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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1765

왜 공양구를 한꺼번에 묻었을까? by 김태형 퇴장 유물. 글쎄 전부터 그런 생각은 들었지만 전쟁통에 불기佛器를 굳이 파묻고 도망쳐야 했을까. 삼국유사 전후사리조에 사리를 보호하기 위해 숨겨두었다는 내용은 있지만 불기까지 그러했을까. 그러면 황룡사의 경우 그 큰 장육불들은 그냥두고? 수많은 크고 작은 불상들은? 왜 저런 의식기물이 중점적으로 출토되는지 곰곰히 생각해 볼 문제다. 송광사의 경우 사용하지 않는 불기들은 현재 모두 수장고에 보관하고 있고, 그에 앞서서는 불단 밑에 두기도 했다. 용도 폐기된 불구류, 의식구의 정리방법 중 하나가 아니였을까라는 의견에 동의한다. 대표적으로 부석사 무량수전 아미타상이 있는 불단 밑에서 일제강점기 보수공사 중에 40~50여 구 불상이 왕창 출토된 사례를 꼽씹어 생각해 볼 문제다. *** 송광사성보박물관 김태형 선.. 2023. 7. 6.
비단벌레, 날아다니는 금은보화 오래도록 왜일까를 증폭한 비단벌레를 둘러싼 의문은 어느 정도 풀렸다. 미약眉藥이라, 그런 성분이 있다 해도 특히 광동을 중심으로 하는 중국 강남 지역에서는 여성들이 주로 남자들한테 환심을 사기 위한 일종의 마약 성분이 있다 해서 그 날개죽지를 덕지덕지 옷에 달라 다녔다는 증언을 통해 우리는 왜 비단벌레인가 하는 의문을 풀었다. 이제 이를 발판으로 우리는 더 나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비단벌레는 무엇인가? 간단히 이르노니 날아다니는 금은보화다. 이 비단벌레는 그 날개죽지만 장식에 쓴다. 하긴 몸둥아리를 쓰겠는가 발가락을 쓰겠는가 대가리를 쓰겠는가? 오직 오색영롱 찬란한 빛을 발하는 날개죽지를 쓸 뿐이다. 이 날개죽지는 곤충 특유하는 날개가 거개 그렇거니와, 장식품으로 쓰기에는 아주 호조건을 갖추었으니 무엇보.. 2023. 7. 6.
이른바 퇴장유구 불교공양구 이해는 조선왕릉에서 찾아야 한다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야외에는 조선왕릉 석조물이 잔뜩 진열되어 있으니, 구영릉 석물 舊英陵 石物 이란 이름으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 영릉英陵은 경기 여주에 소재하거니와, 조선조 제4대왕 세종과 그의 왕비 소현왕후를 합창한 무덤이다. 본래 영릉 자리는 이곳이 아니다. 지금은 아마도 국정원이 들어간 서울 서초구 내곡동이 그 자리라, 풍수상 길지가 아니라는 판단에 따라 예종 원년(1469) 현재의 자리로 천장遷葬하게 되어 오늘에 이른다.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야외에 전시 중인 석물들은 바로 이곳 제1차 무덤에 쓴 문관 석인상과 무관 석인상 각각 2쌍과 상석床石, 호석 등등으로 구성된다. 현재의 석물들이 온전한 세트 전부인지는 내가 당장 확인하지는 못하지만 어찌하여 이들 .. 2023. 7. 5.
《내가 보는 위만조선과 낙랑》(6) 위만은 쿠데타 성공한 프리고진이다 우리는 위만조선 사회를 접근하는 한 방식으로서 이른바 비교사 방법을 적용해 저 먼 반대편 남월왕국을 살피고, 그 인접 북쪽 장사국 마왕퇴 한묘를 거쳐, 그리고 중원 문화 한복판인 중산국을 여행했으니 이제 여전히 실체가 오리무중인 위만조선을 해명할 길을 열었다고 본다. 출현하지 아니하는 위만조선은 어떠해야 하는가? 첫째 그 창업주 위만을 필두로 그 아들로 사서에 이름이 남지 아니하는 제2대 왕이 묻힌 곳은 철저히 중국적 색채가 나는 무덤을 썼고, 그 안에 묻혔으며, 부장품은 온통 동시대 서안과 낙양에서 통용하는 물품으로 깔았다. 시체는 금루옥의金縷玉衣라 해서 금실로 꼬아 엮어만든 옥을 걸쳐야 하며, 주변으로는 벽璧과 같은 동시대 중국에서 생산한 옥제품으로 넘쳐나야 한다. 둘째, 그 왕릉은 산속에 들어가며 .. 2023. 7. 5.
호암자전에 토대하는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 학력 2014년 3월에 초판 1쇄가 간행된 《삼성 창업자 호암 이병철 자서선 호암자전湖巖自傳》(나남)은 본인 집필인지, 혹은 구술을 누군가 정리한 것인지는 자신이 없지만, 이는 그의 생전에 그의 이름으로 간행된 자서전으로 설혹 대필이라 해도 그 자신이 감수했을 것이므로 그 내용은 그 자신의 생각 혹은 구술을 그대로 담았다고 해도 좋다. 그 부록으로 호암연보가 수록됐으니, 신동훈 교수께서 식민지시대 지식인들의 교육과정을 시리즈로 다루고, 그에서 이 이병철도 다뤘기에 이 연보에 보이는 관련 기술만 적출해 소개한다. 1910. 2. 12(음력 1. 30) 경남 의령군 정곡면正谷面 중교리中橋里 723번지에서 이찬우李纘雨(1874. 19. 16 生)와 안동권씨(1872. 4. 24 生)의 둘째 아들로 출생. 조부 이홍.. 2023. 7. 5.
추사를 만든 경성제국대학 일본 교수 후지츠카 치카시藤塚隣 2006.10.08 08:00:00 "추사의 발견은 고증학 연구의 부산물"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 사거 150주년이라는 바람은 후지츠카 치카시藤塚隣(1879-1948)라는 다소 생소한 일본사람을 실어나르고 있다. 종래 한국학 연구자들 사이에서 후지츠카는 무명이 아니었다. 그의 이름은 늘 추사와 같이 호명呼名됐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추사를 근대적인 학문연구의 대상으로 반석에 올려놓은 인물이 후지츠카였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인이라면 초동급부樵童汲婦도 그 이름을 알게 된 김정희를 무명과 망각의 그늘에서 건져내 일약 스타로 길러낸 주인공은 누가 뭐라 해도 후지츠카였다. 하지만 그가 추사를 주목하기 시작하던 무렵에는 후지츠카의 꼬리를 부여잡아야만 했던 추.. 2023.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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