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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491

달밤에 매화 등걸, 추자도 출신 화가 원용식 달밤에 매화 등걸, 추자도 출신 화가 원용식제주이기도 했고 영암이기도 했던 섬 추자도. 그 추자도에서 태어나 서화로 입신立身한 해주海洲 원용식元容植이란 이가 있었다. 생몰년도는 분명치 않지만, 1900년대 초~중반을 살았던 건 확실하고 난초에 능했다고 전한다. 상당히 부유하게 살았고 곳곳을 유람하며 작품활동을 제법 많이 했다 전하나, 남은 작품이 썩 흔치는 않다. 그가 남긴 이 매화 그림은 줄기를 친 솜씨나 달빛으로 분위기를 우린 품으로 보나, 그의 실력이 하수는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허공을 엷은 먹으로 처리하고 매화를 부조처럼 띄웠다. 좀처럼 보기 어려운 방법인데 설중매雪中梅를 의도한 걸까. 하지만 수묵의 농담으로 매화 둥치의 입체감을 살린 점이나 달을 가린 구름이나, 화제의 서풍書風 등을 보면 아무래.. 2024. 9. 27.
캐갈까 무쪄워 호남화단의 시조랄 수 있는 소치 허련(1809-1893). 뒷사람들은 흔히 '운림산방 5대'라는 자손의 화맥畵脈만을 이야기하지만, 당대부터 그는 제자를 여럿 길러냈다. 그들은 호남 각지에 뿌리내려 작품활동을 하였는데, 당연하게도 소치풍風 그림을 그렸다. 그래서 그들이 소치 그림을 갖지 못한 이들의 수요를 채워주고, 누군가는 그들의 작품에서 낙관을 교묘히 도려내 스승 소치의 위작으로 둔갑시켰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소치의 제자, 또는 소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여겨지는 화가 중 난원 김환주(1877-?)라는 이가 있다. 해남 출신으로 서화에 이름이 있어 흥선대원군이 호를 지어주었다는 미방 김익로(1845-1915)의 아들인데, 김환주 역시 그림을 잘했다 하나 전해지는 작품은 드물다 한다. 이 사진이 그 .. 2024. 9. 20.
엄비 칠궁 현판을 쓴 이완용 한때 독립문 한글 한자 편액을 누가 썼는지에 관해 시끌시끌했던 적이 있다. 천하의 매국노 일당 이완용(1858~1926)이 다른 문도 아니고 '독립문'의 편액을 썼다니 라며 놀라고 또 부정하며 화내는 분이 많았다고 기억한다. 하지만 독립문을 세우던 1890년대 당시(그로부터 십여 년 뒤가 아니라) 그의 정체를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조선은 미국같이 되기를 바라오"라고 연설했던 독립협회 창립발기인, 이완용 말이다. 어쨌거나, 이완용은 편액서, 곧 현판글씨에도 제법 능했던 건 맞는 것 같다. 높이 거는 현판의 특성상, 작은 글자를 확대해서 새겼다간 획이 지나치게 가늘고 힘없어 보인다. 그래서 현판에 새길 글씨는 다른 붓글씨보다 굵고 강하게 써야 한다. 이완용이 덕수궁 숙목문肅穆門, 김천.. 2024. 9. 5.
병자호란 때 이야기라는데 사대부 집안 아녀자들이 강화에 많이 피란 와 있었다 한다. 다들 오랑캐가 오면 자진하겠다느니 하는데, 한 사람만 "그때 가봐야 알 일"이라고 했다. 그러자 다들 그를 욕했다. 예친왕이 이끄는 청나라 수군이 강화에 왔다. 그러자 그때 가 봐야 알 일이라고 한 그 한 사람만 끝까지 항거하다 죽음을 맞이했고, 그를 나무랐던 이는 그러지 못했다고 한다. *** editor's note ***그래서 나는 지금 정의를 부르짖는 자들을 믿지 않는다.목이 칼이 들어와도 절개를 지키는 이는 딴 사람들이다. 2024. 8. 28.
조선 양반님네들의 아주 좋지 아니한 버릇 책 앞장에 찍힌 전 주인의 장서인을 그냥 두지 않는다. 도려내고 문지르고...그것까지면 모르겠는데 그 자리에 자기 도장을 찍는다. 시간이 지나면 그렇게 덧찍은 인영印影도 사라진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 책이 거쳐온 역사는 깡그리 잊혀지고 마니, 이 어찌 매우 나쁜 버릇이라 하지 않을손가!사진은 안평대군이 원글자를 쓴 경오자를 본뜬 훈련도감 목활자본을 목판에 뒤집어붙여 새긴 복각판을 17-18세기쯤 인쇄한(복잡하지만, 금속활자>목활자본>목판본) 《주문공교창려선생집》의 일부. 솜씨가 좀 거칠지만 그래도 안평대군 글씨의 흔적이 간간이 보인다. *** editor's note ***  장서인을 없애거나 다른 것으로 교체하는 경우의 수는 많다. 가장 대표가 도둑질이다. 이때 도둑한 사람이 그 흔적을 지우고자 장서인.. 2024. 8. 22.
육당, 그의 글씨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포하노라" 삼일절마다 되뇌이고, 한때는 국어교과서에도 실린 첫 구절이다. 내가 고등학교에서 배울 때는 이 글의 저자를 '민족대표 33인'이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 이유를 국어 선생님이 이렇게 얘기했더랬다. 지은이의 삶 때문이라고. 그 틀을 잡은 지은이-지금은 '공약 3장'도 함께 지은 것으로 여겨지는-가 바로 육당六堂 최남선(1890-1957)이다. 젊어서 동경삼재東京三才란 찬사를 받을 만큼 천재성을 발휘한 그였다. 그랬기에 개화기부터 일제강점 중기까지 한국 문학, 출판, 역사연구, 언론 등 실로 각 분야에서 그의 이름은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중년 이후, 그는 바람에 나부끼는 갈대 같은 삶을 살았다. 그는 그렇게 살았다. 꽤 오래 산 인물임에.. 2024.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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