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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원보다는 역시 진사 조선후기 들어오면 사마시, 소과 입격자들도서울은 진사가 더 많고, 향촌에는 생원이 더 많은 현상이 뚜렷해진다. 따라서 문중별 통계를 보면, 서울에 살지 않고 향촌에 세거한 종족일수록 생원이 더 많다. 이는 생원을 선호한 것이 아니라, 부득이한 것으로진사가 더 쉬웠다면 아마 향촌에서도 진사 입격을 시도했을 것이다. 진사가 이처럼 생원보다는 더 선호되었기 때문에 흔히 향촌에서 우리집안은 삼대 진사요, 사대 진사요 이렇게 소개하지 삼대 생원이요 이렇게 소개하는 경우는 없다. 향촌에서 몇대 진사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경우 대개 진사와 생원이 뒤섞여 있는 경우가 많은데, 진사와 생원은 사마시에서 같은 수를 뽑았음에도 향촌 사족의 족보에는 생원이 확실히 더 많다. 물론 진사건 생원이건 간에 대과 보는 데는 차이가 없.. 2026. 5. 26.
15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 열대우림 유적 코트디부아르서 발견, 초기 인류사 해명에 새로운 장을 열다 서아프리카에서 이루어진 획기적인 고고학적 발견은 초기 인류의 적응력과 이주에 대한 오랜 통념에 도전장을 던진다.코트디부아르 한 유적에서 발견된 증거는 호모 사피엔스가 약 15만 년 전부터 울창한 열대우림에 거주했음을 보여주며, 아프리카에서 이러한 환경에 대한 최초 거주 시기를 8만 년 이상 앞당겼다.이 발견은 우리 조상들이 이전에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적응력이 뛰어났으며, 진화 과정 초기에 극한 환경에 적응했음을 시사한다.수십 년 동안 인류 진화에 대한 지배적인 설명은 초기 호모 사피엔스가 주로 탁 트인 초원과 해안 지역에서 번성했으며, 험난하고 자원이 부족한 열대우림 환경을 적극적으로 회피했다는 것이었다.울창한 초목과 습한 기후는 아프리카 대륙 전역에 걸쳐 인류 정착과 이주에 큰 장벽으로 작용했다고 .. 2026. 5. 26.
족보에 적어 놓은 게 많다고 사족은 아니다 앞에도 썼지만 족보에 뭐를 잔뜩 적어 놨다고 해서 그 집이 사족인 것은 아니다. 무슨무슨 벼슬했다고 잔뜩 적어놔 봐야 그 벼슬이 무슨 납속 공명첩인지 뭔지도 알 바 아니고, 또 아예 날조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 족보가 재미있는 것이, 17세기 족보에 안 나오는 정보가 18세기 족보에 나오고, 19세기에 20세기를 거치며 족보의 정보가 점점 충실해지는 것이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나중에 추가된 정보는 전부 다 뻥이라고 보면 된다. 실제로 필자의 경험상, 족보에 몇 줄 적혀 있지도 않지만 정작 호적에는 버젓한 사족인 경우도 있었고, 족보에 허황되게 많이 적어는 놨는데, 초기 족보에는 없는 집안이 후대 족보에 끼어든 경우도 있었다. 결론은 제3의 사료에 의해 검증되거나 그게 아니면 호적에 의해 확실히 확.. 2026. 5. 26.
앉은 자세로 매장된 당나라 사람들은 승려도 외국인도 아니었다! (2026-05-25 15:05) 앉은 자세로 매장하는 좌자장坐姿葬은 매우 드문 매장 형태다.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이러한 매장 방식이 종교적 신념이나 특정 민족 문화와 관련이 있다 보지만, 아직까지 통일된 견해나 과학적인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다.한편으로는 동북아시아 소수 민족에서 이러한 매장 풍습이 간헐적으로 발견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불교 승려들도 이러한 매장 방식을 채택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이제 이 미스터리 한 부분이 해소되었다.푸단대학复旦大学 고고학과학기술연구소는 섬서성고고연구원과 공동으로 당나라 시대 장안성长安城에서 앉은 자세로 매장된 유골 4구를 다학제적으로 분석했다.분석 결과, 이들은 유전적으로 일반 지역 주민들과 큰 차이가 없었으며, 주식은 기장과 수수였고, 밀과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한 .. 2026. 5. 26.
