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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가 안데스 원주민들한테 세계에서 가장 높은 전분 소화 유전자 줬다! 감자는 수천 년 동안 안데스 사람들 식량이었다.새로운 유전학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오랜 관계가 인간의 DNA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연구진은 전 세계 85개 인구 집단을 대표하는 3,723명 유전자 데이터를 분석했다.전분 소화 유전자 AMY1의 복제본 수가 가장 많은 집단은 페루 안데스 산맥 원주민이었다.전 세계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약 7개 AMY1 유전자가 있다. 하지만 이 연구에 참여한 안데스 인구 집단은 평균 약 10개 AMY1 유전자를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AMY1 유전자는 입안에서 녹말을 분해하기 시작하는 효소인 타액 아밀라아제salivary amylase 생성을 돕는다.과학자들은 오랫동안 AMY1 유전자 복제 수가 많을수록 녹말이 풍부한 음식을 많이 섭취하는 경향이 있다고.. 2026. 6. 10.
[교감학] 역전앞을 방불하는 玲瓏, 그에서 돌발하는 충돌들 일상 생활에서도 더러 사용하는 말 중에 영롱이라는 말이 있다. 새벽 이슬이나 귀금속을 두고서 영롱하다라는 식으로 쓰는 말이다. 이 말 한자어다. 玲瓏이라 쓴다. 북한에서는 령롱이라 하겠지만, 남한에서는 두음법칙을 적용해 영롱이라 쓴다. 저 말 역전앞과 발상이 같다. 결국 같은 말을 반복해서 그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 발음도 거의 같고 음절 구성도 같다. 의성어이기 때문이다. 구슬이 구르는 소리다.玲이나 瓏이나 두 글자 모두 구슬 玉이 뜻을 한정하는 형성자다. 令과 龍이 소리 부호다. 따라서 저 말은 애초에는 '령룡'이었겠다. 두 말 모두 저런 합성어에서나 가끔 대하지, 일상생활에서 그리 쉽게 접할 말은 아니다. 구슬은 귀금속이라, 그런 귀금속 자체가 희귀하던 시절에 무엇이 玲이고 무엇이 瓏인 줄 구분할 .. 2026. 6. 10.
[교감] 文王과 文汪의 경우 텍스트에 따라 저 두 가지 표기가 혼용되는 같은 인물이라전자라고 하면 흔히 상 왕조를 반석 위에 올려놓은 군주의 시호를 연상하기 쉬우나저 두 가지 표기로 등장하는 인물은 신라 태종무열왕 김춘추와 그의 정비 문명태후 소생인 아들로훗날 죽어 문무왕이라는 시호를 받는 김법민과 죽어 태대각간에 추증되는 김인문의 동부동모 동생이다.아버지가 왕이 되기 전 당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될 적에 아버지를 수행해 들어가 숙위학생인가로 눌러앉기도 한 중국통이다.이런 전력은 형 김인문과 아주 비슷해서 문왕 역시 인문처럼 중국말을 아주 쏼라쏼라 했을 가능성이 있다.아무튼 텍스트에 따라 저이는 저 두 가지 표기가 혼용하지만 文王이 많고 文汪은 상대적으로 빈약하다.글타면 어느 쪽이 그의 진짜 이름인가?첫째 사용빈도를 기준으로 한다면 文.. 2026. 6. 10.
없다던 한성기 백제 기와, 서울대박물관 수장고에서 쏟아져 요새는 기와 연구자도 폭증하고 관련 학회까지 등장했거니와, 그 이전 기와 연구자라 하면 2파전이라, 국립박물관 김성구 선생과 국립문화재연구소 최맹식 두 양반이 다 말아드셨다. 이 기와는 한국고고학에서는 고대국가 성립론과도 결합하는 모습을 노골로 보였으니, 간단히 정리하면 기와를 쓰야 어엿한 고대국가라 할 수 있다, 뭐 이런 논리로 이해하면 대과가 없다! 고구려는 좀 달라서 워낙 중국과 일찍부터 접촉한 관계로다가 일찍부터 기와를 썼고, 문제는 백제와 신라. 신라 쪽은 요새는 조금 달라졌는지 모르겠지만, 진흥왕 시대를 고비로 이때부터 기와 사용이 이른바 고급 건물에 일반화한다 뭐 이런 식의 통설이 자리잡았다고 기억한다. 이런 점에서 황룡사 창건은 획기였다. 문제는 그래도 이른바 신라의 고대국가 성립과 기와 .. 2026. 6. 10.
