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체 글22838 서자와 노비는 조선후기사의 뜨거운 감자 필자가 누차 하는 이야기지만우리나라 조선후기인구전체에서 노비와 서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생각보다 어마어마하게 높을 것이라 본다. 필자가 보기엔 거의 90프로 가까운 인구가 노비와 서자에 포함될 것이라 보는데 이는 18세기까지도 각종 호적의 기록, 그리고 서자의 숫자에 대한 당대 인물들의 증언에서 여실히 알 수 있는 바다. 앞에도 썼지만 우리 집안은 명문 사족, 우리는 양반집안 출신이라고 생각 하는 분들도 태반은 서출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서출? 대단한 것이 아니다. 조선시대 내내 한번만 서자가 중간에 조상중에 끼면그 집안은 서출이 되는것이므로. 단순히 양반으로서 퇴락하여 몰락한것이 아니라, 몰락할수 밖에 없는 조건, 다시말해 조상중에 한번만 서자가 나오면 그 이후 줄줄이 금고되어야 하는 말도 안되는 .. 2026. 1. 31. 산수계산이 안되는 조선시대 위정자들 앞에서 우리나라 서얼(서자)의 문제를 좀 썼는데여기에 대해 좀 더 써보겠다. 우리나라 서얼문제의 고질적인 부분은위에 조상중에 한명만 서얼이 있어도 그 이후로는 전부 금고로 묶여 버린다는데 있다. 따라서 어떤 집안 자손들이 적자와 서자가 1대 1의 비율로 나온다고 치면, 적자가 될 확률은 1/2이지만 10대만 내려가면 적자로 계속 이어져 금고의 위험이 없는이는 1024명 중에 한명이 된다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서얼이 얼마나 만았는가 하는 건 영정조시대에 벌써 전체 인구의 절반이 서얼이라는 소리가 심심찮게 나온것을 보면 알수 있다. 18세기라면 아직 노비가 전체 인구의 절반 가까이 있던 시대인데 거기에 절반이 또 서얼이라면 도대체 제대로 된 양반은 몇명이라는 말인가 싶지만, 아무튼 단순계산으로도 서얼 금고.. 2026. 1. 31. 서자에게 살길을 틔워주는 가족 한국사에서 적자로만 내려오는 가계에 태어나기란 로또 맞는것과 비슷하다. 여말선초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500여년을 30년에 1대만 쳐도 16-17대는 될텐데 이 16-17대를 모두 적자로만 내려온다? 우리나라는 중간에 서자가 한명이라도 끼면 바로 금고가 되었기 때문에 서자 적자의 비율을 1대 1로만 잡아도 17대를 모두 적자의 후손이 될 가능성은2의 17승 분의 일이니 도대체 얼마나 낮은 확률이겠는가? 조선왕조의 종친이 아닌담에야 서자는 예외없이 금고되었으니 조선은 노비 못지 않게 서자의 한으로 무너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조선시대 족보를 보면, 서자가 분명한데도 적자처럼 기재해 놓은 경우가 있다. 아마도 집안에서 보낸 병단에 서자라는 말을 빼고 보내지 않았을까 싶은데, 족보 수단을 하는데.. 2026. 1. 31. (되려) 민주적인 부계 족보 흔히 우리나라 초기 족보는 처가와 딸까지 다 상세히 적지만 부계 족보로 전환하면서 이런 풍조가 사라지고 가부장적 권위가 관철된 것으로 설명한다. 그런데 유심히 보면이건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과 거리가 멀다. 초기 족보는 부계를 망라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주변의 처가, 외가, 딸에 사위까지 족보에 올리므로 족보를 만든 집안에 수준이 맞는 이들만 족보에 올라가게 된다. 쉽게 말해 신분이 떨어지는 집안은 이런 족보에는 거의 이름을 올리지 못한단 말이다. 따라서 초기 족보라 할 문화유씨 가정보, 안동권씨 성화보 등에는 서자의 이름이 없다. 레벨이 안되므로 올리지를 않은 것이다. 반면에 임란 이후 부계 족보로 전환하면서는 어떤일이 벌어지느냐. 같은 부계 뿌리에서 나온 후손이라고 해도 정말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있.. 2026. 1. 30. 