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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행孤兒行 : 이 땅의 형수들에게 바치는 노래 다음은 漢代 상화가사相和歌辭 중에 ‘고아행’(孤兒行)이라는 시이니, 앞서 말했듯이 예서 ‘行’은 노래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孤兒生, 孤子遇生, 命獨當苦! 고아가 태어났네, 우연히 고아 신세, 지독한 고난 당할 운명 父母在時, 乘堅車, 駕駟馬. 부모 계실 땐 튼튼한 수레 올라 말 네 마리 몰았지父母已去, 兄嫂令我行賈. 부모 돌아가시 형과 형수 날더러 장똘뱅이 하라네 南到九江, 東到齊與魯. 남쪽으로 구강까지 가고 동쪽으로 제노 지방 다녔지臘月來歸, 不敢自言苦. 12월에 돌아왔지만 힘들다 할 수 없네 頭多蟣虱, 面目多塵. 머리엔 서캐와 이가 가득, 얼굴에는 때가 덕지덕지大兄言辦飯, 大嫂言視馬. 형님은 밥 지으라 하고 형수는 말을 돌보라 하네上高堂, 行取殿下堂, 孤兒淚下如雨. 웃방 아랫방 오르내리니 고아는 눈.. 2018. 2. 23.
상야(上邪)..겨울에 우박치고 여름에 눈내리면 ‘상야’(上邪)라는 제목을 단 漢代 악부민가樂府民歌가 있다. 話者를 외사랑에 빠진 여자로 설정해 그로 하여금 사랑에 빠진 남성 상대를 향한 애끓는 연모의 정을 토로케 한다. 한데 이 시가 구사하는 수사법이 어딘가 우리한테는 익숙하다. 고려가요의 그것이다. 上邪!① 하늘이시어 我欲與君相知②, 나 그대와 사랑하고 싶습니다 長命③無絕衰. 오래도록 사랑 식지 않겠습니다. 山無陵④, 산이 닳아 없어지면江水爲竭, 강물이 다 마른다면 冬雷震震⑤, 겨울에 우루루쾅쾅 벼락이 친다면夏雨雪⑥ , 여름에 눈이 내린다면 天地合⑦ , 하늘과 땅이 붙어버리면 乃敢⑧與君絕![2] 그제야 그대 단념하지요 ① 上邪(yé)!:天啊!. 上, 指天. 邪, 語氣助詞, 表示感歎. ② 相知:相愛. ③ 命:古與“令”字通, 使. 衰(shuai):衰減.. 2018. 2. 23.
염가하상행豔歌何嘗行..carpe diem again..늙어지면 못노나니 염가하상행豔歌何嘗行이라는 제목이 붙은 다음 漢代 악부시樂府詩는 이런 성격의 민가가 대개 그렇듯이 이 역시 작자를 알 수 없다. 이른바 민중가요라 해서 어느 한 사람에 의한 산물이 아니라 시간이 누적한 이른바 민중가요일 수도 있겠고,그것이 아니라 특정 작가가 어느 한 때 격발(擊發)해 쓴 작품이라 해도 그 작자가 내 작품이라고 내세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은 작자가 無名氏 혹은 失名氏라는 이름으로 치부되곤 한다. 이 시대 악부시에서는 사람이 아닌 여타 생물이나 무생물을 사람으로 간주해 작자 감정을 이입하는 일이 흔하거니와,그리고 이 시대 또 다른 특징으로 대화체가 많으니, 이 시 역시 그런 특성을 유감없이 보인다. 한데 제목에서 이 시 성격을 ‘염가’(豔歌), 다시 말해 연애시라 규정한 데서.. 2018. 2. 23.
주인한테 버림 받은 개, 설도薛濤 견리주犬離主 中唐 여류시인 설도薛濤라는 이에게는 이른바 ‘십리시十離詩’라는 연작시편이 있거니와, 총애를 믿고 분수 모르고 날뛰다가 종국에는 주인한테 버림받은 신세를 한탄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아래는 그 중 첫 번째 ‘견리주犬離主’라는 제목의 시이니, 우선 제목을 그대로 풀면 개가 주인한테 버림받았다는 뜻이다. 그 전문은 아래와 같다. (류창교 역해, 《설도시집》,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3, 26~27쪽 참조) 떵떵거리는 집에서 길들여진지 4~5년 털은 향기롭고 발은 깨끗해 주인이 아꼈네 까닭없이 주인님 친한 손님 물어버렸다가 붉은 카펫에선 다시는 잘 수 없답니다 馴擾朱門四五年, 毛香足淨主人憐. 無端咬著親情客, 不得紅絲毯上眠. 한데 이 시가 판본에 따라 약간 다르기도 하거니와, 다음과 같이 된 곳도 있다. 떵.. 2018. 2. 23.