뭐가 구질구질하게 잔뜩 채운 족보는? 초기 족보들은 보면 정보가 소략하고 매우 간단하다. 예를 들어 문화유씨 가정보, 안동권씨 성화보나대다수 17세기 초기 족보들을 보면 등장인물들 설명이 극히 소략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후기 족보라면 당연히 들어갈 생년 졸년은 물론, 배위도 생략된 경우가 있고, 더욱이 벼슬 이름도 제대로 안 적은 경우도 많다. 그런데 이렇게 소략한 족보가 묘한 포스를 풍기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족보 중에 문과도 문, 무과도 무, 이런식으로 줄여 쓰고 왠만한 벼슬 같은 건 다 건너뛰거나 생략해버리는 족보들이 있는데이런 족보들은 수록된 이들이 대부분 격이 높은 사족들로실린 이들이 다들 잘나다 보니 급제자 한 명만 나와도 인근 친척들까지 영향을 받는 문과 급제자도 그냥 덜렁 "문" 짜 하나 써주고 끝이다. 물론 진사는 .. 2026. 5. 26.
패치워크 가족patchwork families은 5천 년도 더 전 신석기 시대에 있었다 by 얀 슈테펜Jan Steffen, 킬 대학교Kiel University 이전 관계에서 얻은 자녀들이 새로운 가족에서 형제자매처럼 자라거나, 부부가 아이를 입양하거나 위탁 양육하는 경우처럼, 이른바 '패치워크 가족patchwork families'은 오늘날 널리 퍼진 삶의 방식이다.현대적인 것으로 여겨지지만, 최근 신석기 시대 인류 유전자 분석에 따르면 사실은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했다."우리는 5,000년도 더 전에 중앙 유럽 사람들이 생물학적 유대와 사회적 유대가 놀라울 정도로 유연한 공동체에서 살았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킬 대학교 임상분자생물학연구소(IKMB) 고대 DNA(aDNA) 분석 전문가이자 '사이언스'에 발표된 이번 연구 책임자인 벤 크라우제-키오라Ben Krause-Kyora 교.. 2026. 5. 25.
페루 쿠엘랍Kuélap에서 제례용 부장품 담긴 장례 구조물 발견 페루 북부 고대 요새 쿠엘랍Kuélap에서 발굴 작업을 진행하던 고고학자들이 5구 유골과 함께 중요한 문화적 가치를 지닌 제례용 부장품이 담긴 장례 구조물을 발견했다.이번 발견은 페루 문화부 산하 아마조나스 문화분권국Decentralised Directorate of Culture of Amazonas에서 발표했으며, 쿠엘랍 고고학 유적 내 1번과 2번 진입로가 만나는 지점인 12번 구역에서 진행된 발굴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쿠엘랍 고고학 및 학제간 연구 프로그램Kuélap Archaeological and Interdisciplinary Research Programme (PRIAK) 소속 전문가들이 진행한 발굴 조사에서 U자형 석조 장례 구조물이 발견되었는데, 이 구조물은 두 개 계단으로 .. 2026. 5. 25.
9천 년 된 칸하산 유적이 차탈회위크 서막을 열다 반세기 넘게 칸하산Canhasan은 고고학계에서 가장 중요한 신석기 시대 이야기 중 하나였지만, 그 본질은 제대로 이해되지 못한 곳이기도 했다.이제 터키 카라만Karaman에서 재개된 발굴 작업을 통해 이 유적이 다시 주목받으며, 그 결과는 오랫동안 간과한 이 정착지가 차탈회위크Çatalhöyük가 벽화, 의례 공간, 빽빽하게 들어선 진흙 벽돌집으로 유명해지기 전, 중앙 아나톨리아의 상징 세계가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거의 50년 만에 2021년에 재개된 칸하산 발굴은 단순히 오래된 발굴 구덩이를 다시 여는 일이 아니다.현대적인 도구와 새로운 질문, 그리고 1960년대 연구자들이 지닌 것보다 훨씬 더 폭넓은 신석기 시대 이해를 바탕으로, 중요한 고고학적 현장으로 다.. 2026. 5. 25.
