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노년의 연구1957

연구자가 사망한 시점 연구자가 연구자로서 사실상 죽은 것이나 다름없어 붓을 꺾어야 하는 시점이 언제인가 하면, 최신 업데이트에 둔감해지고 하던 소리를 계속 반복하게 될 때다.반대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최신연구 동향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면그 연구자는 죽은 것이 아니다.최신 연구 성과에 대한 반응. 그리고 제정신으로 쓰는 글. 이 두 가지가 노년 황혼의 연구자를 연구자로 지탱하게 해주는 두 개의 기둥인데 이 중 어느 하나가 부러지면 연구자로서 중단을 선언하고 붓을 꺾어야 한다. 2025. 4. 20.
동아시아 연구로 회귀하며 필자가 제대로 연구를 시작한지 30년 동안 화두로 잡고 있었던 것은 어떻게 하면 국제학계에서 어깨를 나란히 해 볼까 하는 것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마왕퇴 연구를 주도한 팽융상 선생을 보면동병상련을 느낀다. 필자 나이 60을 넘어서며 이제 생각해 보면연구에서 일종의 회귀를 택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나이도 먹은 이상 국제무대에서의 평가에 더 이상 연연하지 않고 동아시아 연구로 침잠할 때라는 생각을 한다. 지난 30년 동아시아의 팩트를 영어로 바꿔가며 논문을 쓸 때마다내가 이거 뭐하는 짓인가 생각하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조선왕조라는 나라, 한국사라는 것이 뭐 좀 국제적으로 알려져 있다면 훨씬 쉬웠을 텐데 이런 부분에 대한 상식도 없는 사람들을 상대로 바닥부터 설명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다. .. 2025. 4. 17.
원래는 비슷한 모양 아니었을까 싶은 한국과 일본의 건축물 일본이 자랑하는 국보 중에는 평등원平等院 봉황당鳳凰堂이 있다. 이 봉황당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은 이거 아무리 봐도 불국사 비슷하다는 생각이다. 뭔가 처음 골격은 둘이 같았는데 나중에 양국이 서로 복원을 하면서 달라진 것 아닌가. 처음에는 매우 비슷한 건물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경주의 동궁東宮 월지月池가 있다. 안압지로도 불리웠던 이 동궁 월지를 보면 필자는 항상 일본의 건축양식인 신덴즈쿠리寝殿造[침전조]가 생각난다. 뭐 아니다, 전혀 안 닮았다 이렇게 이야기 한다면 사실 할 말은 없는데, 뭔가 같은 종류 건축물을 양국에서 지어 놨던 것을세월이 흐르니 인간의 욕망이 겹쳐져 복원할 때마다 점점 달라진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는 말이다. *** editor's note .. 2025. 4. 16.
횡산대관横山大観이 병풍에 담은 밤사쿠라[夜桜] 아마도 근대 일본 미술에서 사쿠라를 그린 그림 중 가장 유명한 것 아닌가 싶다. 요코야마 다이칸의 "밤사쿠라" 횡산대관横山大観은 よこやま たいかん이라 읽거니와 경응慶応 4년, 1868년에 출생해 소화昭和 33년, 1958년에 沒한 일본 미술가 화가로 본명을 횡산수려横山秀麿, 요코하마 히데마루よこやま ひでまろ라 하거니와 구성旧姓은 사카이 주정酒井, 술도가였다. 상륙국常陸国 수호水戸출신이라, 미토학파 영향 크게 받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근대 일본화단 거장으로 몽룡체朦朧体, 모로타이もうろうたい라 일컫는다.선묘線描를 抑한 独特한 몰선묘법没線描法을 확립했다 하는데 무슨 말임? 암튼 일본 전통화단 거물인갑다. 저 밤사쿠라 보면 일본답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2025. 4. 8.
일본서기에 비친 가야 옆나라 사서의 예를 들어 미안하지만 우리 기록이 소략하니 어쩔 수가 없다. 일본서기에는 가야 관련 기사가 많다. 이 기사들을 보면 느끼는 것은, 가야 제국들이 과연 신라나 백제 같은 시스템을 원하고 있었는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우리는 그리스의 경우에는 왜 폴리스들이 망할 때까지 마케도니아 같은 대왕국을 만들지 않고, 아테네가 전성기였던 그 순간까지도 동맹체제에 기반한 "아테네제국"을 꾸려갔는가에 대한 해답이 있는가. 이는 주변에 이미 강력한 전제국가가 존재하여 벤치마킹을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음에도 그리스 폴리스들은 그 길을 택하지 않은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가야 소국들은 신라 백제 같은 시스템을 그리로 가고자 했는데 못간 것인가 아니면, 그리로 갈 생각이 애초에 없었던 것인가. 일본서기.. 2025. 4. 5.
막말의 사무라이 칼과 칼집 근간 김단장께서 올리는 칼과 칼집의 글에 공감하는 바 많아 글을 조금 같이 올려둔다. 후쿠자와 유키치가 에도시대 말, 즉 막말 시기 칼차는 관습에 대해 쓴 이야기가 있다.원문에서 발췌하여 정리해서 써 보면 이렇다. 칼은 본래 일신을 보호하기 위해 차는 것인데오랜기간 전쟁이 없었기 때문에 점차 칼날은 완전히 없어졌지만 여전히 겉모양만은 꾸미게 된다. 검술도 모르는 주제에 조상 대대로 전해져 오는 습관이라거나 무사의 심벌이라 하면서 칼을 차고 다닌다. 검술을 알지도 못하면서 칼을 차는 자가 열에 여덟아홉이다. 칼로 먹고 산 사무라이들도 막말이 되면 칼을 쓰지는 않아도 칼집을 꾸미고 다녔다. 고도로 아름다운 세공품 칼과 칼집은 전부 에도시대 것이다. 앞에서도 썼지만 에도시대 사무라이는 칼을 함부로 뽑지 않았.. 2025. 3. 3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