이상은李商隐 비내리는 밤에 북쪽으로 부치는 편지[夜雨寄北·야우기북] 비내리는 밤에 북쪽으로 부치는 편지[夜雨寄北] 李商隐 君問歸期未有期 당신 언제 돌아오냐 물었지만 기약 없다오 巴山夜雨漲秋池 파산엔 밤되어 비 내려 가을 연못 물 불었네 何當共剪西窗燭 언제쯤 서쪽 창에서 함께 촛불 심지 자르며卻話巴山夜雨時 파산 밤비 내리던 때를 다시 얘기하려는지 巴山:在今四川省南江县以北. 秋池:秋天的池塘. 何当:哪一天? 共剪西窗烛:在西窗下共剪烛蕊. 却话:从头谈起. 2018. 2. 23.
잠삼岑參 백설가...白雪歌送武判官歸京(백설가송무판관귀경) 백설가로 서울로 돌아가는 무판관을 전송하며[白雪歌送武判官歸京(백설가송무판관귀경)] [唐] 잠삼(岑參. 715~770) 北風捲地白草折 북쪽 바람 몰아치니 백초가 꺾이고 胡天八月卽飛雪 오랑캐 하늘엔 팔월에도 눈나리네忽如一夜春風來 문득 하룻밤새 봄바람 불어와 千樹萬樹梨花開 천만 그루 배나무 꽃을 피운듯 散入珠簾濕羅幕 어지러이 주렴 들어 장막 적시니 狐裘不煖錦衾薄 갖옷도 따뜻하지 않고 비단이불도 얇네將軍角弓不得控 장군은 각궁 얼어 당길 수도 없고 都護鐵衣冷難着 도호는 쇠갑옷 차가워 입지도 못하네瀚海闌干百丈氷 사막엔 이리저리 백길 얼음 펼쳐지고愁雲慘淡萬里凝 수심어린 구름 구슬피 만리에 서렸네中軍置酒飮歸客 군막에 술상 차려 가는 이 대접하니 胡琴琵琶與羌笛 호금 비파 강적 소리 울려 퍼지네紛紛.. 2018. 2. 23.
저 달 보며 당신 생각해요 저 달 보며 당신 그리워하네[望月懷遠·망월회원] [唐] 장구령(張九齡·678~740) 海上生明月 저 바다로 떠오른 밝은 달 天涯共此時 하늘 끝에서도 지금은 같겠죠?情人怨遙夜 그리워하는 이 긴 밤 원망스러워 竟夕起相思 밤새도록 일어나 당신 생각합니다滅燭憐光滿 초를 껐더니 휘영청 달빛 좋고 披衣覺露滋 걸친 옷은 이슬 내려 젖었네요 不堪盈手贈 달빛 손에 채워 보내진 못하니還寢夢佳期 다시 잠들며 당신 만날 꿈 꿉니다 Missing you while looking at the moon [Tang] Zhang Qiaoqing (678 ~ 740) The bright moon rising over the seaIs it the same at the end of the sky? Longing for this long .. 2018. 2. 23.
두복지頭腹智 고신라 금석문에서 확인한 신라 관료 이름이다. 영일 냉수리 신라비(迎日冷水里新羅碑․지증왕4년․503년 추정) : 斯羅의 喙 ○夫智王과 내지왕(乃智王) 두 왕이 敎示를 내려 진이마촌珍而麻村의 절거리節居利로써 증거를 삼아 그 로 하여금 재물을 얻게 하라고 하셨다. 癸未年 9월 25일, 사탁沙喙 지도로 갈문왕至都盧葛文王·○德智 阿干支·자숙지 거벌간지子宿智居伐干支와 喙의 이부지 일간지尒夫智壹干支·지심지 거벌간지只心智 居伐干支와 本彼의 두복지 간지頭腹智干支와 斯彼의 暮○智 干支, 이들 일곱 왕 등이 함께 의논하여(共論) 교시하였으니, 前世 두 王의 교시로써 증거를 삼아 財物을 모두 절거리로 하여금 얻게 하라고 하셨다. 또 敎示하셨으니 節居利가 만약 먼저 죽으면 그 집 아이 사노斯奴로 하여금 그 財物을 얻게 하라고.. 2018. 2. 23.