조선시대 미라 연구 초창기의 작업 (2007년) 조선시대 미라 연구는 필자 혼자 한 것이 아니라 그동안 많은 분이 도와주신 덕이다. 아래 사진은 2007년 어느날, 아직까지 조선시대 미라가 도대체 무엇인지 갈피를 못잡던 시절, 해외 전문 연구자와 함께 현장에서 의견을 나누던 사진이다. 이 당시 박준범 원장께서 현장에서 크게 도와주셨다. 기록 삼아 사진을 남겨 둔다. 2026. 6. 10.
안정성동위원소 분석과 Paleodiet 오늘날 인골이나 미라 조직등으로 하는 분석 중안정성동위원소 분석만큼 안정적으로 데이터를 내고 있는 곳도 드물다. 최근들어 고대DNA분석이 각광받지만 이는 극히 최근의 일로, 고대 DNA분석은 그 역사는 1980년대 부터이니 40년 성상을 헤아리지만, 그 동안 많은 논란이 있었던 분야라 이 분석이 제대로 자리를 잡아 안정적으로 결과를 내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반면에 안정성동위원소 분석은 훨씬 오래전부터 상당히 결과물을 신뢰성 높게 냈으므로, 소위 말하는 고고과학 영역에서 이 연구처럼 그 역사가 길고 신뢰받던 분석은 드물다 할 것이다. 이 안정성동위원소 분석의 단점 아닌 단점을 들자면, 결과물 해석이 너무 포괄적이라 해상도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위 그림을 보면, 민물생선, 바닷생선 구.. 2026. 6. 10.
시황제로 가는 길, 상해박물관 특별전 개막 상해박물관 동관东馆에서 "중국의 부상: 진나라 - 통일의 길을 그린 문물 고고 특별전[肇兴中国:秦·大一统之路文物考古特展]"이 9일 개막했다.이번 전시는 감숙성 섬서성, 상해 지역 14개 고고학·문화기관에서 내놓은 328세트, 510점 유물을 한자리에 모아, 변방 부족에서 중국 통일에 이르기까지 진나라의 장대한 여정을 조망하고, 예법을 중시하고 개방과 포용을 중시하며 동방 확장을 멈추지 않은 진나라 정신의 핵심을 조명한다. 이번 전시는 상해 박물관이 기획하는 주요 문물고고 전시 시리즈 "왜 중국인가[何以中国]"의 다섯 번째 전시다.상해시 문물국, 감숙성 문물국, 섬서성 문물국이 공동으로 기획하고, 상해박물관, 감숙성 문물고고연구소, 섬서성고고연구원이 공동 주최한다. 진나라는 중국 역사상 최초로 통일 국가를.. 2026. 6. 10.
연구자의 길, 기자의 길, 센 놈들만 골라 조졌다 전업적 연구자로 통칭하는 사람들한테서도 언론 혹은 기자는 불가근불가원이라 이 복잡미묘한 길항 관계는 저런 업계서는 누구나 경험한다.나는 현역 기자 시절 그 최전선에 서며 매일매일 실은 그들과 협력하며 또 사투했다.맡은 분야가 하필 학술이라 학술이란 무엇인가?글자 그대로는 학계 동향이라 할 수 있으니 그 동향에는 모름지기 그네가 논문 형태로 쏟아내는 연구성과가 절대하는 비중을 차지한다.물론 항하사 모래 같은 저 광대무변하는 모든 학술을 어찌 혼자 감당한단 말인가?내가 말하는 저 학술은 보통 인문사회과학이라 보면 대과과 없고 자연과학 분야로 넘어가면 그쪽 담당 혹은 전문기자 몫이다.그렇다면 복잡미묘한 관계는 왜 발생하는가?첫째 관점은 차이가 있어 중요하다 보는 지점이 다를 수 있다.둘째 이 취사 선택 과정에.. 2026. 6. 10.
