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노년의 연구1957 안개와 나무: 하세가와 토하구: 송림병풍도 안개낀 산을 오르는 김단장 쓰신 글을 보니,일본의 국보 "송림병풍도松林屏風図[松林屛風圖]"가 생각나 포스팅 해둔다. (솔숲 그림을 넣은 병풍이라는 뜻이니 송림도병풍松林圖屛風이라 해주는 것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싶다. 대세에는 지장이 없다.) 하세가와 토하쿠長谷川等伯[1539-1610]의 작으로 일본 동경국립박물관에 가면 떡 하니 전시되어 있다. (하세가와 토와쿠는 현행 외래어 표기법으로는 하세가와 도하쿠라 해야 한다.)안개낀 속에 어슴프레 보이는 소나무 밭이다. 임진왜란 전후에 그려진 작품으로 일본에서 손꼽히는 산수화의 걸작이다. 실제로 직접 보면 별로인데이 작품은 묘하게 사진을 찍어보면 실견하는 것 보다 낫다. *** 편집자주 *** 저 그림 폼새 보면 추사 김정희 세한도에 대한 지나친 확대 해석이 저.. 2025. 5. 3. 최근의 중국 연구 수준 최근의 중국쪽 고고과학 연구 보고 수준을 보면가히 서구 (미국과 유럽)과 천하를 양분하여 이미 이 쪽 분야에서는 G2의 영역에 들어간 기미가 완연하니, 이쪽 친구들 요즘 논문이 Science Nature를 넘나드는 논문이 거의 달마다 나오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가히 폭발적으로 우선 발굴하는 시료 자체가 세칭 세계 4대 문명이라는 중국 문명의 시료인데다가, 연구의 수준도 최신 기법을 총동원하여 초창기에는 미국 유럽 쪽 연구자와 협동연구로 논문을 내더니요즘은 아예 자기들끼리 탑 클래스 논문을 쏟아내는 형국이라최소한 이 쪽 분야에서는 필자가 보기엔 중국 고고과학은 더이상 한국과 일본이 찝적거릴 수준이 아니다. 필자도 고고학 옆에서 얼쩡거린 사람으로서 십수년 전부터 이런 상황이 전개될 싹을 보았었는데, 그 당시.. 2025. 5. 3. 천황인가 일왕인가: 한 가지 더 고려해야 할 부분 천황인가 일왕인가에 대한 호칭문제에 있어서 항상 있는 그대로 불러주어야 하는가 아니면 우리와의 전통적 관계에 입각하여 일왕으로 낮춰불러야 하는가어느쪽으로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여기서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건너뛴 것이 무엇인고 하니 바로 중국 황제의 호칭 문제이다. 내 생각에는 중국황제의 호칭문제는 천황이냐 일왕이냐의 문제와 연동해야 한다. 천황대신 일왕이라 부르겠다면, 중국왕으로 부르던가, 중국황제라고 부르겠다면 천황으로 불러주는 것이 맞다고 본다는 말이다. 단지 민족 감정만으로 한쪽만 끌어내려 불러버리고 중국황제를 그대로 놔두면, 중국황제 조선왕 일본왕이 되어 이건 조선시대 우리 나라가 중국과 일본을 보던 시각이 되어버린다는 말이다. 뒤집어 이야기 하면 이건 한국과 일본이 대등하다는 .. 2025. 5. 2. 대명률과 삼국시대의 율령 필자는 최근 조선시대 살인사건 조사 문건이라 할 검안檢案을 의학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여기 보면 대명률을 준용하는 이야기가 심상찮게 나온다. 조선시대는 많은 사법적 사안에서 대명률을 준용했다고 알고 있고, 검안을 보면 실제로 그랬다고 보인다. 이건 그냥 필자의 관심사를 연구하다 보니 든 생각이지만, 그러면 삼국시대에는 율령을 만들어 썼을까? 당시 중국에는 이미 율령이 만들어져 작동하고 있었는데, 대명률과 마찬가지로 당시 중국 율령을 준용하지 않았을까? 삼국시대 율령 관련 기사를 보면, 소수림왕과 법흥왕에 "율령을 반포했다"라는 간단한 기사만 존재하고, 백제는 아예 율령 반포에 대한 사료 자체가 없는데백제만 유독 율령체제로 국가를 운영하지 않았을 리는 없고, 삼국의 율령이 전해지지 않는 것은.. 2025. 4. 30. 막시즘처럼 성리철학이 머리에 들어 있던 조선의 유학자들 조선의 유학, 특히 성리학에서 다루는 철학적 개념을 그야말로 공리공론 뜬 구름 잡는 소리라고 치부해 버리는 경우를 많이 보는데, 성리철학은 그렇게 만만한 철학이 아니다. 공리공론으로 치자면야 막시즘 만한 것이 있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막시즘이 만만한 철학이냐 하면 그것이 전혀 아닌 것과 같다. 성리철학은 막시즘 만큼이나 고도화한 철학이고, 초기 교회를 만든 유학자들 정도 되면 이 사람들은 고도의 막시즘으로 무장된 좌파 철학자 정도 되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이 집단으로 교회로 투신하여 들어간 셈인데이를 단순히 성령이나 유학에 대한 염증으로 돌려버리면 끝날 일인가 그 뜻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다산이 천주교 근방에서 어른거리다 사라진 이유를 정확히 잡아내지 못하는 것이다. 초기 교회를 연 사람들은 기독교도이.. 2025. 4. 28. 교회사는 미사가 아니다 교회사는 미사가 아니다. 교회사가 개인과 교단의 신심을 확인하는 도구가 될 수 있겠지만 이 논리가 그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까지 영향을 미쳐서는 안되는 것 아니겠나. 한국의 성리학자들이 왜 18-19세기 엄중한 시기에 굳게 믿어오던 유교적 신념을 버리고 기독교를 택했는가, 그 사상적 동향, 세계사적 의미에 대해서 정확히 파악하는 것을 가장 지금까지 방해해 온 것은 역설적으로 교단이 중심이 되어 수행한 교회사다. 필자의 앞 글, 초기 천주교회는 개신교를 더 닮았다는 이야기, 아마 교회사를 연구하는 분들은 대개 눈치를 채고 있었을 것이다. 누가 봐도 당연한 이야기를 지금까지 전혀 몰랐을 수 있는가? 물론 이러한 관점이 백프로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런 시각의 이야기가 자유롭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2025. 4. 28. 이전 1 ··· 62 63 64 65 66 67 68 ··· 327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