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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442

이규보 선생을 개무시한 오주 선생 이규경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라는 책을 편찬하여 한국 역사에 불후의 이름을 남긴 오주五洲 이규경李圭景(1788~1856)이라는 분이 있었다. '책에 미친 바보' 이덕무李德懋(1741~1793)의 손자로 그 스스로도 책에는 일가견이 있었던 사람인데, 뜻밖에 우리 고문헌에는 다소 어두웠던 것 같다. 《오주연문장전산고》 중에 "석교釋敎·범서梵書·불경佛經에 대한 변증설辨證說"이란 글이 있는데, 거기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논한 대목을 보면...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우리나라 해인사海印寺에 소장되어 있는 《팔만대장경》 또한 변증하지 않을 수 없다. 해인사는 경상도慶尙道 합천군陜川郡 가야산伽倻山에 있는 신라시대 고찰古刹이다. 경판經板은 해인사 보안당普眼堂 남쪽과 북쪽 두 각閣에 저장되어 있는데, 모두 15칸[間.. 2023. 4. 23.
제주인인가 뭍사람인가? 이중국적으로 고통받은 어떤 사람 이귀제 1. 1727년(영조 3) 7월 17일 기사를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제주시濟州試에 입격入格한 사람 이귀제李龜濟를 빼라고 명하였다. 이귀제는 고故 승지承旨 이익태(李益泰, 1633~1704)의 아들인데, 이익태가 제주목사濟州牧使이었을 때에 이귀제를 낳았다. 이귀제가 태어난 고장이기 때문에 (제주에서 시행한) 과시科試에 나아가 입격入格하였는데, 부교리副校理 송진명(宋眞明, 1638~1738)이 상소하여 논하였다. 임금이 명하여 원적原籍을 살피게 하였더니 과연 원적이 중첩되었으므로, 이 명이 있었다. 이귀제는 의 저자로 유명한 이익태가 제주목사로 있을 때(1694~1696) 제주에서 낳은 아들이다(육지 사대부가 제주에서 자손을 얻은 경우 제濟 자를 이름에 붙이는 경우가 많았다). 이익태가 죽고 2.. 2023. 4. 22.
시공간 개무시 최치원뎐 옛날 신라 때 최충이 새로 문창령에 제수되었는데 베게에 엎드리고 밥도 먹지 않으니 그 아내가 물어 말하기를, "이렇게 좋은 관직을 얻었는데 어찌 이에 이르도록 걱정하십니까?"라 하였다. 충이 말하기를, "내가 옛 이야기를 듣건대 문창령의 아내를 귀신이 빼앗아간 바가 몇십명이나 된다고 하오. 내가 이런 이유로 근심하는게요."라 하니... 고려의 해동공자 최충이 신라 최치원의 아버지로 나오는 것이나, 최치원의 시호 문창후를 살짝 비틀어 관직명으로 만든 건 그렇다치고, 하여간 재미는 있어보인다. 순한문에 구결을 단 것도 흥미롭고...국문학 쪽에서 좀 관심을 가질는지? *** Editor's Note *** 저에 대한 기호철 선생 평이 재미진다. "춘향이가 인당수에 다이빙 하니 이몽룡이 눈을 떴다는 말이군요" 2023. 4. 22.
종묘 대신 중국으로 가 버린 제주 청귤 택배 배송사고 예조에서 아뢰기를, "제주목에서 봉진하는 종묘에 천신(薦新, 햇과일이 나왔음을 조상에게 알리는 일)할 청귤靑橘은 곧 3월에 해야 하는데, 이를 영솔하여 오던 교리校吏가 표류되어 소주蘇州에 이르렀다가 이제야 비로소 와서 바쳤습니다. 그러나 이미 모두 썩고 마르고 하여 천진薦進하기에 합당하지 않으니 천진하지 말라고 명하소서." 라고 하였다. - 1778년(정조 2) 8월 5일 기사 1) 표류라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임금님께 바칠 귤상자는 어떻게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었던가 보다. 그런데 그러면 뭘하나. 이미 몇 달이나 지났는걸... 2) 그나저나 그 제주목 포교와 서리는 천당 아래 소항이라는 그 소주 구경은 좀 했을지? *** previous or related article *** 진상한 귤 썩었다고 파직.. 2023. 4. 22.
진상한 귤 썩었다고 파직당한 제주목사 역대 제주목사 중에는 (지금의 우리가 보기엔) 어이없는 이유로 파직된 분이 많다. 진상한 귤이 썩었으므로 벼슬을 떼고 심문한다는 것. 근데 냉장고가 없던 시절 뱃길로 귤을 나르는데 썩지 않는다는 게 더 이상한 일 아닐까. 지금도 택배로 귤을 사서 풀어보면 가끔 푸른곰팡이 핀 게 나오는데. 귤을 포장해 서울로 보내면서 목사 나으리들은 "제발..." 이런 심정이었을지 모르겠다. *** Editor's Note *** 전라도 장성부사는 죽력을 만들 청대죽이 너무 말라서 파직되기도 했단다. 이를 반면교사 삼은 후임 장성부사는 정치력을 발휘해 장성 대나무는 죽력을 만들기에 좋지 않다고 담양에 토스해 버리기도 했다고. (기호철) 2023. 4. 21.
기어이 곤장 맞고 죽은 쪽집게 과거시험 대리자 과거를 치르려면 경전과 시서에 통달해야하는 것은 기본이요, 과거에만 쓰이는 양식의 시와 문장에 익숙해야했다. 시의 경우 과시 또는 공령시라 했고 문장은 과부라고 했다. 이는 엄청나게 형식화해(중국 명청대의 팔고문만큼은 아니지만) 채점하기는 편했지만 제대로 된 시문으로 평가받기는 힘들었고 문집 같은 데서도 산삭되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과거를 치르려면 꼭 필요했기에 선비들은 이런 과시들을 손수 베껴 익혔다. 과거 모범답안집을 만든 것이다. 가끔은 그런 데서 퍽 의미있는 작품을 만나기도 한다. 이 사진이 그 한 예인데, 이는 17세기 문인인 이재영(1553-1623)이 지었다는 과시이다. 그는 서출이었지만 임진왜란 당시 군공을 세워 면천되고 정시문과에 장원할 정도로 문장에 뛰어났다. 그를 조선통신사 수행원으.. 2023.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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