지심지只心智 고신라 금석문에서 확인한 신라 관료 이름이다. 영일 냉수리 신라비(迎日冷水里新羅碑․지증왕4년․503년 추정) : 斯羅의 喙 ○夫智王과 내지왕(乃智王) 두 왕이 敎示를 내려 진이마촌珍而麻村의 절거리節居利로써 증거를 삼아 그 로 하여금 재물을 얻게 하라고 하셨다. 癸未年 9월 25일, 사탁沙喙 지도로 갈문왕至都盧葛文王·○德智 阿干支·자숙지 거벌간지子宿智居伐干支와 喙의 이부지 일간지尒夫智壹干支·지심지 거벌간지只心智 居伐干支와 本彼의 두복지 간지頭腹智干支와 斯彼의 暮○智 干支, 이들 일곱 왕 등이 함께 의논하여(共論) 교시하였으니, 前世 두 王의 교시로써 증거를 삼아 財物을 모두 절거리로 하여금 얻게 하라고 하셨다. 또 敎示하셨으니 節居利가 만약 먼저 죽으면 그 집 아이 사노斯奴로 하여금 그 財物을 얻게 하라고.. 2018. 2. 23.
이부지尒夫智 고신라 금석문에서 확인한 신라 관료 이름이다. 영일 냉수리 신라비(迎日冷水里新羅碑․지증왕4년․503년 추정) : 斯羅의 喙 ○夫智王과 내지왕(乃智王) 두 왕이 敎示를 내려 진이마촌珍而麻村의 절거리節居利로써 증거를 삼아 그 로 하여금 재물을 얻게 하라고 하셨다. 癸未年 9월 25일, 사탁沙喙 지도로 갈문왕至都盧葛文王·○德智 阿干支·자숙지 거벌간지子宿智居伐干支와 喙의 이부지 일간지尒夫智壹干支·지심지 거벌간지只心智 居伐干支와 本彼의 두복지 간지頭腹智干支와 斯彼의 暮○智 干支, 이들 일곱 왕 등이 함께 의논하여(共論) 교시하였으니, 前世 두 王의 교시로써 증거를 삼아 財物을 모두 절거리로 하여금 얻게 하라고 하셨다. 또 敎示하셨으니 節居利가 만약 먼저 죽으면 그 집 아이 사노斯奴로 하여금 그 財物을 얻게 하라고.. 2018. 2. 23.
자숙지子宿智 고신라 금석문에서 확인한 신라 관료 이름이다. 영일 냉수리 신라비(迎日冷水里新羅碑․지증왕4년․503년 추정) : 斯羅의 喙 ○夫智王과 내지왕(乃智王) 두 왕이 敎示를 내려 진이마촌珍而麻村의 절거리節居利로써 증거를 삼아 그 로 하여금 재물을 얻게 하라고 하셨다. 癸未年 9월 25일, 사탁沙喙 지도로 갈문왕至都盧葛文王·○德智 阿干支·자숙지 거벌간지子宿智居伐干支와 喙의 이부지 일간지尒夫智壹干支·지심지 거벌간지只心智 居伐干支와 本彼의 두복지 간지頭腹智干支와 斯彼의 暮○智 干支, 이들 일곱 왕 등이 함께 의논하여(共論) 교시하였으니, 前世 두 王의 교시로써 증거를 삼아 財物을 모두 절거리로 하여금 얻게 하라고 하셨다. 또 敎示하셨으니 節居利가 만약 먼저 죽으면 그 집 아이 사노斯奴로 하여금 그 財物을 얻게 하라고.. 2018. 2. 23.
