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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에서 중세 키마크 카간국 ‘바퀴 달린 집’ 발굴 카자흐스탄 북동부에서 고고학자들이 키마크-킵차크Kimak-Kipchak 시대에 지었다 추정하는 놀라울 정도로 잘 보존된 목조 바퀴 달린 주택wooden wheeled dwelling을 발굴했다. 이는 중세 유목민들이 유라시아 스텝 지역을 어떻게 이동하고, 생활하고, 신분을 과시했는지에 대한 귀중한 물리적 통찰력을 제공한다.이 구조물은 나무 수레 위에 천막 형태 주거 공간이 놓인 형태로, 전통적인 카자흐스탄 유르트Kazakh yurt와 유사하다. 파블로다르Pavloda 지역 당국은 이번 발견이 카자흐스탄은 물론 더 넓은 스텝 지역에서도 알려진 고고학적 유사 사례가 없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이와 유사한 이동식 주거mobile dwellings는 주로 문헌 기록이나 개략적인 역사적 묘사를 통해서만 알려졌다.매.. 2026. 7. 30.
2,000년 전 광서 장족 암각화 안료에서 사람 피 성분 검출 (편집자주) 이에서 논의하는 암각화는 화산 암화花山岩画, 혹은 화산 암벽화花山崖壁画라 하며, 중국 남부 광서장족자치구广西壮族自治区 좌강左江 유역 영명宁明, 룡주龙州, 숭좌崇左, 부원扶绥, 대신大新 등지의 넓고 평평하며 수직으로 솟은 돌벽에 분포하는 고대 미술품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이름은 좌강左江 화산 암각화 문화경관Zuojiang Huashan Rock Art Cultural Landscape이다. 이 벽화들은 장족壮族 조상인 낙월인骆越人이 그린 것으로, 총 79곳이 확인됐다지만 그 숫자는 늘어난다. 개중에서도 녕명현宁明县 명강明江 화산 암벽화花山崖壁画가 규모가 가장 크고 장관을 이룬다. 2016년 7월 터키 이스탄불에서 개최된 제40차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개중 보존상태가 좋은 38곳.. 2026. 7. 30.
섬서사범대학 장안캠퍼스를 튀어나온 한나라 무덤들과 그 껴묻거리들 (화상닷컴, 2026년 7월 28일 12시 53분) 최근 섬서성고고연구원은 일련의 고고학적 발견을 발표했다.연구원은 섬서 사범대학陕西师范大学 장안캠퍼스长安校区 남동쪽 구석에 위치한 25개 무덤과 2개 재구덩이를 발굴 및 정비했다.한나라 무덤 10개는 비교적 잘 보존된 상태로 발굴되어 도기, 청동기, 철기 등 130점 장례 유물이 출토되었다.이 한나라 무덤에서는 어떤 흥미로운 유물들이 발굴되었을까?도기 세발솥[陶鼎]부터 도괴陶魁까지 일상생활의 모습도기로는 모두 95점이 출토됐다. 鼎·盒·壶·罐·盆·盘·甑·碗·奁·魁·耳杯·勺·囷·灶·灯·井·案과 같은 것들이 있다.이처럼 다양한 종류 도기는 이번 발굴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유물군이다.발굴된 도기 중에는 세발솥이 있다.뚜껑 중앙에는 뾰족한 잎사귀 모양 네.. 2026. 7. 30.
일제시대 족보가 갑을이 바뀐 이유 일제시대 대동보 기사를 옛날 신문에서 찾아보면그 시절에도 대동보는 만드는 과정에서 시끄러워서 대동보를 둘러싸고 소송전과 상호비방이 있던 기사를 보게 된다. 일제시대 들어오면서 족보의 규모가 이전보다 더 커져서그야말로 수십만의 종원을 거느리는 거질의 족보로 확대되고 이전과는 달리 족보를 만드는 측과 들어가는 쪽의 갑을이 바뀌게 되었는데이렇게 공수전환이 된 가장 큰 이유의 하나가, 구한말 이후 호적이 혁파되면서 근대적 호적 기록이 시작되어 사람들이 죽어라고 족보에 들어가려고 애쓸 이유가 사라져 버렸다는 데 있겠다. 조선시대만 해도 호적은 군역과 관련이 있고, 호적을 바꾸려면 족보부터 바꿔야 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족보에 이름을 올리려 하고 있었지만, 20세기 들어오면서 호적이 지금의 모양으로 바뀌면서 족보에 .. 2026. 7. 30.