마차 타고 독일 헤센 주를 튀어나온 2,400년 전 켈트 엘리트 유럽 고고학, 특히 켈트 고고학을 보면 잊을 만하면 Princely Grave가 발견됐다는 소식이 언론지상을 장식하는데, 솔까 그 무덤 주인공이 진짜로 왕자인지 뭔지 알 수가 없다.켈트가 무슨 통일된 정치 중심체를 이룬 것도 아닌데도 저런 표현을 자주 써서 독자를 현혹한다. 그 맥락은 아티클 본문에 있다. 암튼 이번에는 독일에서 그런 켈트 왕자 혹은 왕족 무덤이 발굴됐단다. Hessenschau 보도에 따르면, 독일 헤센Hesse 주 고고학자들이 타우누스 산맥Taunus Mountains에서 켈트족 "왕족 무덤princely grave"을 발굴했다고.바트 캄베르크Bad Camberg 인근에서 발견된 이 무덤은 이 지역에서 발견된 가장 중요한 철기 시대 유적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이 무덤은 켈트족 매장지.. 2026. 6. 10.
그 자체가 한국문화재사, 지건길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회고록 출간 용안 뵌지 오래라 요새도 김흥국처럼 콧수염 질구고 댕기시는지 모르겠다.영감님 각중에 카톡 주시어 대뜸 주소를 여쭙는데 책 나왔구나 싶었거니와 보통 이런 때는 어느 출판사냐 여쭙고 구입해서 읽어보겠다 하겠지만 노년에 이른 영감님 틀림없이 붓글씨로 적어 보내시고 싶어할 듯해서 주소를 적어드렸더니 방금 남영동으로 입고한다.보니 회고록이라 1943년생, 올해로 만 여든셋이시라 더는 늦추면 안 될 듯 하셔서 힘을 내신 모양이다.저 연배 이젠 워낙 고령이시라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하고 또 쓰러지기도 하는 소식이 들려오니 안타깝기만 하거니와그래도 강녕하신듯 이런 회고록까지 내어주시니 지금보단 시간이 흐를수록 이런 회고록은 빛을 발할 수 있으리라 본다.목차와 관심 있을 만한 몇 대목 훑어보니 크게 두 부로 나누어 전반부.. 2026. 6. 9.
진흥왕의 순수巡狩를 벤또 투어로 생각하는 놈들이 봐야 할 정조의 화성 행차 뭐 그렇다고 하면 우리가 언제 그랬냐 바락바락 아니라 우길 놈 천지리라아니긴 무슨 개뿔?진흥왕 순수 관련 논문들 읽어봐! 단 한 놈도 그 규모를 논한 놈 있는지?한 놈도 없어.그러고선 매양 하는 말이 이때 왕을 수행한 인물, 곧 수가 명단이 어떻고저떻고 하는 헛소리밖에 없다.그 수가 명단, 20명밖에 되지 않아!그래 순수비는 아니지만 이른바 창녕 척경비 봐바. 거기 등장하는 왕을 따라간 관료도 50명도 되지 않을 걸?그래서 진짜로 20명, 혹은 50명 안팎으로 쫄래쫄래 벤또 싸들고 소풍 갔냐고?벤또 여행이랑 순수巡狩를 왜 차별해야 하는가?문제의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문제의식이 달라지면 논문 수준이 달라진다. 벤또 명단 두고서 거칠부가 어떻네 김유신 할아버지가 어떻네 이딴 소리는 개돼지나 하는 말이다. .. 2026. 6. 9.
[삼국국경] 동해안 주인은 고구려가 아닌 말갈로 반환해야! 흔히 475년 고구려-백제 전쟁 직후 장수왕 시대 삼국강역도를 저리 묘사하거니와 그래 딴 문제 다 차치하고 동해안 문제를 집중하기로 한다. 고구려는 동해안을 진출했는가?다시 말하지만 고구려는 동해안으로 나가지 않았다. 한 적이 없다. 이걸 한 놈도 의심조차 않는다. 모르겠다 이 문제 역시 내가 하도 지껄여댔으니 근자엔 누군가 다루었는지도.저 동해 문제가 논급되는 때가 내 기억에 딱 한 번인가 동천왕 시대인가에 있다. 관구검이 침략하자 수도를 버리고 열라 도망한 동천왕이 동해까지인가로 갔다는 기록이 있을 것이다. 기타 고구려와 동해안 접선을 증언하는 다른 간접 기록이 있으니 태조왕에 의한 책성 순수가 그것이다. 이 책성이 정확히 어디쯤인지 논란이 많다고 알며, 그런 가운데서도 아마도 두만강 하류 어느 쪽을.. 2026. 6. 9.