지도로至都盧 고신라 금석문에서 확인한 갈문왕이다. 삼국사기 지증마립간 즉위년조에서 왕을 ‘이름이 지대로(智大路-지철로智度路라고도 하고 지철로智哲老라고도 한다)'라 하고, 삼국유사 왕력편 지증마립간조에서는 그를 일러 ‘지철로왕(智哲老王)'이라 한다고 해서, 금석문에 보이는 지도로가 곧 지증왕이라 보는 견해가 압도적이다. 영일 냉수리 신라비(迎日冷水里新羅碑․지증왕4년․503년 추정) : 斯羅의 喙 ○夫智王과 내지왕(乃智王) 두 왕이 敎示를 내려 진이마촌珍而麻村의 절거리節居利로써 증거를 삼아 그 로 하여금 재물을 얻게 하라고 하셨다. 癸未年 9월 25일, 사탁沙喙 지도로 갈문왕至都盧葛文王·○德智 阿干支·자숙지 거벌간지子宿智居伐干支와 喙의 이부지 일간지尒夫智壹干支·지심지 거벌간지只心智 居伐干支와 本彼의 두복지 간지頭腹智干支.. 2018. 2. 23.
절거리節居利 영일 냉수리 신라비(迎日冷水里新羅碑․지증왕4년․503년 추정) : 斯羅의 喙 ○夫智王과 내지왕(乃智王) 두 왕이 敎示를 내려 진이마촌珍而麻村의 절거리節居利로써 증거를 삼아 그 로 하여금 재물을 얻게 하라고 하셨다. 癸未年 9월 25일, 사탁沙喙 지도로 갈문왕至都盧葛文王·○德智 阿干支·자숙지 거벌간지子宿智居伐干支와 喙의 이부지 일간지尒夫智壹干支·지심지 거벌간지只心智 居伐干支와 本彼의 두복지 간지頭腹智干支와 斯彼의 暮○智 干支, 이들 일곱 왕 등이 함께 의논하여(共論) 교시하였으니, 前世 두 王의 교시로써 증거를 삼아 財物을 모두 절거리로 하여금 얻게 하라고 하셨다. 또 敎示하셨으니 節居利가 만약 먼저 죽으면 그 집 아이 사노斯奴로 하여금 그 財物을 얻게 하라고 하셨다. 다시 교시하셨으니 말추末鄒와 ○申支 .. 2018. 2. 23.
내지왕(乃智王) 고신라 금석문에서 확인한 신라 왕이다. 삼국유사 왕력편 눌지마립간조에 이르기를 왕을 ‘내지(內只)라고도 한다(一作內只’라 했으니, 이를 근거로 음이 비슷하다 해서 눌지왕이라고 본다. 영일 냉수리 신라비(迎日冷水里新羅碑․지증왕4년․503년 추정) : 斯羅의 喙 ○夫智王과 내지왕(乃智王) 두 왕이 敎示를 내려 진이마촌珍而麻村의 절거리節居利로써 증거를 삼아 그 로 하여금 재물을 얻게 하라고 하셨다. 癸未年 9월 25일, 사탁沙喙 지도로 갈문왕至都盧葛文王·○德智 阿干支·자숙지 거벌간지子宿智居伐干支와 喙의 이부지 일간지尒夫智壹干支·지심지 거벌간지只心智 居伐干支와 本彼의 두복지 간지頭腹智干支와 斯彼의 暮○智 干支, 이들 일곱 왕 등이 함께 의논하여(共論) 교시하였으니, 前世 두 王의 교시로써 증거를 삼아 財物을 모.. 2018. 2. 23.
유신(庾信) ☞ 김유신(金庾信) 2018. 2. 23.
유신공(庾信公) 김유신(金庾信)을 높여 이르는 말. ☞ 김유신(金庾信) 2018. 2. 23.
흘우(屹于) 삼국사기 권 제23(백제본기 제1) 다루왕본기 : 3년(서기 30) 겨울 10월에 동부의 흘우(屹于)가 말갈과 마수산(馬首山) 서쪽에서 싸워 이겼는데 죽이고 사로잡은 것이 매우 많았다. 왕이 기뻐하여 흘우에게 말 10필과 조(租) 500섬을 상으로 주었다. 7년(서기 34) 봄 2월에 우보 해루(解婁)가 죽으니[卒] 나이가 90세였다. 동부의 흘우(屹于)를 우보로 삼았다. 10년(서기 37) 겨울 10월에 우보 흘우를 좌보(左輔)로 삼고, 북부의 진회(眞會)를 우보로 삼았다. 21년(서기 48) 3월에 좌보 흘우(屹于)가 죽으니[卒] 왕이 슬피 곡하였다. 2018. 2. 23.