족보의 팽창은 결국 양반수의 급증을 반영한다 우리나라 족보를 보면, 예를 들어 안동권씨 성화보, 문화유씨 가정보의 경우 이 족보들이 조선 전기에 나온 것임에도 권질 분량이 상당하다. 그 이유는 이 족보에는 자신들의 부계 직계만 수록한 것이 아니라, 사위 쪽 계보 등 자신의 부계 친족과는 무관한 사람들까지 몽땅 실어놨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임진왜란이 지나면 부계 족보가 비로소 출현하기 시작하는데이 시점이 되면 우리가 아는 족보의 모양, 딸은 출가하면 사위 이름만 적고 그 이후 계보는 생략해 버리는 형식의 족보가 나오기 시작한다. 따라서 임란 직후의 부계 족보를 보면그 이전의 족보보다 권질이 훨씬 줄어든다. 특히 지금 후손 수를 많이 거느린 문중의 경우, 지금보다 훨씬 적은 분량의 족보를 꾸리게 되는데 그 이유는 부계만 담은 것도 있지만 지금은 같.. 2026. 7. 30.
족보는 어느 정도로 맞을까? 우리나라는 집집마다 족보를 들고 있다. 이것, 어느 정도로 맞는 이야기일까? 왠만큼 유명한 집안의 검증된 후손이 아니라면 누구든 지니는 의문일 것이다. 이에 대해 좀 써 보면, 결론은 천차만별이라고 하는 게 옳다. 한국의 족보와 호적을 연구한 일본 연구자가 있었는데, 그 양반 왈 한국의 족보, 호적과 대조해 보니 의외로 정확하다. 이건 호적에 나와 있는 사람의 족보를 찾아 추적하면 그럴 수 있다고 본다. 필자도 몇몇 경우 살펴 보았는데 호적에 사족으로 기재된 경우족보를 대조하면 거의 비슷한 기록이 있는 것을 보았으니. 그런데 문제는-. 호적에는 사족으로 기재된 사람 숫자가 많지 않은 것이 문제겠다. 예를 들어 170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 남아 있는 호적에서 사족 숫자. 그렇게 많지 않다.우리나라는 180.. 2026. 7. 30.
칙술루브Chicxulub 충돌 먼지가 공룡 멸종 원인 6천6백만 년 전, 거대한 소행성이 현재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 충돌하여 공룡을 비롯한 지구 생명체 약 75%를 멸종시켰다.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대부분의 생명체가 죽은 원인을 두고 논쟁을 벌였다. 새로운 연구는 충돌 후 몇 시간 만에 수많은 육상 동물이 죽은 주요 원인 중 하나로 두꺼운 먼지층으로 인해 더욱 악화한 강렬한 열파를 지목한다.지구물리학 연구 저널: 생물지구과학Journal of Geophysical Research: Biogeosciences에 발표된 이 연구는 칙술루브 충돌과 충돌 직후에 일어난 일들을 다시 살펴보았다. 소행성은 엄청난 양의 암석을 하늘로 흩뿌렸다. 녹은 암석 일부는 식어서 구형 입자라고 불리는 미세한 유리 구슬 형태로 변했고, 이후 대기를 통과하며 다시 떨어졌다. 이 구형 .. 2026. 7. 30.
140만 년 전 케냐 발자국이 폭로한 파란트로푸스 보이세이Paranthropus boisei 케냐 북부 고대 호수 옆에서 발견된 화석 발자국들은 초기 인류의 행동을 보여주는 가장 명확한 기록 중 하나를 연구자들에게 제공한다. 이 발자국들은 약 143만 년 전 것으로, 적어도 8개체 호미닌hominins이 땅이 굳기 전 젖은 땅을 가로질러 걸은 한 순간을 포착한다.이 발자국들은 투르카나 호수Lake Turkana 근처 쿠비 포라 지층Koobi Fora Formation에서 발견되었다. 발 모양과 걸음걸이를 바탕으로 연구자들은 발자국을 남긴 사람들이 멸종된 인류 친척 파란트로푸스 보이세이Paranthropus boisei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추측한다. 이 종 화석은 대부분 두개골과 치아뿐이어서, 나머지 신체 부위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발자국은 화석이 거의 보존하지 못하는 중요한 정.. 2026. 7. 30.