아나톨리아 최초 중세 쇠뇌 너트, 셀주크 쿠바다바드 궁전에서 발굴 호숫가 궁전에서 발견된 작은 뼈 조각이 중세 셀주크Seljuk 시대 무기에 대한 귀중한 통찰을 제공한다.터키 중부 쿠바다바드 궁전Kubadabad Palace 유적에서 발견된 뼈 조각은 단순한 파편이 아닌 중요한 유물로 밝혀졌다.무하렘 체켄Muharrem Çeken, 알프테킨 야바쉬Alptekin Yavaş, 괴칸 메리치Gökhan Meriç가 공동으로 Höyük 지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이 유물은 중세 아나톨리아 발굴에서 발견된 최초의 쇠뇌 너트crossbow nut다.이 발견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아나톨리아 여러 중세 유적에서 쇠뇌 볼트crossbow bolts는 발견되었지만, 활 자체의 기계 부품은 고고학적 기록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이 작은 원통형 뼈 조각은 이러한 상황을.. 2026. 5. 25.
서얼허통을 반대한 주축은 본처들이었다! 첩한테서 난 자식도 본처한테서 난 자식과 같은 대접을 해야 한다고 할 때 누가 벌떼처럼 일어나 반대할 것 같은가?이 차별 철폐를 흔히 서얼허통庶孼許通이라 하거니와, 저 강고한 신분제를 혈통으로 분류한 조선왕조 내내 생각보다 저리 해야 한다고 주장한 지식인은 적지 아니해서 혹자는 조선 후기 이른바 실학의 전매특허처럼 선전되기도 하지만 천만에!조금 제정신 든 지식인이라면 틈만 나면 서얼허통을 주장하고 나섰지만, 애통하게도 찻잔 속 태풍에 지나고 말았으니, 그렇다면 저런 주장이 끊이지 아니했음에도 왜 그 움직임은 법제화하지 못하고 죽고 말았던가를 이제는 따져야지 않겠는가?혹자는 저런 서얼허통을 양반 기득권층, 지배계층에서 대체로 반대했다고 알겠지만, 천만에!저 서얼허통을 가장 강력하게 반대한 사람들이 실은 고.. 2026. 5. 25.
늘어만 가는 서자와 노비, 수학이 아니라 산수의 문제였다 이 문제와 관련해 줄기차게 탐구하는 신동훈 선생께서 역사학의 영역이 아니라 수학의 영역이라 하셨거니와, 그 본질하는 핵심에 내가 달 이견은 없거니와 이 시점에서 생각할 것은 수학이라 했지만, 그 수학이 과연 고차원하는 그 무엇인가를 다시금 생각해야 하니, 흔히 저 학문을 일반 통념에서는 산수와 수학으로 분리하거니와, 전자가 덧샘 뺄샘 수준이라 하면, 후자는 적어도 방정식 정도는 되겠다 그런 통념에 기반해 내가 말하고자 한다. 왜 조선시대는 시간이 갈수록 서얼과 노비가 무한급수로 늘어날 수밖에 없는가?무엇보다 법제가 그리 강제했기 때문이어니와, 이는 아주 간단한 산수 문제라 부모가 둘 다 양반이거나 평민, 혹은 노비일 때는 하나도 문제가 될 것도 없으니, 이는 본전치기인 까닭이다. 문제는 이것이 뒤집어져서.. 2026. 5. 25.
비참을 폭로한 알렉스 헤일리와 가족사 vs. 자랑을 분식한 한국의 족보 필자가 생각하기에 가족사 (family history)와 계보학(genealogy)은 많이 다르다. 특히 한국에서 그렇다. 우리는 족보라는 것을 집집마다 있기에 그 집안 역사는 다 안다고 생각한다. 족보가 많은 것을 이야기해 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막상 족보를 들춰 보면 이것처럼 복잡한 텍스트는 없다. 인간의 욕망과 허영이 만든 허구가 진실과 반쯤 반죽되어 구워진 것이 한국의 족보다. 소위 "공식적인 기록"도 마찬가지다. 집안의 역사를 풍부하게 있다고 하는 집안조차 면밀히 살펴보면 과장과 분식투성이다. 우리나라의 족보라는 것이 집안의 이야기를 듣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얼마나 우리 집안이 대단한가를 이야기하기 위해 쓴 것이 대부분이므로, 그 안에서 가족사의 진솔한.. 2026. 5. 25.
