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2850 서자와 노비는 조선후기사의 뜨거운 감자 필자가 누차 하는 이야기지만우리나라 조선후기인구전체에서 노비와 서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생각보다 어마어마하게 높을 것이라 본다. 필자가 보기엔 거의 90프로 가까운 인구가 노비와 서자에 포함될 것이라 보는데 이는 18세기까지도 각종 호적의 기록, 그리고 서자의 숫자에 대한 당대 인물들의 증언에서 여실히 알 수 있는 바다. 앞에도 썼지만 우리 집안은 명문 사족, 우리는 양반집안 출신이라고 생각 하는 분들도 태반은 서출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서출? 대단한 것이 아니다. 조선시대 내내 한번만 서자가 중간에 조상중에 끼면그 집안은 서출이 되는것이므로. 단순히 양반으로서 퇴락하여 몰락한것이 아니라, 몰락할수 밖에 없는 조건, 다시말해 조상중에 한번만 서자가 나오면 그 이후 줄줄이 금고되어야 하는 말도 안되는 .. 2026. 1. 31. 산수계산이 안되는 조선시대 위정자들 앞에서 우리나라 서얼(서자)의 문제를 좀 썼는데여기에 대해 좀 더 써보겠다. 우리나라 서얼문제의 고질적인 부분은위에 조상중에 한명만 서얼이 있어도 그 이후로는 전부 금고로 묶여 버린다는데 있다. 따라서 어떤 집안 자손들이 적자와 서자가 1대 1의 비율로 나온다고 치면, 적자가 될 확률은 1/2이지만 10대만 내려가면 적자로 계속 이어져 금고의 위험이 없는이는 1024명 중에 한명이 된다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서얼이 얼마나 만았는가 하는 건 영정조시대에 벌써 전체 인구의 절반이 서얼이라는 소리가 심심찮게 나온것을 보면 알수 있다. 18세기라면 아직 노비가 전체 인구의 절반 가까이 있던 시대인데 거기에 절반이 또 서얼이라면 도대체 제대로 된 양반은 몇명이라는 말인가 싶지만, 아무튼 단순계산으로도 서얼 금고.. 2026. 1. 31. 서자에게 살길을 틔워주는 가족 한국사에서 적자로만 내려오는 가계에 태어나기란 로또 맞는것과 비슷하다. 여말선초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500여년을 30년에 1대만 쳐도 16-17대는 될텐데 이 16-17대를 모두 적자로만 내려온다? 우리나라는 중간에 서자가 한명이라도 끼면 바로 금고가 되었기 때문에 서자 적자의 비율을 1대 1로만 잡아도 17대를 모두 적자의 후손이 될 가능성은2의 17승 분의 일이니 도대체 얼마나 낮은 확률이겠는가? 조선왕조의 종친이 아닌담에야 서자는 예외없이 금고되었으니 조선은 노비 못지 않게 서자의 한으로 무너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조선시대 족보를 보면, 서자가 분명한데도 적자처럼 기재해 놓은 경우가 있다. 아마도 집안에서 보낸 병단에 서자라는 말을 빼고 보내지 않았을까 싶은데, 족보 수단을 하는데.. 2026. 1. 31. (되려) 민주적인 부계 족보 흔히 우리나라 초기 족보는 처가와 딸까지 다 상세히 적지만 부계 족보로 전환하면서 이런 풍조가 사라지고 가부장적 권위가 관철된 것으로 설명한다. 그런데 유심히 보면이건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과 거리가 멀다. 초기 족보는 부계를 망라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주변의 처가, 외가, 딸에 사위까지 족보에 올리므로 족보를 만든 집안에 수준이 맞는 이들만 족보에 올라가게 된다. 쉽게 말해 신분이 떨어지는 집안은 이런 족보에는 거의 이름을 올리지 못한단 말이다. 따라서 초기 족보라 할 문화유씨 가정보, 안동권씨 성화보 등에는 서자의 이름이 없다. 레벨이 안되므로 올리지를 않은 것이다. 반면에 임란 이후 부계 족보로 전환하면서는 어떤일이 벌어지느냐. 같은 부계 뿌리에서 나온 후손이라고 해도 정말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있.. 2026. 1. 30. 왜 사족들이면서도 선계 계보가 부실했는가 조선시대 사족들을 보면선계 계보가 매우 부실한 경우가 다반사였다. 이렇게 된 이유는 필자가 보기엔 그 이유가 이렇다. 첫째로 조선시대 사족들의 경우 그 기원이 향리 출신인 경우가 많다. 집안이 일어난 시점이 빨라야 무신난 이후, 늦으면 여말선초이다 보니 제대로 된 계보가 애초부터 없었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대개 여말선초의 몇대조 정도 가지고 있는 정도가 많고 그 위로 중시조, 혹은 원시조의 이름 정도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두번째로 고려 전기부터 내려오는 귀족 명문의 경우, 일차적으로 무신란때 절단 난 집안이 많고, 여말선초에 제대로 사족집안으로 전환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아주 예외적으로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사족으로 성공적으로 전환하여 계속 번성한 경우도 있긴 한데 이런 경우는 계보가 상대적으로.. 2026. 1. 30. 대동보는 어떻게 팽창하는가: 어느 집안의 경우 (2) 앞의 이야기를 계속 써본다. 그러면 이 문중의 족보는 그 이후 어찌 되었을까? 사실 이 집안의 첫 족보가 나간 뒤우리도 이 집안의 후손이라 주장하는 사족 집단들이 계속 쇄도했다. 이 시점이 17세기이다. 앞에서 증손 11 분으로 계보를 만들었고, 또 선계를 모르는 다른 지역의 종족 한 집안이 별보로 들어갔다고 했는데 그 다음 족보에는 이미 알려진 증손 11 분의 아버지 대, 다시 말해 그 손자 일곱분 중 한 분으로 부터 갈려나갔다고 주장하는 두 종족이 새롭게 합보를 요청해왔다. 이 경우는 앞의 종족과 달리 명확히 갈려나간 조상의 이름을 특정했다는 점에서 다른 면이 있었지만, 문제는 옛 족보와 각종 문헌을 보면 그 할아버지는 아들을 한명만 두었을 뿐, 그 들의 주장대로 아들이 원래 있던 아들 집안 포함 세.. 2026. 1. 30. 이전 1 2 3 4 5 6 ··· 3809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