독일 중부서 로마 시대 장옥長屋 30채가 이룬 게르만 정착지 발견 독일 빌레펠트-지커Bielefeld-Sieker에서 서기 2세기에서 5세기 사이에 조성된 대규모 게르만 정착지가 발굴되었다. 베스트팔렌-리페 지역 협회Regional Association of Westphalia-Lippe (LWL) 발굴 조사 결과, 당시 대부분의 공동체가 소규모 농가나 흩어진 주택군에서 생활한 동부 베스트팔렌East Westphalia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정착 형태가 드러났다.발굴팀은 최소 30채 대형 장옥longhouses을 확인했는데, 일부는 너비가 최대 8미터(26피트), 길이가 최대 30미터(98피트)에 달했다. 연구진은 또한 공예 작업이나 저장 공간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움푹 들어간 구조물을 포함한 여러 개 작은 건물도 발견했다.이 정착지 규모와 배치로 미루어 보아 로.. 2026. 7. 30.
발굴 조사를 통해 드러난 칼리닌글라드의 전신 쾨니히스베르크의 역사 러시아 칼리닌그라드Kaliningrad의 역사적인 외곽 지역(Far Forstadt)에서 진행된 긴급 발굴 조사에서 400년이 넘는 세월을 아우르는 놀라운 유물들이 발견되어, 16세기부터 제2차 세계 대전까지 옛 프로이센 도시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의 일상생활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한다.러시아 과학 아카데미 고고학 연구소 삼비아 고고학 탐사대Sambian Archaeological Expedition가 2026년에 실시한 이번 발굴 조사는 레닌스키 프로스펙트Leninsky Prospekt, 크라스누크탸브르스카야 거리Krasnooktyabrskaya Street, 모레호드나야 거리Morekhodnaya Street로 둘러싸인 공원에서 계획된 재개발 공사에 앞서 진행되었다.고고학자들은 쾨니히스.. 2026. 7. 29.
중세 공동묘지에서 드러난 유럽 최후의 이교 국가 리투아니아로의 이주 역사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Vilnius에 있는 중세 공동묘지에서 실시된 동위원소 연구를 통해 이 도시 초기 기독교 거주민 중 일부가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이주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리투아니아가 유럽에서 마지막으로 공식적으로 이교 국가였던 시절에도 민족적, 종교적 다양성이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새로운 증거다.이번 연구는 빌뉴스 구시가지 복슈토 거리Bokšto Street에 있는 13~14세기 중세시대 공동묘지를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고고학자들은 이곳에서 도시 초기 기독교 공동체와 관련된 매장지를 발굴했다. 연구진은 인골에 보존된 화학적 특징을 분석해 많은 사람이 어린 시절을 어디에서 보냈는지 밝혀냈다.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곳에 묻힌 사람 상당수는 리투아니아 토착민이 아니었다. 동위원소 분석 결과.. 2026. 7. 29.
[시장 없는 귀신 왕조] (5-총결) 봄날 신기루 같은 오일장의 추억 대략 10년 안쪽에 일어난 일이다. 무형유산 삼을 만한 먹거리를 찾던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이 5일장을 착목한 적이 있다. 그 무렵이면 김치 담그기 문화가 일약 인류무형유산에 등재하고, 그에 힘입어 장담그기니 하는 유사 상품 개발이 잇따를 때라, 옳거니 해서 이런저런 의견 받아서 그래 오일장도 있지! 해서 조사에 나섰더랬다. 그 기초 조사를 어느 연구소에서 맡았으니, 그네들이 그렇게 조사하고선 (무형)문화재위원회에 보고까지 했더랬다. 당시 나는 그 위원이었으니, 그날 일을 어렴풋이 기억한다. 문제는 그 오일장이 유구한 전통쯤 되는 줄 알았는데 웬걸?근현대를 지나 조선시대로 들어가니?오일장이 없네?당혹스럽기는 연구소도, 위원회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나는 그런갑다 했다.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2026. 7. 29.
[배째!] 일제시대 족보 편찬 흔한 풍경 일제시대 일기를 보면, 그 당시 족보를 만들던 정황이 적혀 있어 흥미를 끈다. 모 집안에서 족보를 만들던 시점은 1930년대 중반-. 일제시대는 이전에 목판으로 찍던 족보가납활자로 전환하였던 시기이다. 인쇄가 깨끗하고 제본 등이 폼 나는 대신에, 가격이 많이 상승한 것 같다. 그 당시 족보를 만들던 정황이 일기에 적혀 있는데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이 집안은 족보를 만들 때 비용이 넉넉치 않았던 것 같다. 가장 문제는 수단收單 작업에서 명단을 보내 오고는, [수단이란 단자를 거두어 들인다는 족보 용어다.]납부해야 하는 비용을 내지 못하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는 참 난처하겠다. 명단이 왔으니 뺄 수도 없는데 나 돈 몬냅니다 하고 뒤로 자빠진 것이다. 그래서 일기를 적은 이가 대금을 받기 위해 후손들을 만나.. 2026. 7. 29.