[삼국강역] 남한강에서 쫓겨난 고구려, 보복을 다짐한 온달 아주 간단히 5-6세기 중반 무렵 삼국간 국경선과 충돌 지점이다.물론 저 기간 백제와 신라 사이에 다툼이 없지는 않았으나 전반으로 보아 갈등 국면은 매우 적다.빨간 x가 백제 고구려가 쌈박질하는 구간이고 파란x가 신라 고구려가 충돌하는 전투라인이다.신라 고구려는 남북 국경선에선 붙은 적이 없다. 태백산맥이 있기 때문이다.집중적으로 충돌하는 구간 중 하나가 지금의 강릉 삼척 일대 신라 영토다.나는 계속 고구려는 동해안을 진출한 적이 없다 하는데 이건 명백하다.저 동해안 북쪽을 침략할 때 고구려는 언제나 말갈을 의지한다.왜 말갈인가?동해안 본래 주인이고 고구려 시대에도 고구려에 신속하기는 했으나 완전 복속도 아니며무엇보다 저 동해안 땅이 본래는 말갈 영역이었기 때문이다.말갈은 신라에 이를 갈았다.야금야금 지.. 2026. 6. 9.
[서평] 물고기 인문학과 조-명-치 해방 이후 이미 80년이 넘은지라 각 분야에서 꾸준히 자기 성과를 낸 분이 많다. 필자는 60 이후 작업으로 지금까지 해오던 조선시대 사람들의 건강과 질병상태를문헌으로 복원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세상 만사를 다 섭렵해야 하는데 당연히 필자의 수명도 유한하니이미 좋은 성과를 낸 분야가 있다면 그에 얹혀 가려한다. 필자는 조선시대 식생활 정보를 안정성동위원소 해석에 적극 활용하려 하는데, 그 중에는 일기에서 보듯이 우리 조상님들 단백질공급원으로 가장 중요했던 어류, 그 중에서도 바다 생선이 있다. 필자도 생선을 좋아하긴 하는데 고등어 청어 갈치나 구별하지 그 외 꼼꼼히 구별할 수준은 당연히 못된다. 생선 식별에 그런 수준까지 올라갔으면 당연히 필자가 지금까지 해오던 연구가 부실해졌을 터-. 민.. 2026. 6. 9.
머리 없는 7,000년 전 슬로베니아 농경 사회 해골들이 말해주는 것들 킬 대학교Kiel University 제공 머리가 없는 수십 구 인골이 마치 무작위로 겹쳐 있거나 나란히 놓인 모습은 언뜻 섬뜩하다.2022년부터 연구진들은 슬로바키아 브라블레Vráble 인근에 위치한 7,000년 된 정착지에서 이러한 유골들을 발굴한다.머리 없는 해골들은 고대 사회의 위기를 보여주는 끔찍한 증거로서 신석기 시대 대학살의 잔해일까?초기 뼈 분석과 지금까지의 발굴 결과들을 종합해 보면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반면, 우리에게는 특이해 보이는 매장 방식이 지역적, 더 나아가 광범위한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사회적 관행 일부였다는 증거가 있으며, 갈등이나 위기의 흔적은 극히 제한적입니다."킬 대학교(CAU) 마틴 푸르홀트Martin Furholt 교수는 말한다.그는 이번 연구 주저자이며, 해당 .. 2026. 6. 9.
80만년 전 초기 인류은 목적에 맞는 석기 제작 위해 현무암 의도적으로 선택 by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Hebrew University of Jerusalem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약 80만 년 전 고대 인류는 단순히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돌을 사용하는 대신, 도구 제작 각 단계에 따라 특정 현무암basalt 채집지를 의도적으로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연구진은 노출된 현무암과 현재는 매몰된 현무암 용암류에서 발견된 석기 도구의 지구화학적 "지문fingerprints"을 추적해 이 인류가 환경에 대한 상세한 지식, 뛰어난 계획 능력, 그리고 세대를 거쳐 유지되고 반복되는 장기적인 기술 전통을 지녔음을 입증했다.Scientific Reports에 발표된 새로운 연구는 게셰르 베놋 야아코브Gesher Benot Ya'aqov (GBY) 아슐리안 유적Acheulian site에서 발견된.. 2026. 6. 9.
빈돌란다 요새가 선물한 로마시대 샤워용 나막신 로마인들은 뜨거운 바닥으로부터 발을 보호하고 미끄러운 표면을 더 잘 이동하기 위해 목욕탕에서 나막신 형태의 신발clog-style footwear을 신은 최초의 사람들이었다.고고학자들은 하드리아누스 장벽Hadrian's Wall 인근 고대 로마 요새인 빈돌란다Vindolanda에서 수천 점 보존 상태가 양호한 신발을 발견했다.그중에서도 이 나막신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샤워용 신발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나무로 된 플랫폼 밑창wooden platform sole과 가죽 갑피leather upper로 구성된 "목욕용 나막신bath clog"은 오늘날 사람들이 탈의실 샤워실이나 네일샵에서 무좀과 같은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신는 슬립온 신발slip-on shoe과 유사한 형태다.하지만 로마인들은 라틴어로 "스쿨.. 2026. 6. 9.
