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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519

봉은사가 지우려한 식민지 역사 일이 있어서 강남 땅에 왔다가 스벅 커피 한 잔 들고 봉은사를 찾았다. 추사 선생이 돌아가시기 사흘 전 썼다는 글씨를 오랜만에 한 번 보고 싶어서였는데, 절 분위기가 꽤나 어수선해서 좀 아쉬웠다. 근데 뜻밖의 물건을 보게 되었다. 판전 옆, 무슨 문화관을 짓는다고 길을 냈는데 그 옆에 박힌 돌기둥 하나. 깨져서 별로 볼 것 없어보이긴 해도 일단 글자가 있으니 전공(?)을 살려 들여다보았다. 앞부분은 죄 누가 뭉개놓았는데, 뒷부분은 살아 있다. "조선불교조계종대본산봉은본말사주지대표 소화십팔년 시월 일 건립" 소화 18년이면 1943년, 2차대전이 한창이던 시절이다. 그때 봉은사 주지께서 세운 돌이라. 다시 앞면을 바라본다. 햇빛에 비춰보니 언뜻언뜻 '충'자가 보이는 듯도 하고, 그 아래 잔글씨는 '육군.... 2023. 9. 4.
근대의 서점 누가 근대의 '서점'을 배경으로 짤막한 드라마나 영화 만들어보실 의향 없으신지 2023. 8. 27.
손재형이 신혼부부한테 써 준 붓글씨 1.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인 1973년 3월, 황씨 성의 남자와 이씨 성의 여자가 부부의 연을 맺었다. 그들을 축하하기 위해 소전素荃 손재형(孫在馨, 1903-1981)이 붓을 들었다. 묵직하지만 결코 무겁지 않게 붓을 움직인 그는, 대담히 획을 생략하고 굳건히 틀을 짜 여덟 글자를 종이 위에 이루었다. 하늘과 땅이 짝지어 합했으니 天地配合 길이 아름다운 복을 받으리라 長受嘉福 그리고 부부의 이름을 넣어 낙관落款을 쓰고 도서圖署를 찍었다. 검고 흰 작품 위에 붉은 기운이 내리니 밋밋할 수 있는 글씨에 생기가 더욱 감돈다. 2. 받는 사람의 이름을 적어주는 것을 쌍낙관雙落款이라 한다. 작품을 받은 이에게는 평생의 자랑이고 기념이 되겠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 때문에 같은 작가가 똑같은 수준.. 2023. 8. 19.
100년 동안 유전流傳한 조선고서간행회 발간 도서 100년도 더 전인 1913년(대정 2) 조선고서간행회에서 5집으로 간행한 3의 冊生流傳 1. 아마도 경성에서 발간된 직후에 기차나 소달구지에 실려 전라남도 도청에 들어갔다-장서인이 대출태그에 덮여버렸지만 全羅南道之印이나 全羅南道廳印인듯 2. 도청 도서실에서 해방과 6.25 전쟁, 4.19 혁명, 5.16 군사정변을 겪었다가 광주시립도서관으로 이관됨-1962년 9월 2일자로 3. 광주시립도서관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겪고 다시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으로 이관됨-모르긴몰라도 시립도서관에서는 폐기도서를 처리해야했고, 독립운동기념관에서는 자료를 모아야 했을테니 일석이조의 효과였을듯 4. 그러다가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에서도 어느 순간 방출되어 오게 된 곳이 서울의 모 헌책방-비닐끈에 묶이고 트럭에 실려 이루.. 2023. 8. 19.
왕후장상에 어찌 종자가 따로 있겠느냐? 위대한 권리장전 〈신종神宗〉 원년(1198), 사동私僮 만적萬積 등 6명이 북산北山에서 땔나무를 하다가, 공사公私의 노예들을 불러 모아서는 모의하며 말하기를, “국가에서 경인년(1170)과 계사년(1173) 이래로 높은 관직도 천인이나 노예 중에서 많이 나왔으니, 장상將相에 어찌 〈타고난〉 씨가 있겠는가? 때가 되면 〈누구나〉 차지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라고 어찌 뼈 빠지게 일만 하면서 채찍 아래에서 고통만 당하겠는가?” 라고 하니 여러 노奴가 모두 그렇다고 하였다. 누런 종이 수천 장을 잘라서 모두 정자丁字를 새겨서 표지로 삼고, 약속하여 말하기를, “우리가 흥국사興國寺 회랑에서 구정毬庭까지 한꺼번에 집결하여 북을 치고 고함을 치면, 궁궐 안의 환관들이 모두 호응할 것이며, 관노官奴는 궁궐 안에서 나쁜 놈들을 죽일 .. 2023. 8. 14.
식민지시대 책값, 금값에 연동한 조선은행권 1) 일제강점기, 조선은행권은 금태환이라고 해서 화폐가치가 금값에 연동되어 있었다. 명목상 1원은 금 0.2돈. 곧 금 1돈이 5원이었다. 지금 금 1돈에 35만원 남짓이라니 1원이면 대강 7만원쯤. 2) 지난번에도 한번 말했는데 그 시절 어지간한 연활자본 문헌 가격이 3~4원이었다. 지금 한 권에 20~30만원짜리 책이라고 하면 어마어마한 호화판이거나 그럭저럭 드문 고서 정도? 그때 책값이 결코 싼 게 아니었다. 3) 금값 기준으로, 일제 때 1만원이라면 대략 7억원으로 환산할 수 있겠다. 언뜻 적게 느껴질지도 모른다마는, 기와집 한 채가 2천원이었다니 1만원의 실질가치는 7억 그 이상이었을 터. 그렇다면 그 액수를 아무렇지 않게 차용할 수 있었던 이의 부는 얼마나 컸다는 얘기일까. 2023.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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