[시장 없는 귀신 왕조] (4) 시장 자체가 아예 없는 고려 왕도 개경 고려 중기 송나라 사신단 일원으로 와서 개경을 둘러보고선 그 귀국 보고서로 완성한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이 증언하는 당시 고려사회 단면이다. 아 물론 이것이 당시의 실상은 백퍼 완벽히 전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암튼 그 제3권 성읍城邑 편에서 채록한 방시坊市 논급 전문이다. 왕성王城에는 본래 방시가 없고, 광화문廣化門에서 관부官府 및 객관客館에 이르기까지, 모두 긴 행랑을 만들어 백성들의 주거를 가렸다. 때로 행랑 사이에다 그 방坊의 문을 표시하기를 ‘영통永通’ㆍ‘광덕廣德’ㆍ‘흥선興善’ㆍ‘통상通商’ㆍ‘존신存信’ㆍ‘자양資養’ㆍ‘효의孝義’ㆍ‘행손行遜’이라 했는데, 그 안에는 실제로 시장 거리나 민가는 없고, 적벽에 초목만 무성하며, 황폐한 빈터로 정리되지 않은 땅이 있기까지 하니, 밖에서 보기만 좋.. 2026. 7. 29.
대장장이가 재현한 전설적인 '울프베르트Ulfberht' 바이킹 검 노래, 희곡, TV 시리즈, 영화와 같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대를 초월해 불멸의 존재로 자리매김한 바이킹 시대는 수 세기 전의 약탈을 넘어 훨씬 더 광범위한 유산을 남겼다. 바이킹의 활동은 약탈에서 탐험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웠다. 그중에서도 울프베르트 검Ulfberht sword은 오랫동안 전설로 남았다. 노련한 바이킹 전사의 손에 이 검이 들려 있는 것을 본 적은 누구나 그것이 단순한 지위의 상징이 아니라 치명적인 무기임을 즉시 알아차렸다. 이 검에 사용된 강철 특성 덕분에 다른 검에 비해 압도적인 내구성을 자랑하며 전투에서 치명적인 위력을 발휘했다. 이 검은 대장장이들이 재료 과학이나 고에너지 물리학을 이해하지 못한 시대에 만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습지 철bog iron, 제련smelting, 패턴 .. 2026. 7. 29.
초기 인류 아이들도 태어날 때는 비실비실해 손이 많이 갔다! 화석화한 인류 기형적인 머리 분석 결과 드러나 by 도쿄대학교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고대 인류의 부모는 현대 부모처럼 무력한 유아를 돌봐야 했다.인류의 아기는 다른 유인원의 아기보다 발달이 덜 된 상태로 태어나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다.그 결과 기형성 사두증deformational plagiocephaly, 또는 납작머리 증후군flat head syndrome이라고도 불리는 증상이 흔히 나타난다.도쿄대학교 유스케 카이후(Yousuke Kaifu)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살아있는 유아의 두개골 스캔, 일본의 역사적 유골, 호모 에렉투스와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의 화석 표본, 그리고 다른 유인원의 건조된 두개골 측정 자료를 이용해 머리 모양을 연구했다.이 연구는 왕립학회보 B: 생물과학(Proceedings .. 2026. 7. 29.
[시장 없는 귀신 왕조] (3) 넘쳐나는 책 도둑, 내사본에 환장하고 손목 나갈 때까지 열라 베끼는 조선 사회 조선왕조는 겨우 18세기 넘어가야, 것도 본격으로 19세기 중후반에 가야 화폐경제를 기반으로 삼는 사회로 접어들거니와, 그 이전은 경제라 해 봐야 관급 공사 납품밖에 없었고 이렇게 삥땅친 물품을 왕의 이름으로 하사 분배하는 경제였으니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지표 중 하나가 도서라조선시대 책은 함부로 빌려주지도 않았고, 빌려와도 걸핏하면 삥땅 쳐서, 그 빌려준 놈이 죽기만 기다렸다.인쇄본 책이라 해 봐야 몇 부 되지도 않아, 왕실 종친 그리고 힘 있는 관리 몇 놈 농가묵고 나면 남지도 않았으니, 도서시장? 그딴 게 어딨어?그래서 중국 한 번 다녀오면 유리창 가서 신간 구해왔단 소문 나면 우루루 몰려가 것 좀 한 번 보여주라 해서 도서 품평회가 열린다.이건 박지원 시대도 마찬가지였으니, 노론 정통 가문 출신.. 2026. 7. 29.