왜 사족들이면서도 선계 계보가 부실했는가 조선시대 사족들을 보면선계 계보가 매우 부실한 경우가 다반사였다. 이렇게 된 이유는 필자가 보기엔 그 이유가 이렇다. 첫째로 조선시대 사족들의 경우 그 기원이 향리 출신인 경우가 많다. 집안이 일어난 시점이 빨라야 무신난 이후, 늦으면 여말선초이다 보니 제대로 된 계보가 애초부터 없었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대개 여말선초의 몇대조 정도 가지고 있는 정도가 많고 그 위로 중시조, 혹은 원시조의 이름 정도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두번째로 고려 전기부터 내려오는 귀족 명문의 경우, 일차적으로 무신란때 절단 난 집안이 많고, 여말선초에 제대로 사족집안으로 전환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아주 예외적으로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사족으로 성공적으로 전환하여 계속 번성한 경우도 있긴 한데 이런 경우는 계보가 상대적으로.. 2026. 1. 30. 대동보는 어떻게 팽창하는가: 어느 집안의 경우 (2) 앞의 이야기를 계속 써본다. 그러면 이 문중의 족보는 그 이후 어찌 되었을까? 사실 이 집안의 첫 족보가 나간 뒤우리도 이 집안의 후손이라 주장하는 사족 집단들이 계속 쇄도했다. 이 시점이 17세기이다. 앞에서 증손 11 분으로 계보를 만들었고, 또 선계를 모르는 다른 지역의 종족 한 집안이 별보로 들어갔다고 했는데 그 다음 족보에는 이미 알려진 증손 11 분의 아버지 대, 다시 말해 그 손자 일곱분 중 한 분으로 부터 갈려나갔다고 주장하는 두 종족이 새롭게 합보를 요청해왔다. 이 경우는 앞의 종족과 달리 명확히 갈려나간 조상의 이름을 특정했다는 점에서 다른 면이 있었지만, 문제는 옛 족보와 각종 문헌을 보면 그 할아버지는 아들을 한명만 두었을 뿐, 그 들의 주장대로 아들이 원래 있던 아들 집안 포함 세.. 2026. 1. 30. 사족 집단이 선계를 잊어버리면 어떻게 합보? 대동보의 성립 과정에서 엄연히 사족으로 인정할만한 집단이 무더기고 선계를 잊어버리고시조나 이에 준하는 인물의 후손이라는 주장 하나만 달랑 들고 있는 경우에는이를 무작정 내칠수가 없으니 대개는 처음에는 족보의 별보에 편성해 두었다가 그 후의 족보 어느시점에는 문중 계보 어딘가에 연결시키기 마련이다. 물론 이를 끝까지 연결시키지 않고 그대로 족보에 실어두는 경우도 드물게는 있지만대개는 어디라도 연결시키게 된다. 백년전 족보에는 계보에 연결되어 있지 않던 종족집단이 백년 후 족보에는 아무 설명 없이 어딘가 누군가의 자손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물론 아무 설명도 없이라는 것은 당대의 족보에 대한 이야기로, 그보다 이전, 백년 전 족보를 보면 대개 그 연유를 써 놓은 경우가 많다. 이러이러해서 논란이 있다고 써두지.. 2026. 1. 30. 대동보는 어떻게 팽창하는가: 어느 집안의 경우 (1) 조선후기 대동보는 어떻게 팽창하는가.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원래 조선전-중기까지의 족보는 족보를 만드는 사람들을 중심에 두고 친가는 물론 처가 외가의 모든 유력자의 계보를 망라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를 하였다.조선전기의 지배층은 서로 혼맥에 의해 연결되어 있다 보니 조선시대 족보의 가장 이른 시기의 족보인 안동권씨, 문화유씨의 경우 당시 지배층의 대부분을 수용하게 되었다는 말도 하였다. 이러한 족보의 정황에 변화가 발생한것은 별다른 노력없이도 파악이 가능한 이러한 형태의 족보가 유교적 종법에 대한 강조에 따라 친가 부계 위주의 대동보로 변화를 시작하게 된것이 임란을 전후해서 부터이다. 이 시기가 되면 이미 서로간에 연락이 안되는 친족이 전국에 흩어져 있는 경우가 많아 부계 위주의 대동보를 만드는 .. 2026. 1. 30. 족보의 조상 추증 족보를 보면 추증 관직이 있다. 본인이 잘나서 사후 추증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후손이 잘나서 추증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문과 급제를 했다고 하자. 