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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439

'저 나라'에서 쓰는 모자가 뭐 어쨌다는 거냐 영조가 왕위에 오른 지 43년째 되던 1767년 4월 7일, 청나라에 다녀온 동지사 일행이 귀국해 영조에게 인사를 올리러 왔다. 권108에 실린 한 기사는 그날의 정경을 다음과 같이 그린다. 동지사 정사로 다녀왔던 종친 함계군(선조의 손자 평운군平雲君의 손자)이 영조에게 영 엉뚱한 말만을 늘어놓는다. 송나라 때 소동파蘇東坡가 썼다는 동파관, 그리고 당나라 때 맹호연孟浩然이 썼다는 호연건이 '저 나라'에도 있더이다 이런 얘기만 늘어놓은 것이다. 청나라를 굳이 '저 나라'라고 한 것도 우스운 일이지만, 도대체 사신으로 갔다 왔으면 뭔가 영양가 있는 이야기를 보고 들은 게 있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에 영조는 헛웃음을 터트리며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황하가 맑아지지 않는다더니, 다만 가소로운 일만 듣는.. 2024. 2. 18.
러시아 이긴 이태째에 일본 군인에게 청나라 유학생이 글씨를 써주다 1900년대를 전후한 시기, 생각보다 많은 동아시아 지식인이 일본에서 희망을 찾았다. 서구 열강의 침략에 시들어가는 그들의 조국과 비교해 볼 때, 개항 이후 열강화해가던 일본은 어쨌거나 좋은 본보기였기 때문이다. 이에 그들은 일본 유학을 경쟁적으로 떠난다. 베트남에서 일어난 동유東遊 운동이 그 대표적인 사례가 되겠다. 청일전쟁으로 양무운동이 스러졌고, 변법자강운동마저 실패로 돌아갔던 청나라에서도 일본 유학 붐이 인다. 청나라가 1912년 멸망하고 민국시대가 열렸지만, 일본에 유학가는 이들은 줄지 않았다. 노신(1881-1936), 곽말약(1892-1978), 주은래(1898-1976) 같은 거물들이 그 시절 앞서거니 뒤서거니 일본 유학을 떠났던 이들이다. 정작 이들은 일본에서 '중국'의 현실을 깨닫고 돌.. 2024. 2. 17.
최수종 아닌 강감찬 전국적으로 널리 퍼진 설화 가운데 '강감찬설화'란 것이 있다. 내용은 거진 엇비슷한데, 강감찬은 99번 유혹을 견딘 남자가 결국은 여우에게 속아서 낳은 아들로 워낙 잘생겼는데 남자가 이래서 쓰느냐고 마마손님을 세 번 불러다 얼굴을 얽게 만들었단다. 그러면서 신묘한 재주를 가져 여우가 둔갑한 신랑을 꾸짖어 죽이기도 하고 우리나라에 살던 범을 죄 압록강 이북으로 쫓아내버리기도 한다. 이상하리만치 지역에 따른 내용 차이가 없고 일관적인데, 거 참 모를 일이다. 그 설화들을 읽다 보니 정말 진주 강씨의 위대한 조상 강감찬 공께서 여우의 아들인지 아닌지 아리송할 지경이다. 물론 설화는 설화다. 하지만 그 설화를 낳은 계기는 있게 마련인데, 글쎄... 강감찬 공이 남긴 업적이 그 당시 사람들로서는 不可解할 정도로 .. 2024. 2. 10.
충효 말고 구할 게 없다? 친일파 이윤용의 글씨 "모든 일은 충효 바깥에서 구하지 않는다[萬事不求忠孝外]!" 좋은 말이다. 헌데...그 말을 붓으로 적은 이가 누군가 하니 '90을 바라보는 늙은이 이윤용李允用'이란다. 이윤용, 이윤용이라... 누군가 하여 찾아보니 이완용의 형(친형은 아니다. 이완용이 양자로 들어간 이호준의 서출 아들)이다. 우리가 다 아는 그 매국노 이완용 맞다. 그 형 되는 이 사람도 동생 못지않은 친일파였다. 더 흥미로운 건 그 장인이 '조선 근대의 괴걸' 흥선대원군이었다는 사실. 이보시오, 대감. 다 좋은데, 대감이 하실 말은 아니지 않소? ㅡ 이 글씨를 보여주고 포스팅을 허락해준 소장자께 감사의 말을 올린다. 2024. 2. 8.
열받은 김방경 1277년 모함을 받아 국문을 받았다고 한다. 그때 그를 모함한 이들과 대질신문을 하였는데, 상대가 거짓말을 늘어놓자... 김방경은 성품이 과묵하였는데 또 분노하게 되니 말할 수 없는 정도에 달한 듯하였다. - 김방경 열전 중에서 2024. 2. 3.
제자의 처신, 손재형과 그의 두 제자 서희환과 하남호 1. 근대 한국의 명필로 꼽히는 이는 많다. 그러나 소전 손재형(1903-1981)처럼 글씨를 자유자재로 즐겼던 이는 드물지 싶다. 의 신화적 실화나 박정희(1917-1979)의 서예 스승이었다는 이야기는 젖혀두고라도, 같은 대작 글씨건 아담한 소품이건(앞 사진), 그의 작품을 보면 획의 움직임이며 대담한 구도며, 그야말로 별격의 아름다움이 가득하다. 소전이 내세운 '한글 전서'는, 근거가 없다는 비판을 들었을 정도로 파격적이지만 또 그만큼 현대적으로 느껴진다. 붓으로 글씨를 쓴다는 게 너무나 어색해져버린 이 시대, 서예가들이 그를 잘 연구한다면 뭔가 돌파구를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2. 소전에게도 제자는 많이 있었다. 그중 평보 서희환(1934-1995), 장전 하남호(1927-2007) 이 두 사람.. 2024.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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