[시장 없는 귀신 왕조] (2) 마트 다녀왔단 말이 없는 신이한 왕조 특별한 제한이 없는 한 내가 말하는 조선은 19세기 중후반 이전을 말한다.19세기 이후 조선 사회는 따로 취급해야 한다.오늘의 두 번째 질문은 저것이라그 무수한 조선시대 문서 어디를 봐도 마트 가서 찬거리 사왔단 증언 자체가 없다.뭐 급하면 구해오기는 하는데 문제는 그게 시장이 아니라는 사실.알음알음 개인 네트워크를 통해 가서 구하지 뭐 시장통?봤어 시장통?집안 대소사가 있으면 전부 하인 머슴들 데리고 자체 해결하지 마트 가서 재료를 구한다?마트 봤어?뭐 돈이 돌아야 마트라도 있지 이건 뭐 돼지소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혼인 혹은 상사가 가장 큰일인데 이때 이 일을 주관하는 사람들은 거개 집안 원찰이다.일 생기면 콩 지고 가서 두부 만들곤 한다.뭐 마트가 있어야 물건을 사지물건도 없고 마트도 없고 돈.. 2026. 7. 29.
DNA가 카슈미르 고원 잊힌 고대 인류 존재 밝혀내 by 폴 아놀드, Phys.org 과학자들이 인도 북부 고산 지대 라다크Ladakh에서 이전에는 과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고대 인류 흔적을 발견했다.연구진은 약 1,500년 전에 산 사람들 중 남아시아와 티베트 계통 유전자가 거의 50대 50으로 섞인 개체를 발견했다.남아시아의 고대 DNA는 매우 드물어 이 지역 인구가 시간이 흐르면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한 이해에 상당한 공백이 있다.이번 발견은 2021년 해발 4,000미터(13,100피트)에 위치한 고고학 유적인 올드 레이디 스파이더 동굴Old Lady Spider Cave에서 발굴된 10구 유골 분석을 기반으로 한다.이 지역은 고대 무역로를 통해 오랫동안 남아시아, 티베트, 중앙아시아를 연결했다.유골 해독연구팀은 먼저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을 .. 2026. 7. 29.
스코틀랜드서 운반했다는 6톤짜리 스톤헨지 바위, 빙하가 밀어서? by Remy Veness, The Conversation2톤에서 25톤(2~28톤)에 달하는 돌로 지은 스톤헨지Stonehenge 구조물은 바퀴 발명 이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규모의 건축 기술을 보여준다.더욱 놀라운 것은 이 돌들이 현지 암반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그렇다면 왜 하필 이 돌들이며, 어떻게 그곳에 도착했을까?호주 커틴 대학교Curtin University 지구화학자 앤서니 클라크Anthony Clarke와 함께 진행한 최근 연구는 스톤헨지에서 가장 먼 곳에서 운반된 돌, 제단석Altar Stone에 대한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할지도 모른다.제단석은 스코틀랜드 북동부, 오크라디안 분지Orcadian Basin라고 일컫는 암반 지질 지역에서 가져온 것으로, 이곳은 한때 .. 2026. 7. 29.
지중해 한복판 섬 몰타, 그 중석기 시대 수렵채집인들은 반복적인 해상 이동에 의존 by PNAS Nexus 시칠리아 남쪽 지중해 작은 섬 몰타Malta에 중석기Mesolithic 시대에 인간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수수께끼다.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수렵채집인들은 8,500년에서 7,500년 전 사이에 몰타 제도에 거주했으며, 해상으로 이동했을 것으로 추정한다.이 작은 섬에서 제한된 자원 속에서 그들은 어떻게 그토록 오랜 기간 동안 생존할 수 있었을까?제임스 블링크혼James Blinkhorn과 그의 동료들은 후기 플라이스토세부터 홀로세까지 몰타와 시칠리아의 인구 및 생계 잠재력을 모델링했다.저자들은 해수면과 식생 생산성 변동을 고려해 최근의 인류학적 자료와 비교함으로써 수렵채집인 밀도를 추정했다.이 연구는 PNAS Nexus에 게재되었다.몰타와 시칠리아는 약 14,200년 전에 분리되었으.. 2026. 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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