조선시대 문과 급제란 대단한 영광이다. 문과 급제가 한명만 있어도 그 집안은 사족으로 살아난다. 이처럼 문과 급제는 조선시대에 대단했으므로 국가에서 문과급제자의 명부 (문과방목)은 엄격하게 관리했다. 무과는 후기로 오면 급제자도 남발하였지만 문과는 비교적 잘 관리되어 후기까지도 권위를 유지했다. 이렇게 문과에 급제하여 조금만 제대로 된 청요직 관직을 섭렵하면 이내 그 조상 3대는 추증한다. 후손이 잘되어 추증한다는 내용을 족보에서 보고 아래로 따라 내려가 그 후손이 문과 급제자라면 이건 백프로 믿을 만한 추증이다. 그런데-. 조선시대.. 2026. 1. 29. 조선시대 중 후기 서울에 대한 과소평가 조선시대 중후기 산림과 붕당정치에 대한 장황한 설명벼슬을 줬다는데 마다하고 낙향했다는 사족의 이야기 그리고 그 후손들의 장렬한 설명때문에 우리는 조선시대 중후기가 마치 지방의 사족들의 연합체가 나라를 이끌고 있었던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일언이폐지하고 써본다. 조선시대 문과 합격자조선시대 진사 입격자의 40프로가 한성부 거주자였다. 근기지역도 아니고 한성부가 거주지였다는 말이다. 양반 고을 하면 반드시 나오는 A 시의 경우 문과 합격자가 전체 인구의 1프로를 간신히 넘는다. 또 다른 K시의 경우 1프로도 안된다. 조선시대 중후기 내내 향촌 사족들이 주도하다가 경화사족이 출현하여 그 중심이 서울 인근으로 몰리기 시작했다는 인식은그래서 잘 못된것이다. 20세기 이후 지방의 사족들은 그대로 향촌에 남아 목소.. 2026. 1. 28. 조선시대 중 후기 종친에 대한 과소평가 한국사의 기술을 보면, 조선후기 사회에서 종친과 그 후손에 대한 영향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바로 사회를 사림에 의해 주도되는 사회, 붕당정치로 정국을 설명하고 사회를 이들 사족들이 끌고 간것으로 보기 때문인데, 이는 하나는 맞지만 하나는 틀린 이야기이다. 조선 후기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이 왕조의 국성 집안에 대한 정확한 평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조선전기 왕족과 종친에서 갈려 나온 집안들은 대개 4대까지는 국가의 관리하에 적자는 물론 서자도 보호받으며 성장하며4대가 지나가면서 일반 사족으로 나오지만 여전히 선원록에서 관리되는 후손은 딸은 6대, 아들 쪽은 무려 9대를 적었다. 이처럼 국가가 그 후손의 족보를 엄정히 관리하기 때문에 이들의 혼인 내력을 보면다른 사족과 비교하자면 종친 4대까지는 어머.. 2026. 1. 28. 조선은 누구의 나라인가 조선은 노론의 나라라고들 한다. 과연 그럴까. 필자가 보기엔 조선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나라의 국성, 왕족과 종친의 나라, 더 나아가서는 그 문중의 나라이다. 흔히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이 노론 등으로 대표되는 사림이 하도 떠들다 보니조선은 이들의 나라라고 생각하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조선의 그 어떤 문중도 이 나라의 국성을 앞서 나갈수는 없다. 왕으로 부터 갈려 나가서도 무려 4대를 국가의 힘으로 보장해주고, 일반 사족이라면 엄두도 못낼 서자까지 알뜰히 챙겨 자립의 기틀을 만들어주고 사족으로 독립시키는데 도대체 어떻게 다른 문중이 이를 앞설수 있다는 말인가? 이 때문에 흔히 명문 사족이라고 알려진 집안의 족보, 어떤 족보를 봐도, 조선의 왕으로 부터 갈려나간 선원속보 무슨 무슨 군파 하나를 따라갈 .. 2026. 1. 27. 페루 쿠스코 (1) 현재 페루의 수도는 리마이지만쿠스코는 스페인이 쳐들어오기전 오랫동안 잉카제국의 수도였다. 쿠스코를 가려면 리마에서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는데 미치도록 높아서 처음 며칠동안은 고산증에 준하는 고통을 받는다. 