고대 치석 분석을 통해 밝혀낸 일본 구강 미생물 군집의 지역적·역사적 변화 by 도호 대학교Toho University 일본 연구진이 인체 유골 치석dental calculus에 보존된 DNA를 분석해 일본인의 구강 미생물oral microbiomes 군집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구명했다.주로 에도 시대 사람들 치석과 현대인 치석에서 추출한 치석의 미생물 구성을 비교 분석한 결과 시대, 지역, 그리고 여러 구강 세균 종의 계통 발생과 관련된 차이점을 발견했다.이번 연구 결과는 치석이 인류 역사와 인간과 미생물 간 관계를 연구하는 새로운 길을 열어줄 수 있음을 시사한다.본 연구는 Scientific Reports에 게재되었다.도호대학교, 도쿄대학교, 규슈대학교 및 공동 연구기관 연구진은 에도 시대(1603~1868) 일본인의 구강 미생물군을 인골에서 추출한 치석에 보.. 2026. 6. 9.
만만치 않은 조선시대 족보와 호적 - CODA 앞에서 조선시대 족보와 호적이 만만치 않다는 이야기를 쓴 바,이 시대 족보와 호적이 개판 오분전이라는 인식을 갖게 된 건워낙에 19세기 삼정 문란에 엉망이라는 이야기를 교과서에서 반복적 주입을 한 데다, 족보도 날조에 사기로 가득찬 믿을 수 없는 문건이라는 선입견 때문인데, 사실 이 시대 호적과 족보는 거짓이 많은 건 사실인데, 그렇다고 해서 그 거짓이 방만함과 게으름의 산물인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족보와 호적은 정보를 수단收單하면, 그냥 싣거나 임의로 맘대로 고치거나 빼거나 한 것이 아니고, 반드시 이전 식년式年의 자료나 족보라면 이전 족보와 대조를 해서 그때와 비교하여 달라진 점을 확실 편찬자가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다시 말해 족보와 호적에 엉터리가 들어가더라도 방만함과 안일함.. 2026. 6. 8.
[삼국강역] 분열한 기성학단의 서기 500년 무렵 지도 이것이 일반은 물론이요, 학계에 통용하는 삼국강역도다. 475년 고구려-백제 전쟁 이후 550년대 신라에 의한 한강유역 점령까지 대강 저랬다고 한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적지 않아서 요새는 서서히 백제가 한강유역을 여전히 장악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런 반론에 의한 서기 500년 무렵 삼국 강역도는 얼추 아래와 같이 된다. 저 부분, 곧 한강 하류 유역이 관건이 된다. 암튼 저런 강역이 550년대 진흥왕 시대를 맞은 신라 팽창 정책에 따라 아래와 같이 변했다고 한다. 간평한다. 저 세 지도 중 지도1 기성 학단이 주장하는 서기 500년 무렵 강역도는 어림반푼어치도 없다. 그렇다 해서 지도2 백제의 한강 유역 상실설을 부정하는 기성 강단의 주장에 따른 서기 500년 무렵 삼국 강역도. 특히 백제.. 2026. 6. 8.
스페인 해안서 무더기로 발견된 투구가 로마 유물? 헛소리였다 알리칸테Alicante 대학교 제공30년 넘게 이 투구는 로마 시대 유물로 간주됐다.하지만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이 투구들은 중세 후기 지중해의 상업 및 군사 네트워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증거 자료임이 밝혀졌다.알리칸테 대학교(UA)가 주도한 연구를 통해 스페인 해역에서 발견된 가장 주목할 만한 무기 유물 중 하나인 43개의 투구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졌다.이 투구들은 1990년 베니칼로Benicarló 해안 피에드라스 데 라 바르바다Piedras de la Barbada 수중 고고학 유적에서 발굴되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 출판부에서 발행하는 Antiquity에 발표된 이 연구는 알리칸테 대학교와 살레르노 대학교University of Salerno 공동 지도를 받는 박사 과정 학생 마누엘 프랄리치아르.. 2026.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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