Picene culture (이베리아 반도의 타르테시아 사회Tartessian societies와 동시대에 존재한 이탈리아 중부의 로마 이전 문화)의 최대 규모 매장지 중 하나인 노빌라라 공동묘지Novilara necropolis에 초점을 맞추고, 생물고고학적 분석과 다중 동위원.. 2026. 7. 29.
[시장 없는 귀신 왕조] (1) 조선왕조 신도읍 한양을 둘러싼 최대 미스터리! 조선 왕조가 고려 왕조를 타도하고 그 신도읍으로 한양을 고르고선 나름 제반 준비를 거쳐 도시를 정비하고선 개국 3년 뒤인 1394년 마침내 천도를 단행한다. 신도시는 익히 알려졌듯이 정도전이 전반으로 총감독 같은 자리에서 주도한 것이 분명하거니와, 이 준비 과정이 실록 등지에 그렇게 충분하게 남지 않은 가운데 내가 계속 수상쩍게 보는 대목이 있다. 아무리 찾아 봐도 신도시에 시장이 없다!혹 내가 잘못 읽어 그렇게 보일 수도 있고, 또 내가 보고 들은 바가 짧을 수도 있어서이겠다 싶기도 하다만 아무리 봐도 시장을 선택하지 않았다!아무리 찾아봐도 시장이 없다!혹 내가 잘못 읽었는지, 눈 밝은 분들은 도움을 주셨으면 한다. 2026. 7. 28.
이쯤에서 써봐야 할 꿩과 닭의 관계 이쯤에서 꿩과 닭의 생물학적 관계에 대해 조금 써 보겠다. 꿩과 닭.하나는 야생 조류이고 또 하나는 가금이지만이 둘은 생물학적으로 아주 가깝다. 어느 정도로 가까운가 하면 이렇다. 꿩 과가 있다. 종속과목...할 때 그 꿩 과이다. 이 꿩 과 아래에 꿩 아과가 있고, 그 아래에 여러 속이 속하게 되는데꿩아과 아래에 닭 속이 있고, 꿩 속이 있다. 쉽게 말해서 꿩과 닭은 같은 과와 아과에 속하고, 속까지 내려와야 비로소 갈리게 된다. 아주 가까운 사촌인 셈이다. 긴가민가 하시는 분들은 조기와 민어의 관계라고 생각하시면 된다. 잘 아시다시피 꿩은 야생조류이다. 사촌 격인 닭도 원래 남아시아 일대에서 야생 닭으로 살고 있던 녀석들이다. 이 중 일부가 사육닭이 되었다. 지금도 남아시아 밀림에는 야생닭이 살고 있.. 2026. 7. 28.
여주 고려시대 은제 기물 무더기 발견 보도자료 전문 고려시대 여주의 역사적 위상을 보여주는 중요 유물 출토“은제반구형병 11점·은제금도금 주자 및 받침 등 고려시대 희귀 금속공예품 확인”여주시(시장 이충우)와 여주도시공사(사장 김철환)는 7월 28일 오후 1시 30분 ‘여주 하동(190-1번지) 여(주)행(복) 스테이션 건립사업 부지 내 유적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중요 유물을 공개할 예정이다. 이번 유물 공개는 국가유산청의 허가를 받아 발굴조사를 수행 중인 재단법인 한양문화유산연구원(원장 강병학)에서 진행되며, 여주시·여주도시공사 관계자와 학계 전문가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발굴조사 지역은 여주시 하동 190-1번지로 남한강 남안에 접해 있으며, 조선시대 여주 관아 권역과 인접해 있다. 지정학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여주 시내 지역에서는 그동안 체계적인 .. 2026. 7. 28.
