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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 & 漢文&漢文法556

여기 또 뽕나무에 뿅간 여인이 있으니 : 춘사(春思) 이번엔 내가 주로 섭렵하던 위진남북조시대에서 수백 년을 내려온 당대(唐代)이니, 이 무렵에도 중원 왕조는 북방 유목민족 침입에 간단없이 시달렸다. 전쟁은 문학을 번영케 하니, 그런 까닭에 전쟁은 곧 문학의 온상이라 할 만하다. 이 무렵에도 이른바 전쟁 때문에 애간장 녹이는 여인을 소재로 한 노래가 양산이 되었으니, 이 시대 그런 상념과 시대정신을 가장 처절히 구현한 이가 태백(太白) 이백(李白)이라, 태백을 호방하며 남성적이며 진취적인 시인이라고 누가 규정했는지,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태백은 세계문학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파토스(pathos) 시인 중 한 명이다. 그의 시는 음미하면 가슴 저 밑이 시려온다. 진흙탕 연못을 본 적이 있는가? 그 밑은 뻘일지니, 그 뻘은 앙금이라고도 하거니와, 이태백은 .. 2018. 2. 26.
장간행長干行 : 이태백 파토스 문학의 백미 나는 이태백李太白이야말로 가장 걸출한 파토스pathos의 시인으로 본다. 아래 소개하는 장간행長干行 역시 그의 이런 면모를 잘 보여준다. 장간행長干行 태백太白 이백李白 妾髮初覆額(첩발초복액) 제 머리 처음 이마 덮을 적에 折花門前劇(절화문전극) 꽃 꺾어 문 앞서 놀았지요郎騎竹馬來(낭기죽마래) 님께선 죽마 타고 와서는繞牀弄靑梅(요상농청매) 뱅뱅 침상돌며 매실로 장난쳤지요同居長干里(동거장간리) 같이 장간리에 살며 兩小無嫌猜(양소무혐시) 두 꼬만 스스럼없이 지내다十四爲君婦(십사위군부) 열넷에 당신 아내 되어서는羞顔未嘗開(수안미상개) 부끄러워 얼굴조차 들 수 없었죠低頭向暗壁(저두향암벽) 고개 숙여 어둔 벽만 바라보다千喚不一回(천환불일회) 천 번을 불러도 한 번도 돌아보지 못했지요十五始展眉(십오시전미) 열다섯에 .. 2018. 2. 26.
고마우신 우리 임금님 : 백거이白居易 신악부新樂府 여궁고驪宮高 《악부시집樂府詩集》 卷98 신악부사新樂府辭9에 수록됐다. 백거이 신악부 50수 중 하나다. 우리 천자님이 구중궁월에만 박혀 계시니 이 얼마나 고마우신가? 라고 노래한다. 임금이 싸돌아 댕기면 백성이 피곤한 법인 까닭이다. 임금이 한번 움직이면, 그 기본 행렬 단위는 수천 명이었다. 한데 이들을 부양하는 시스템은 전형적인 약탈형이었다. 약탈형이란 무엇인가? 그들 수행단을 먹여살리는 일을 현지 지방정부에서 했다는 뜻이다. 물론 관련 의복 같은 기초물품이야 그들이 출발전에 미리 서울에서 준비를 했겠지만, 나머지 음식물 같은 것은 그들이 지나는 지방정부 몫이었다. 수천명이 다녀가면, 지방행정은 거덜나기 마련이다. 그들이 먹고 자고 싸는 것만 해도 버티기가 힘이 든 법이다. 화장실도 보자. 수천명이 싸댄다. 그것.. 2018. 2. 26.
맥상상陌上桑 : “내 나인 스물엔 모자라고 열다섯엔 남느니” 맥상상(陌上桑) 漢樂府 日出東南隅 해가 동남쪽에서 떠서照我秦氏樓 우리 진씨 집 누대 비추네秦氏有好女 진씨에겐 아리따운 딸 있어自名爲羅敷 이름을 나부라 하는데羅敷善蠶桑 나부는 누에치기 잘 하네采桑城南隅 뽕을 성 남쪽에서 따는데靑絲爲籠係 푸른 실로 바구니 줄로 삼고桂枝爲籠鉤 계수 가지로 바구니 고리 삼았네頭上倭墮髻 머리엔 왜타계 올리고耳中明月珠 귀엔 명월주 달았네緗綺爲下裙 담황색 비단으로 치마 해 입고紫綺爲上襦 자주색 비단으로 저고리 삼았네行者見羅敷 길 가는 이 나부를 보면下擔捋髭須 짐 내리곤 수염 만지고少年見羅敷 소년이 나부를 보면脫帽著帩頭 모자 벗어 묶은 머리 내 보이네耕者忘其犁 밭가는 이 쟁기질 잊어버리고鋤者忘其鋤 김매는 이 호미질 잊어버리고來歸相怨怒 집에 돌아와 마누라와 성내고 다투니但坐觀羅敷 오직 .. 2018. 2. 26.
“다른 데 시집가소” 진림(陳琳)의 음마장성굴행(飮馬長城窟行) 음마장성굴행(飮馬長城窟行) 진림(陳琳) 1. 출전 : 《옥대신영玉臺新詠》 卷一 2. 작자 진림(陳琳, ?~217)은 한말(漢末) 문학가자 “건안칠자(建安七子)” 중 한 명이다. 일찍이 대장군 하진(何進)의 주부(主簿)를 지내다가 하진이 죽자 원소(袁紹)에게 귀부하여 서기(書記)를 담당했다. 원소가 패몰(敗沒)하자 이번에는 조조(曹操)에게 귀의하니 사공군모좨주(司空軍謀祭酒)가 되어 기실(記室)을 관장하고 나아가 문하독(門下督)이 되었다. 원래 문집 10권이 있었으나 모두 망실되고 그의 시작품으로 겨우 4수가 현존할 뿐이다. 明人이 《진기실집陳記室集》 1卷을 집록(輯錄)하니 이것이 후세에 전한다. 그의 관적(籍貫)에 대해서는 허다한 책에서 모두 강소(江蘇) 양주사람(揚州人)이라 하나 잘못이다. 《자치통감資治.. 2018. 2. 26.
“그림자 되어 그대 따르련만” : 부현(傅玄)의 거요요편(車遙遙篇) 거요요편(車遙遙篇) 부현(傅玄) 출전 : 《옥대신영玉臺新詠》 卷九 작자 傅玄(217~278)에 대해서는 晉書 卷47 列傳 第17에는 그의 傳記가 그의 아들 부함(傅鹹), 부함의 아들 부부(傅敷), 부함의 종부제(從父弟) 부지(傅祗)와 함께 合傳되어 있다. 傅玄의 진서 열전은 밑에다가 첨부한다. 車遙遙兮馬洋洋 수레 아득아득 말은 느릿느릿 追思君兮不可忘 당신 그리며 잊을 수 없네요君安遊兮西入秦 당신 왜 떠나 서쪽 진으로 가셨나요 願爲影兮隨君身 그림자 되어 당신 따르고 싶건만君在陰兮影不見 당신 그늘에 계시니 그림잔 보이지 않네요 君依光兮妾所願 당신 햇볕에 서소서 첩은 바랍니다 傅玄列傳(出自《晉書》) 傅玄, 字休奕, 北地泥陽人也. 祖燮, 漢漢陽太守. 父幹, 魏扶風太守. 玄少孤貧, 博學善屬文, 解鐘律. 性剛勁亮直.. 2018.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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