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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528

사촌 판서집 서책을 훔쳐다 팔아먹은 남양홍씨 1929년 8월 28일, 조선일보에 작은 기사 하나가 난다.경기도 양주(지금의 남양주)에 사는 홍 뭐라는 이가 자기 사촌인 전직 판서 홍 아무개 집을 드나들며 '비장고서' 수백 책을 훔쳐다 경성 한남서림(간송이 인수한 바로 그 서점)에 팔아먹다가 체포되었단다. 항렬자로 보아 남양홍씨 집안인 듯 한데, 그 집안의 비장고서라니 아마 선대에 벼슬한 분이 많았던가 보다.하물며 본인이 판서까지 했다니 말이다.그러면 귀한 책이 많을 법도 하다.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사촌이 책 도적질을 할 줄이야.하기야, 훈민정음해례도 비슷하게 세상에 나왔다는 얘기가 있으니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겠다. 2025. 10. 15.
운여 김광업, 제주에 오다 가끔 '부캐'가 본업보다 더 큰 성과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 이 전시의 주인공 운여 김광업(1906-1976)도 그런 분이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직업인 안과의사였고 또 수양동우회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도 치른 지사였지만, 골동 수집에 안목이 탁월했고 또 서화에 빼어났다. 위창 오세창(1864-1953) 문하를 드나들며 익힌 그의 학식과 서예, 전각 솜씨는 누구도 아마추어라고 얕볼 수 없었다. 그는 미술대전 서예 부문 심사위원도 여러 번 맡았고, 한국미술협회 부산지부장, 한국서예가협회 위원도 역임했다. 오로지 붓에만 매진한 사람도 하기 어려운 일을, 이 의사선생님은 해냈다.그의 작품 수십 점이 제주에 왔다. 소암기념관에서 진행 중인 (9.23.-12.7.)에 출품 중이다. 흔치 않은 기회이니 혹 제주 오시거.. 2025. 10. 5.
홍여하(1620-1674)가 본 황희 정승 영정 조선 초기 재상 황희(1363-1452)의 초상을 보았다. 그리고 그 감회를 이렇게 글로 읊어 부쳤다.---평소엔 웃는 얼굴로 편안하였기에, 아이들 다투어 수염 잡아당기고 품에 안겨 먹을 것 구하였으니 마치 제 아버지 어머니에게 장난치듯 놀았다네.인끈 드리우고 홀을 단정히 하여 조정의 윗자리에 서면, 백관들은 두려워 떨고 조정에서는 단정하게 그를 위해 엄숙히 하는 모습이 마치 예법을 지닌 집안의 자제들이 아버지나 형을 두려워하고 공경하듯 했네. 비유컨대 신룡神龍이 깊은 못 진흙탕에 서려 있어, 물고기 자라 도마뱀이 친하게 지내는 듯하면서 업신여기다가, 어느덧 홀연 변화하면, 풍우와 벼락이 쳐 산골짜기를 휘감고 황하와 바다를 쓸어버려도, 신룡의 기량을 헤아릴 수 없는 것 같았네. 이는 그가 당시에는 혁혁.. 2025. 9. 26.
구보다상, 비행기 사려고 그림을 팔다 꽤 오래 묵은 매화 등걸 하나가 있다. 솟구쳐오르다 퉁 하고 굽은 줄기는 잔가지를 다시 허공으로 솟게 만들었다.그 잔가지에 흰 꽃이 가득 피었다. 때는 겨울에서 막 넘어온 봄이런가, 그 봄이 알알이 저 매화꽃잎 하나하나에 들어찼다.오래 말았다 폈다 한 족자는 자연스레 꺾이는 현상이 생기곤 한다. 그 현상이 화폭 위에 선을 긋는다. 그 선은 그냥 선이 아니다. 어느새 그것은 잔잔히 피어오르는 윤슬이 되어 화폭 안을 고요한 연못으로 만들어내고, 하늘을 가로지르는 구름이 되어 연못 위에 푸른 봄 하늘빛을 우려낸다. 그래서인지, 화제도 그 모습 그대로이다.눈 같은 매화가 봄 연못을 가득 채웠네.일류라고 할 수는 없을지라도, 제법 서정을 갖추고 먹의 농담을 운용한 이 작가는 구보다 료헤이(1872-1940?)라는.. 2025. 7. 24.
난실蘭室, 난초 방인가 레이디 룸인가? 독자 여러분을 존경하긴 합니다만, 그래서 하는 告白은 아니고....예전에 한 일의 결과물 중 하나가 틀렸음을 알려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2021년도에 제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현판' 조사를 한 적이 있지요. 어떻게 된 게 고고역사부에 4년 있는 동안 고려 묘지명, 현판 같은 중량급 유물 조사를 도맡았습니다.제가 떠난 뒤에 탁본(종이) 조사를 하더군요. 그건 그렇다치고, 그래도 일은 일이니 열심히 조사하고 사진을 찍고(김광섭 작가님 감사합니다) 번역을 요청하고(송혁기 선생님 이하 여러 선생님들 감사합니다) 검수하고 기간 안에 보고서를 만드는 데까지 성공했습니다. 그때 제가 유달리 마음이 가던 현판이 하나 있었습니다. 조선 근대의 정치가이자 서화가로 일세를 풍미했던 흥선대원군 석파 이하응(1820-189.. 2025. 7. 23.
의사 한국남한테 호를 지어주며 백아 김창현이 쓴 글 나는 잘 모르지만, 내 아버지 연배 분들한테 '한국남'이란 의사는 꽤 유명했다고 한다. TV에 나와서 입담으로 사람들을 웃기고 의학 상식도 많이 알려주었다나. 그런 그가 백아 김창현(1923-1991)을 찾아 호를 하나 지어달라 한 모양이다. 서예가이자 한문학자였던 백아는 고심 끝에 《주역》에서 그럴 듯한 구절을 찾아 호를 짓는다. 그리고 이를 직접 써서 닥터 한에게 주었다.경원經園.《주역》의 '둔'괘에 이르기를, 군자는 경륜經綸으로써 널리 세상을 구한다 했다. 한국남 박사는 국수國手이다. 날마다 나에게 별자(호)를 구하였다. 대개 세상을 다스리는 것과 사람을 오래 살게 하는 것엔 진실로 두 가지 이치가 있을 수 없다. 그런 까닭에 이에 (《주역》의 이 말을) 취하여 호로 삼아 경원이라 부르고, 드디어 .. 2025.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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