인도와 티베트 늑대서 예상치 못한 유전적 다양성 드러나 by 라이스 대학교Rice University 영화 "정글북The Jungle Book"에서 모글리Mowgli를 키운 늑대 무리처럼 인도에 사는 늑대들은 늑대에 대한 연구나 이야기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라이스 대학교 로렌 헤넬리Lauren Hennelly 교수는 이러한 상황을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그녀의 연구는 인도 회색 늑대와 인근 티베트 늑대의 DNA에 숨은 이야기를 밝혀낸다."저는 이전에 인도와 티베트 늑대가 회색 늑대의 가장 오래된 진화 계통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를 이끌었다"고 생명과학 조교수인 헤넬리 교수는 말했다."아시아 전역의 늑대 DNA를 분석하면서 연구 범위를 넓혔을 때, 우리는 그들의 DNA에서 더 많은 숨은 이야기를 발견했습니다."헤넬리 교수와 11개국 과학자로 구성된 .. 2026. 5. 24.
부정父情을 떨치지 못한 흔적들 조선시대에 서자 차별이야 그렇다고 해도, 천출의 노비와 사이에 아이가 나온 경우이를 아버지로 부르지도 못하게 하고 노비로 삼아 버린 것은 인륜의 측면에서도 못할 짓이라 하겠다. 희생으로 삼기 위해 끌고가는 소를 보고도 측은지심이 일어나는 것을 인지단이라고 한 공맹의 신도라는 이들이 어떻게 이렇게 잔혹한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는 그것을 수백년간 굴렸을지 의문이다. 간단한 시물레이션 만으로도 만약 조선시대에 천출과 사이에 나온 자식을 양반까지는 아니라 서자, 아니 평민으로만 만들어놨어도우리나라 노비의 숫자는 그렇게 급증하지 않았을 것임에 틀림없다. 율곡은 적자가 없는 상태에서 서자를 봉사손으로 하여 물려주었는데이는 당대에도 사족들 사이에 욕을 많이 먹었다. 대동야승 등 당대의 기록들을 보면 율곡이 서자로 대를.. 2026. 5. 24.
"북쪽 시베리아 루트 통해 일본 열도로 확장한 호모 사피엔스 특징 석기 발굴" (5/24(일) 12:36 전달, 매일 신문) 히로시마 현広島県 하츠카이치 시廿日市 간무리冠[かんむり] 유적에서 약 반세기 전에 출토한 구석기에는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는 이른바 '북쪽 루트'를 통해 동쪽으로 향한 호모 사피엔스의 '초기 칼 석기군初期石刃石器群'과 같은 특징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간무리 유적에서는 2024년에 과학적인 연대 측정을 통해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4만2300년 전 석기가 출토됐다 해서 주목을 끌었다.이 새롭게 발굴된 석기는 기존 석기보다 약 5000년 더 연대가 늦고 특징도 달라서 인류가 일본 열도로 유입한 과정이나 그 확산 루트의 해명으로 이어질 것 같다고 한다.히로시마 현립 역사 민속 자료관広島県立歴史民俗資料館과 히로시마 현립 매장 문화재 센터県立埋蔵文化財センター, .. 2026. 5. 24.
화폐가 전혀 돌지 않는 부북일기 1644년 학계의 초기 자본주의 맹아론은 대부분 실록 등 기초자료에 의해 의거해 있으며특히 17세기의 사실에 대해서는 견강부회가 많다. 광작, 지주전호제, 화폐의 유통 등 자본주의 맹아론의 성공적 입론과 관련하여반드시 관철되어야 할 사항들이 대부분 모호한 언설에 기초하여 성립되어 있다. 이러한 주장은 그 후 일기나 호적 등 자료가 속속 추가 되면서 당시의 팩트와 맞지 않는 경향이 도처에 노출되었음에도여전히 지금까지 타성에 따라 그대로 이야기 되는 경우를 본다. 17세기에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과 18세기에 있었다는 것, 그리고 19세기에 있었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임에도 17-19세기를 묶어서 설명하며 대충 얼렁뚱땅 이야기 하고 치운다. 따라서 읽는 독자는 17세기에 이미 그런 변화가 우리나라에 있었다고 생각.. 2026. 5. 24.
지주전호제도 이주갑인상 우리나라 학계 통설에: 16세기 말엽부터 확대되기 시작한 병작제는 배타적 소유권의 확립을 배경으로 하였다. 병작의 운영 원리는 계약으로 대표되는 경제적 요소로서 작개제와 달리 경제 외적 강제주거에 의해 유지되는 방식이 아니었다. 토지 매매가 활성화되고 지주가 소유권을 배타적으로 행사할 수 있게 되며 강제력 없이 지대를 수취하는 병작제가 위치를 공고히 해나갔다. 15세기까지 주변부에 머물렀던 병작제는 16세기 후반부터 확대되었고, 17세기 중엽을 거치며 급속히 진행되었다.라고 한다. 필자가 이야기 한 것 중에 우리나라는 소위 말하는 자본주의 맹아론을 지지하는 모든 언설이 이주갑 정도 인상되어 있다고 썼던 바, 지주전호제도 마찬가지다. 위는 한국학계의 통설을 반영하는 기술인데 여기도 16세기 후반부터 병작제.. 2026. 5. 24.