구태(仇台) 삼국사기 권 제23(백제본기 제1) 온조왕본기 즉위년 : 북사(北史)와 수서(隋書)에서는 모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동명(東明)의 후손에 구태(仇台)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어질고 신의가 돈독하였다. [그는] 처음에 대방의 옛 땅[帶方故地]에 나라를 세웠다. 한(漢)나라 요동태수(遼東太守) 공손도(公孫度)가 자기 딸을 아내로 삼게 하였으며, 마침내 동이(東夷)의 강국(强國)이 되었다.』 [그러나] 어느 것이 옳은지 알지 못하겠다.> 2018. 2. 23.
우태(優台) 삼국사기 권 제23(백제본기 제1) 온조왕본기 즉위년 :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시조 비류왕(沸流王)은 그 아버지는 우태(優台)로 북부여 왕(北夫餘王) 해부루(解夫婁)의 서손(庶孫)이었고, 어머니는 소서노(召西奴)로 졸본(卒本) 사람 연타발(延陀勃)의 딸이었다. [소서노는] 처음에 우태에게 시집가서 아들 둘을 낳았는데 맏은 비류라 하였고 둘째는 온조라 하였다. 우태가 죽자 [소서노는] 졸본에서 과부로 지냈다. 뒤에 주몽이 부여(扶餘)에서 용납되지 못하자 전한(前漢) 건소(建昭) 2년(서기전 37) 봄 2월에 남쪽으로 도망하여 졸본에 이르러 도읍을 세우고 국호를 고구려(高句麗)라 하고, 소서노를 맞아들여 왕비로 삼았다. 주몽은 그녀가 나라를 창업하는 데 잘 도와주었기 때문에 그녀를 총애하고 대접하는 것이.. 2018. 2. 23.
연타발(延陀勃) 삼국사기 권 제23(백제본기 제1) 온조왕본기 즉위년 :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시조 비류왕(沸流王)은 그 아버지는 우태(優台)로 북부여 왕(北夫餘王) 해부루(解夫婁)의 서손(庶孫)이었고, 어머니는 소서노(召西奴)로 졸본(卒本) 사람 연타발(延陀勃)의 딸이었다. [소서노는] 처음에 우태에게 시집가서 아들 둘을 낳았는데 맏은 비류라 하였고 둘째는 온조라 하였다. 우태가 죽자 [소서노는] 졸본에서 과부로 지냈다. 뒤에 주몽이 부여(扶餘)에서 용납되지 못하자 전한(前漢) 건소(建昭) 2년(서기전 37) 봄 2월에 남쪽으로 도망하여 졸본에 이르러 도읍을 세우고 국호를 고구려(高句麗)라 하고, 소서노를 맞아들여 왕비로 삼았다. 주몽은 그녀가 나라를 창업하는 데 잘 도와주었기 때문에 그녀를 총애하고 대접하는 것이.. 2018. 2. 23.
마려(馬黎) 삼국사기 권 제23(백제본기 제1) 온조왕본기 즉위년 : 얼마 지나지 않아 부여 왕이 죽자 주몽이 왕위를 이었다. 두 아들을 낳았는데 맏아들은 비류(沸流)라 하였고, 둘째 아들은 온조(溫祚)라 하였다. 주몽이 북부여에 있을 때 낳은 아들이 와서 태자가 되자, 비류와 온조는 태자에게 용납되지 못할까 두려워 마침내 오간(烏干)·마려(馬黎) 등 열 명의 신하와 더불어 남쪽으로 갔는데 백성들이 따르는 자가 많았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 2 남부여(南扶餘) 전백제(前百濟) 북부여(北扶餘) : 본기(本紀)에는 이렇게 말했다. '백제의 시조는 온조(溫祚)요, 그의 아버지는 추모왕(雛牟王)인데 혹은 주몽(朱蒙)이라고도 하니, 그는 북부여(北扶餘)에서 난리를 피하여 졸본부여(卒本扶餘)에 왔었다. 그곳 왕에게 아들이 없고.. 2018.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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