일주일 정도 단기 체류하는 사람들은 종래 적응 못하고 다시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쿠스코의 상징은 알파카이다. 면세점에도 알파카 옷을 엄청나게 판다. 쿠스코와 잉카 하면 역시 엘 콘도르 파사이다. 공항의 잉카 상징물쿠스코의 중심가. 이 도시의 지하에는 지금도 잉카시절 도시가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것은 모두 스페인 시절 지은 석조건물들이다. 도시 안에 성당이 바글바글한데 쿠스코의 악령들을 누르기 위해 많이 지었다고도 한다. 이런 건물들은 모두 성당이다. 도시가 고지대라 .. 2026. 1. 27. Santa Fe 산타페는 미국 뉴멕시코의 주도이다. 크기는 뉴멕시코의 또 다른 도시인 앨버쿠키가 더 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작지만 산타페는 토착원주민의 분위기로 도시를 만들어 방문객에게 이채롭다는 느낌을 강렬하게 준다. 우리나라 자동차 이름이 미국 중서부 지명을 딴것이 많은데 이 산타페가 그 산타페이다. 산타페는 도시전체가 위 사진에서보는 것 같은 건축물이 가득차 있다. 저런 형식의 건축물을 어도비(Adobe)라 부르는 것으로 안다. 포토샵의 그 어도비이다. 원주민 문화가 산타페와 뉴멕시코의 상징이다. 도시가 작고 명색이 주도인데 높은 빌딩도 거의 없다. 개척시대 산타페 트레일의 종착점이었다고. 해질녘의 산타페주변을 흐르는 산타페 강. 그 유명한 리오그란데로 간다. 웃자고 하는 소리겠지만 뉴멕시코의 자동차 번호판에는 ".. 2026. 1. 27. 로마 근교에서 네안데르탈인 유골 9구 발견(2021) (2021년 5월 8일) 이탈리아 고고학자들이 로마 근교 한 동굴에서 네안데르탈인 유골 9구를 발굴했다.이번 발견은 이탈리아 반도의 인구 구성과 당시 환경 조건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한다. 이탈리아 문화부는 토요일, 이번 발견을 발표하며 산펠리체 치르체오San Felice Circeo에 있는 구아타리 동굴Guattari Cave이 "네안데르탈인 역사에서 세계 가장 중요한 장소 중 하나"임을 확인시켜 주었다고 밝혔다.이 동굴에서는 1939년에 네안데르탈인의 두개골이 발견된 바 있다.화석화한 뼈에는 두개골, 두개골 조각, 치아 두 개, 그리고 다른 뼈 조각이 포함된다. 문화부는 성명을 통해 가장 오래된 유골은 10만 년에서 9만 년 전 것으로 추정되며, 나머지 네안데르탈인 8구는 5만 년에서 6만 8천.. 2026. 1. 27. 5,000년간 신석기 도구 사용 흔적을 보여준 가봉 파혼Pahon 동굴 by Krystal Kasal, Phys.org 아프리카 가봉에 있는 파혼 동굴Pahon Cave은 구아노 기반 퇴적층guano-based sediment이 층층이 쌓여 있어 고고학자들에게 중앙 아프리카 후기 석기 시대를 잘 보존된 상태로 보여준다.이는 산성 토양 때문에 유물 보존이 어려운 주변 지역과는 대조적이다. 새로운 연구는 파혼 동굴 두 곳 시굴 구덩이test pits에서 발굴된 석기 유물 1,131점과 동물 유해 1,045점에 대한 심층 분석을 진행했다.연구는 PLOS One에 게재되었다.수천 년의 다른 시대, 같은 도구 파혼 동굴 유적은 7,427년 전부터 2,724년 전까지의 시대를 아우르는 5개 지층으로 나뉜다. [이는 고고학도들이 편의상 나눈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동굴에서 발굴된 1.. 2026. 1. 27. 네안데르탈인은 알프스 고지대를 다니면서 도구 세트를 휴대하다 by Paul Arnold, Phys.org지금의 이탈리아에 산 네안데르탈인은 알프스를 넘을 때 고산지대 곰 동굴에 피난처를 찾았을 가능성이 높다.해발 1,450미터에 위치한 카베르나 제네로사Caverna Generosa 동굴에서 발견된 석기 도구에 대한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이 여행자들은 도구 세트를 가지고 다닌 것으로 밝혀졌다. 수년에 걸친 발굴조사에서 동굴 안에서는 수백 구 곰뼈가 발견되었다.동물 이빨, 뼈, 기타 유해 사이에서 16개 석기 도구도 함께 발견되었다.