바이유 태피스트리Bayeux Tapestry, 노르만 정복의 승리자 이야기 바이유 태피스트리가 런던에 전시되면서 1066년 노르만 정복이 주목받는다. [바이외라고도 표기하나 발음을 보면 바이유에 가깝다.]길이 약 70미터에 달하는 이 자수embroidered cloth 태피스트리는 사건 직후 제작되었으며, 1066년 헤이스팅스 전투Battle of Hastings와 노르망디의 윌리엄William of Normandy이 잉글랜드 해럴드 고드윈슨Harold Godwinson 왕을 물리친 승리를 묘사한다. 이 태피스트리는 노르망디의 윌리엄을 승리자로, 해럴드를 잉글랜드 왕위를 윌리엄에게 약속했다가 어긴 교활한 배신자로 묘사한다.하지만 태피스트리는 전투가 영국 국민에게 미친 더 넓은 영향은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윌리엄의 함대가 잉글랜드 남동부 해안 페벤시Pevensey에 상륙한 직후,.. 2026. 5. 24.
토지겸병이 지주전호제의 증거인가 필자는 앞에서 쓴 대로 우리나라는 지주전호제 성립이 상당히 늦다고 본다. 이유는 18세기 전기까지도 우리나라 호적을 보면 노비사역을 기반으로 한 대규모 토지 경영이 양반 경제의 기초라거기에 지주전호제가 파고들 여지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흔히 우리 역사에서 지주전호제의 성립 근거로 겸병의 역사를 들고 오는데, https://contents.history.go.kr/mobile/hm/view.do?levelId=hm_082_0080토지겸병과 지주전호제는 같은 것이 아니다. 토지겸병을 하여 대규모 토지를 확보한 후 거기에 완전한 인신 예속 상태인 노비를 동원하여 경작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조선 중기까지도 토지 겸병으로 대규모 토지를 확보한 양반들이 그 땅을 소작인에게 준 것이 아니라 자기가 직접 .. 2026. 5. 24.
율곡은 이 바보 같은 제도가 문제임을 몰랐을 리 없다 앞에서 챗 지피티가 똑똑하게도 알려준 것처럼 평민이 줄고 노비가 늘어난다는 것은 결국 군역의 파탄, 국방의 부실을 의미한다. 여말선초에 국난의 위기속에 사전혁파, 과전법이라는 황당하다면 황당할 수도 있는 극약처방이 먹힌 것도 결국 평민이 줄고 세금 낼 이가 줄어드는 데서 오는 위기감이 발로였다 할 것이다. 일천즉천은 처음에는 노비소유자이기도 한 양반들이 자신의 땅을 경작할 노비를 안정적으로 보충하고자 하는 동기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해를 거듭하고 세대를 거듭하면 전 인민이 노비화해서 세금 낼 사람이 아무도 없어지게 된다는 것을 알았을까? 알면서도 모른 척 했을 수도 있고, 복잡한 계산은 딱 질색인지라 거기까지는 추정을 못 했을 수도 있겠다. 중요한 것은 조선시대 똑똑하기로 다섯손가락안에 .. 2026. 5. 24.
인류 최초 화장은 1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울루 대학교University of Oulu 제공 핀란드 오울루 대학교 아카데미 연구원 페르하트 카야Ferhat Kaya를 포함한 국제 연구팀의 최근 발견은 10만 년 전 초기 인류가 어떻게 살고, 이동하고, 환경에 적응했는지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제공한다.이 연구팀은 1981년부터 아파르 리프트Afar Rift 지역을 연구하며, 이번 연구 결과는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에 게재되었다.이 지역에서는 호모 사피엔스 개체 유해를 포함한 중요한 화석들이 발견되었는데, 그중에는 고온에서 소각된 뼈도 있었다.이는 화장을 시사하며, 인류 화장의 가장 오래된 증거일 가능성이 있다.유해에서는 또한 포식자에게 물린 자국과 갑작스러운 매.. 2026.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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