공양구라서 녹이지 못하고 일괄로 묻은 고려시대 은제 기물 떼거리로 여주서 발견 한국고고학은 발굴 그 자체는 이미 정체상황이라 웬간한 걸로는 장사가 되지 않으니그런 와중에 실로 간만에 눈이 뻔쩍할 성과가 경기도 여주발로 터졌으니 딱 보니 경주 흥륜사 터 발굴의 재판이라조사단 한양문화유산연구원 강병학 원장은 그런 비교를 무척 조심스러워하나 내 추단은 틀린 적 없다.저 은제 기물은 그 매장 방식 그 성격 매장시기 그 어느 것에서도 흥륜사를 비롯한 여타 불교 공양구 훼기 처리 방식과 일맥상통하니간단히 말해 쓰임을 다한 공양구들을 일괄로 사람 묻듯이 매장한 것이다.흥륜사가 철제 솥에 청동공양구를 묻은 것과는 달리 예선 은제그릇을 도기에 넣어 고이 묻었거니와, 나아가 기물 성격을 좀 다르지만 의기儀器라는 점에서는 하등 이론이 있을 수 없다는 점에서 그런 기물의 훼기 매장이란 사실은 내가 유물.. 2026. 7. 28.
소고기가 먹고 싶음 소 다리를 부르뜨려야! 조선시대 각종 공문서 작성 지침서로 아마도 조선 철종 연간에 나온 것으로 보는 유서필지[儒胥必知]에는 말 그대로 이럴 때 이렇게 공문서를 작성하라 해서 사례를 열거하거니와 개중 하나가 절각소지折脚所志라, 소지所志란 글자 그대로는 뜻하는 바, 하고자 하는 바를 의미하는 공문서 일종으로 관에 제출하는 민원 청원서에 해당한다. 그런 소지 문서로 절각折脚이라 했거니와 절각이란 대체 무엇인가?글자 그대로는 부러진 다리라는 뜻이라, 이 경우 다리는 소 다리를 말한다. 그런 까닭에 절각은 부러진 소 다리, 따라서 절각소지는 소 다리가 부러졌을 때 그 처리를 관에다가 청원하는 문서라는 뜻이다. 저 소지 전문 번역은 다음과 같다. 소의 다리가 부러졌을 때 올리는 소지[折脚所志]△△면面 △△리里에 사는 한량閑良 ○○○ .. 2026. 7. 28.
먹고 살려면 일해야 했던 우리나라 가축들, 할 일이 없던 돼지님들 우리나라 가축들은 일차적으로 잡아 먹자고 키운 것들이 아니다. 흔히 소도 키우고 돼지도 키우고 닭도 키우고 개도 키우고그러다가 제사가 있건 잔치가 있건 하면 이를 잡아 잔치용 제수용으로나 쓰려고 저 가축들을 키웠을 것 같지만, 우리나라 조선시대에 키우던 가축들은 그냥 놀고 먹어선 안 되고 뭐라도 일을 해야 했다. 소는 농사일에 동원할 수 있으니 키운 거고, 닭은 잡아 먹으려고 키운 게 아니다. 닭알 때문에 키운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닭고기가 탐이 났다면 닭을 키울 필요가 없다. 천지사방에 닭하고 구분도 잘 안가는 꿩이 널렸는데 뭐하러 닭을 키우고 있겠는가. 개도 마찬가지다. 집이라도 지키는 것이니 키우고 있는 것이지, 이렇게 키우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잡아 먹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돼지 사육.. 2026. 7. 28.
우리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영조대왕 우리 역사를 보면 일반적인 평판보다 별로 볼 것이 없는 양반도 있고, 알려진 것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도 있다. 대표적으로 퇴계, 율곡, 다산 등 성리학자들은우리가 아는 것 만큼 학문의 영역에서는 대단한 양반들이 아니다. 성리철학 등에서는 중국 북송대 학자들의 이야기를 하드카피하다시피한 것이 많고, 소위 실학자들도 독서의 범위가 넓지 못해 동시기 일본보다도 뒤쳐진 양반이 대부분이다. 그에 반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훨씬 대단한 양반도 있다. 영조대왕 같은 양반은 명군으로 알려져 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대단한 양반이다. 이 양반의 치세에 조선사회의 근본 틀이 바뀌었다고 해도 되고, 영조의 치세 전과 후는 완전히 다른 나라라고 해도 좋을 정도이며, 이러한 변화가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바로 .. 2026.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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