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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2421

절차탁마한 두보, 나오는 대로 지껄인 이백 정확한 인용인지는 자신이 없다. 두보는 시를 쓰려면 만권의 책을 읽어야 한다고 했다. 실제 그의 작품을 보면 이런 절차탁마의 온축이 그대로 드러난다. 내 보건대 두보는 시를 짖고도 그 이후에 끊임없이 수정했다. 그 옛날 지식인들이 이른바 전고를 동원하는 원천은 기억에 의한 것이었다. 하지만 기억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언제건 오류의 위험성에 노출한다. 이런 위험성을 내 보기엔 두보는 사후 검열로 바로잡았다. 이를 검서檢書라 하는데, 두보 시에 이 말이 보인다. 이는 뱉으면 그대로 시가 되었다는 이백과 뚜렷이 대비한다. 두 사람 시를 비교하면 두보시가 어렵고 이백시가 편한 까닭은 이에서 말미암는다. (2013. 12. 23) *** 당(唐)나라 두보(杜甫)의 시 〈봉증위좌승장 이십이운(奉贈韋左丞丈二十二韻).. 2023. 12. 24.
[로물루스·레무스 형제 spinoff] (1) 언덕으로 올라가는 도시, 그리고 두 개의 city wall 앞선 이야기에서 쌍둥이 형제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어디를 터 잡고 도시를 만드느냐 하는 문제로 결국 존속살인 사건으로 발전했다는 말을 하면서 로물루스는 팔라티노 언덕을, 동생 레무스는 아벤티노 언덕을 선호했다 했으니, 이는 결국 권력투쟁에 다름 아니다. 비단 로마만이 아니라 언덕 hill은 인간 생활조건, 특히 도시 발달에서 매우 긴요한데, 내가 늘 말하듯이 사람의 일상 거주공간이 평야지대로 내려온 것은 근대 이후다. 무엇보다 평야지대는 충적지라, 걸핏하면 강물이 범람하는 지역인 까닭에 치수治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인간이 일상으로 거주할 곳이 못 되는 저주받은 땅이다. 그래서 인간은 본능으로 높은 곳으로 기어올라가게 되어 있다. 하지만 무한정 높은 곳으로 갈 수는 없으니, 적당한 높이로 올라가야 한다.. 2023. 12. 24.
[로물루스·레무스 형제] (2) 동생을 살해하고 왕이 된 쌍둥이형 로마 신화에서 로물루스 Romulus 와 레무스 Remus 는 쌍둥이 형제다. 그에 의하면 형 로물루스가 동생 레무스를 죽이고는 로마시와 로마 왕국을 건국한다. 이 건국신화를 그대로 실제 사건으로 받아들인다면 이 사건은 기원전 753년 무렵 로마가 건국되기 전에 성립이 되어 있어야 하지만, 신화는 신화일 뿐. 다만, 이 이야기는 기원전 3세기 후반 기록에는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확실히 신화로 자리잡은 것만은 확실하다.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로마 근처 고대 라틴 도시 중 하나인 알바롱가 Alba Longa 라는 데서 태어난다. 그들의 어머니 레아 실비아 Rhea Silvia는 베스타 신녀 Vestal Virgin다. 아버지는 누미토르 Numitor라는 왕이다. 하지만 그는 동생 아물리우스 Amul.. 2023. 12. 24.
[로물루스·레무스 형제] (1) 육감화가 니콜라 미냐르 앞 그림은 아비뇽의 미냐르 Mignard d'Avignon 라고도 일컫는 17세기 프랑스 화가 니콜라 미냐르 Nicolas Mignard (1606~1668) 작품으로, 종교화와 신화화에 특출난 재능을 보인 그답게 로마 왕정 탄생을 이야기하는 한 장면을 참말로 생동감 있으면서 육감적으로 구상화했다. 1654년 작인 이 그림은 양치기 파우스툴루스 Faustulus 가 테베르 강가에서 늑대 젖을 먹고 있는 로물루스 Romulus와 레무스 Remus 쌍둥이 형제를 발견하고는 그들을 안고서 집으로 데려와서는 그의 부인한테 넘기는 장면을 극화한다. 어느 쪽이 마누라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아이를 잡으려는 쪽이 마누라 아닐까 싶고 그 옆 큰 가슴통을 내어놓은 여인은 처제인가? 암튼 망토에 싸서 안고 온 아이 둘이 .. 2023. 12. 24.
꼴통 서희徐熙 졸기 고려사절요 제2권 목종 선양대왕穆宗宣讓大王 무술 원년(998), 송 진종眞宗 함평咸平 원년·란 통화 16년에 보이는 서희 죽음을 전하면서 붙인 그의 열전이다. 가을 7월에 태보 내사령太保內史令 서희徐熙가 졸하였다. 서희는 필弼의 아들이다. 성품이 엄하고 성실하였다. 나이 18세에 갑과甲科에 발탁되어 성종 때 왕의 서경 행차를 호송하였는데, 성종이 미행微行으로 영명사永明寺에 가려 하자 서희가 상소하여 간하니, 성종이 이내 중지하고 안장 얹은 말을 내려 주어 그를 포상하였다. 계사년(993)의 전쟁(거란의 침입)에서 국서를 받들고 소손녕蕭遜寧의 진영에 이르러, 통역하는 사람을 시켜 서로 회견할 예절을 물으니, 소손녕이 말하기를, “나는 대조大朝의 귀인貴人이니, 마땅히 뜰에서 절해야 한다." 하였다. 서희가 .. 2023. 12. 23.
서희와 강감찬, 그 공통분모 강동6주 두 사람은 막연히 한 세대 정도 차이나는 줄 알았지만, 실제 생몰년을 비교하면 서희徐熙가 942~998년이고 강감찬姜邯贊은 948~1031년이라 불과 여섯 살 차이라, 실상 같은 시대를 호흡했다. 두 사람 사이가 뜨게 보이는 까닭은 저들이 역사에 두각을 드러낸 고려와 거란간 전쟁에서 주역이 된 시기가 달랐기 때문이다. 서희가 그의 이름을 영원히 아로새긴 계기는 익히 알려졌듯이 993년, 요 성종聖宗 통화統和 11년, 고려 성종成宗 12년, 요나라가 소손녕을 총대장으로 하는 고려 정벌군 80만 대군을 일으켰을 때라, 이때 서희는 적진으로 혈혈단신 들어가 소손녕과 담판을 벌려 이른바 강동6주(강동육주)를 획득했다. 같은 문신인 까닭에 둘은 비슷한 관로를 거쳤다. 강감찬은 성종 3년, 983년에 과거 급제해 .. 2023.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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