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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525

소나무 아래 달빛을 밟은 운보 김기창과 청계 정종여 해방 전 어느 날, 이당 김은호(1892-1979) 문하인 운보 김기창(1913-2001)이 청전 이상범(1897-1972) 제자인 청계 정종여(1914-1984)와 자리를 함께했다. 스승은 달랐지만 그래도 퍽 가깝게 지냈던 듯싶다.그 둘이 무슨 연유로 같이 만난 것이다. 이 시절엔 글 좀 하고 그림 그린다 하는 이들이 모이면 합작으로 작품을 만들어서 좌장이나 자리를 주선한 이에게 선사하는 것이 일종의 관례였다.그들 앞에 종이가 놓이자, 청계가 먼저 소나무 두 그루를 심었다. 거친 듯 유연한 나무 둥치가 멋스러운데, 아래 공간이 비어 있다. 거기 운보가 신선과 동자를 세웠다. 누런 옷 노인은 저 멀리를 바라보는데, 청의동자는 화폭 바깥을 흘깃 쳐다본다.다 되었다 싶었는지 청계가 다시 붓을 잡았다. 그리고.. 2025. 3. 17.
백범 김구의 총알체 병풍 글씨 [백범이 이런 작품도 다 남겼더라]백범 김구(1876-1949)의 삶은, 그가 했다는 한 마디 말로 요약된다. "내 직업은 독립운동이요." 그의 삶에 물론 그늘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없었던들 과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십 년을 버티며 독립의 꿈을 놓지 않았을까. 또, 해방된 조국의 남과 북이 갈라져나가던 순간에 누가 이를 피 흘리지 않고 붙여보려는 노력을 했을까. 그는 분명 한 시대의 거인이었다.그는 붓글씨를 많이 남겼다. 대개 45년 환국 후 경교장에서 각 잡고, 또 전국 순방을 하며 즉석에서 쓴 것들인데 전해지는 것만도 족히 몇백 점은 되지 싶다. 백범일지에 서명한 것까지 합하면 헤아리기도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은 귀한 대접을 받는다. 인기가 있으니 가짜도 적잖이 나돌고 복사본, 영.. 2025. 3. 14.
100년 전 제주 신동 1913년 12월 5일자 매일신보 박스기사를 훑어보다 보니 '제주' 두 글자가 콕 박혀 들어온다.냉큼 읽어보니 제법 흥미로운 이야기이다. 여섯살바기 신동이 났다지 않은가.전라남도 제주군 서문 밖 진성동에 사는 강석균 씨의 아들 강철수는 태어난지 30개월이 못 되어 글자를 3,000자 이상이나 알고 고시와 당음(필자 주: 중국 한시)을 능히 기억하더니 작년부터는 처음으로 붓을 잡는데 필법이 신기하여 서화를 무불통지하므로 주변 사람들이 신동이라 일컬어 글씨와 그림을 받아가는 자가 매일 구름 같이 모여들며, 지금 나이 여섯 살 된 아이로 문필이 이와 같이 구비된 것은 처음이라고 소문이 낭자하더라.진성동은 아마 제주 읍성 안 '무근성'일 텐데 "서문 밖"이라 하였으니, 아마 "서문 안"의 오식이지 싶다.그런데 .. 2025. 3. 12.
조리희照里戲, 줄다리기하다 자빠지면 껄껄 에서 이 과장님이 "성경은, 인문학의 보고야."라고 하듯, 많은 역사학, 사회학, 지역학, 문학 연구자들은 아마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우리네 학문의 보고야."라고 하지 않을까.16세기까지 조선의 지리정보와 풍속, 문화, 그 고을과 관련된 시문 등등이 집대성한 지리지이기 때문이다.그 이후로 업데이트가 드문드문 되었다는 게 문제겠지만.어쨌건, 그 승람 전라도 제주목 조에도 재미있는 내용이 한둘이 아니다.그걸 읽다가 흥미로운 구절 하나를 옮겨본다.조리희照里戲  매년 8월 15일이면 남녀가 함께 모여 노래하고 춤추며 왼편 오른편으로 나누어 큰 동아줄 두 끝을 잡아당겨 승부를 결단하는데 동아줄이 만일 중간에 끊어져서 두 편이 땅에 자빠지면 구경하는 사람들이 크게 웃는다. 이것을 조리照里 놀이라고 한다. 이날에 또 .. 2025. 3. 9.
이른바 '조선귀족' 천태만상 1924년 6월, 제48호엔 관상자觀相者라는 인물이 쓴 "경성京城의 인물백태人物百態"란 기사가 실렸다. 말 그대로 경성, 곧 서울을 주름잡던 거물들의 모습을 풍자하듯 그린 글인데 그 말미에 이른바 '조선귀족'들도 언급된다. 그 대단한 나으리들의 모습을 볼작시면... 閔泳綺男의 大學目藥은 광고가 잘 되얏스니 더 말할 것 업고- 민영기(1858-1927)는 을사늑약을 반대한 덕에 '을사오적' 칭호는 듣지 않을 수 있었지만 그 뒤엔 제법 친일행적이 있었고 남작 작위를 받았다. 그런데 갑자기 웬 '대학목약'? 눈 목자가 들어갔으니 안약인 셈인데, 일제 때 꽤 유명한 상표였단다. 근데 그 신문 광고를 보니 둥근 얼굴에 텁수룩한 수염을 기른(또 다른 특징도 있으나 언급하지 않겠다) 인물이 등장한다(참고자료: .. 2025. 2. 20.
이것은 도마뱀일까 도롱뇽일까, 아니면 다른 그 무엇이었을까 3.1운동으로 한국인에게 채워진 족쇄가 약간은 헐거워졌던(그러나 풀릴 기미는 없던) 1920년대,한국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끈 잡지라 하면 아마 대부분 을 꼽을 것이다.천도교에서 만들었으되 종교색이라고는 별로 없이 온갖 시사를 다루었던 이 잡지는 그 자체만으로 일제강점기를 연구하는 이들의 노다지 광산이 아닐 수 없다.그 29호(1922년 11월)에 "천지현황天地玄黃"이란 제목의 꼭지가 실렸다. 여러 에피소드가 옴니버스식으로 실린 기사인데 그중 이런 대목이 나온다. 한자에 토를 달아 읽는 식이므로 최대한 풀어본다.- 진고개[泥峴] 조선관내朝鮮舘內 수족관水族舘에는 근자에 함경남도 낭림산 깊은 소沼에서 나온 이른바 용龍이라는 기이한 동물을 구입하야 일반에게 관람케 하는데, 그 동물의 머리는 전부 뱀과 같고 .. 2025.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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