최근 학술지 '제4기 과학 저널Journal of Quaternary Science'에 발표된 이번 연구에서 과학자들은 이 유물들을 자세히 분석하여 왜 그리고 어떻게 산꼭대기에서 사용되었는지 밝혀냈다.선사시대 배낭여행자 첫 번째 발견은 .. 2026. 1. 27. 가장 오래된 43만년 전 목제 도구 그리스에서 발견 그리스 남부에서 연구를 진행하던 연구진이 약 43만 년 전으로 추정되는,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휴대용 목제 도구를 발견했다.이 도구들은 펠로폰네소스Peloponnese 반도 중부 메갈로폴리스 분지Megalopolis Basin에 위치한 마라투사Marathousa 1 유적에서 출토되었다.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에 발표된 새로운 연구에 의하면, 이 지역은 약 77만 4천 년 전부터 12만 9천 년 전까지의 중기 플라이스토세 시대에 호숫가였던 곳이다. 마라투사 1 유적 발굴에서는 석기 조각, 절단 흔적이 있는 동물 뼈, 그리고 곧은 상아를 지닌 코끼리 유해가 출토되었다.고고학자들은 이러한 발견들이 초기 인류가 물가 근처에서 큰 사체를 처리하기.. 2026. 1. 27. [馬문화] 루즈벨트 국립공원 야생마들은 여러 혈통이 섞였다 Wild horses in Theodore Roosevelt National Park have mixed ancestry by Public Library of Science Three common pelage types presented in the Theodore Roosevelt National Park horses. Credit: NPS / Thom Buras(August 1, 2018) Feral horses living in Theodore Roosevelt National Park in the Badlands of North Dakota likely had multiple origins, but have since become inbred, according to Igor Ovchinnikov.. 2026. 1. 27. [馬문화] 얼룩말은 왜 줄무늬를 갖게 되었을까 by 브리스톨 대학교University of Bristol (2019년 2월 20일) 얼룩말zebras은 왜 줄무늬stripes가 있을까?오늘 PLOS ONE에 발표된 한 연구는 이 수수께끼 같은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고 줄무늬의 실제 기능을 이해하는 데 한 걸음 더 다가서게 해준다. 얼룩말 두 가지 색깔 털의 진화는 150년 넘게 과학자들 관심이었다.포식자 회피, 체온 조절, 사회적 기능 등 다양한 이론이 제시되었지만, 과학자 사이에서는 아직 의견 일치가 없다. 이제 브리스톨 대학교와 캘리포니아 대학교 데이비스 캠퍼스UC Davis, California 연구진은 얼룩말 줄무늬의 주요 기능이 흡혈 기생충blood-sucking parasites을 피하는 것이라는 이론에 대한 증거를 추가했다. 팀 카로Ti.. 2026. 1. 27. [馬문화] 유전체 연구로 지난 5,000년간 말 역사가 드러나다(2019) 셀 프레스Cell Press 제공 (May 2, 2019) 매년 5월 첫째 주 토요일, 경주마들은 켄터키 더비Kentucky Derby에서 시속 64km가 넘는 속도로 질주하며 우승을 위해 경쟁한다.하지만 가축 말이 처음부터 속도를 위해 개량된 것은 아니다.실제로, 국제 연구팀은 현대 말이 불과 몇 백 년 전 말과 유전적으로 상당히 다르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5월 2일 학술지 셀Cell에 발표된 이 연구는 인간이 아닌 생물체로는 사상 최대 규모 유전체 데이터를 활용해 지난 5,000년간 전 세계 가축 말의 유전적 역사를 재구성했다.연구진은 현재 멸종된 두 개 새로운 말 계통을 확인했으며, 속도와 같은 익숙한 형질들이 비교적 최근에 선택적으로 발달했음을 시사한다."말은 그 어떤 동물보다도 인류 역사에 큰.. 2026. 1. 27. 이전 1 2 3 4 ··· 1088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