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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2287

강화도 묘지사 중심 건물이 혹 천황당天皇堂??? 고려사절요 제15권 / 고종 안효대왕 2(高宗安孝大王二) 정해 14년(1227), 송 보경 3년ㆍ금 정대 4년ㆍ몽고 태조 22년 에 이르기를 ○ 겨울 10월에 왕이 외제석원(外帝釋院)에 행차하여 재추에게 명하여 천황당(天皇堂)에서 초제(醮祭)를 지내어 승전을 빌고, 또 선경전(宣慶殿)에 무능승도량(無能勝道場)을 베풀었다. ○冬十月,幸外帝釋院,命宰樞,設醮于天皇堂,以祈兵捷,又設無能勝道場于宣慶殿 이라 했으니, 외제석원이라면 흔히 불교 사찰로 알건만, 이로써 보면 도관道觀을 겸했다는 사실이 명백하다. 이 외제석원에는 천황당天皇堂이라는 데가 있었고 거기에서 초제醮祭를 지냈음을 안다. 천황당이라는 말은 말할 것도 없이 천황대제天皇大帝에서 유래한 말로 천황 혹은 천황대제란 천상 세계를 관장하는 최고신으로 북극성을 신.. 2023. 8. 29.
도교 인장 道教「北極驅邪院印」考辨 道教「北極驅邪院印」考辨 內容提要: 法印是道教最重要的一種法器, 它象徵著道教所信仰的三界神靈及職司的威權. 近年來四川地區出土ㆍ問世了一批道教的法印, 但卻因缺乏研究, 未能引起學術界ㆍ道教界的關注. 本文通過對「北極驅邪院印」的辯證, 尋其歷史沿革ㆍ宗教意義及文化價值, 以求證於學界同仁. 關鍵詞:道教;北極驅邪院;法印;天書雲篆 作者簡介:李遠國, 男, 1950年生. 現任四川省社會科學院哲學研究所副所長ㆍ研究員, 研究生部教授ㆍ碩士生導師. 先後編著出版學術著作十餘部, 主要有《四川道教史話》ㆍ《道家氣功養生學》ㆍ《中國道教氣功養生大全》ㆍ《道教與氣功:中國養生思想史》(日文版)ㆍ《道教靈寶派沿革史》ㆍ《道教法印寶藏》ㆍ《水的七德:李遠國2001年日本演講集》(日文版). 與他人合著八種著作. 在《世界宗教研究》ㆍ《中國史研究》ㆍ《道教學探索》等國內外學術刊物上, 先後發表.. 2023. 8. 28.
도교 법인 道教法印 道教法印 道教法器。又稱“神印”、“印篆”。象征天界、神仙權威的印章。系模仿古代帝王玉璽和官府印章而成。通常以金屬、玉和木鐫成。還在道教教團形成前,方土和巫師已經模仿官府、軍隊、朝廷使者用印的方式創爲印章,施用於治病,解除等活動中,如《황신월장지인黃神越章之印》即是著名的一枚,後爲道教繼承。道教教團形成時亦曾創制印章,傳說張陵創五鬥米道時即鐫陽平治都功印,張氏子孫世代相傳沿用至今。正一、靈寶、上清、淨明等各道派都有自己的印。 인印 認爲行法用印猶人間刑政施行必用官印,“法者之爲言,正也,正其邪也。亦猶德禮之有政刑以導之齊之也。故章表奏申關牒符檄又必假天府之印以示信也。印則各有師傳者,欲天地神祇人鬼知所行之法有所受之也”(《靈寶玉鑒》卷一)。故神印不僅代表仙界職司的威權,也是各道派傳授有緒的信物。依印文內容而言,印約可分四類。第一類以尊神名號或想象中的仙界職司爲印文,如道君玉印、元始符命.. 2023. 8. 28.
부동명왕不動明王과 검인劍印 佛學大辭典 / 劍印 佛學大辭典 【劍印】 (印相)有二種:一,不動明王之印,劍在鞘中之形,右手擬劍左手擬鞞者。二,大日如來之劍印。大日如來劍印曰:「二手當心合掌,屈二頭指中節橫相跓,以二大母指並押二頭指上節,如劍形。」 2023. 8. 28.
[김태식 추천도서] 후쿠자와 유키치 자서전 후쿠자와 유키치 자서전 허호 역 | 이산 | 2006년 03월 17일 후쿠자와를 두고 이런말 저런말 오간다. 그의 정한론征韓論을 겨냥해 후쿠자와를 성토하는 분위기 일색이다. 하지만 그의 정한론도 시대의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그래야 그 시대가 보인다. 한반도에서 내가 지금 위정척사파가 되어 텍스트를 읽을 수는 없다. 이 자서전은 위대한 근대문학의 유산이다. 후쿠자와에 대한 당신의 모든 지식 선입견 다 버려라. 네 눈으로 읽어라. 너가 직접 후쿠자와와 대면하라. 나쓰메 소세키에 쏟아부은 정열, 십분의 일만 투자해라. 2023. 8. 28.
[김태식 추천도서] 백거이 신악부 백거이의 신악부 50수와 진중음 10수 중당 사회를 비추다 김철수 역주 | 백산출판사 | 2007년 07월 15일 동아시아 문화사는 백낙천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동파 소식이 출현한 이후 낙천의 자리를 동파가 대신하지만 낙천이야말로 진정한 동아시아 세계의 첫 월드스타였다. 흔히 그의 시를 논하기를 대중과 호흡을 같이 했다 하면서 그 증좌로 발표 전에 자기 시를 이웃집 아줌마한테 보여주며, 평을 부탁했다고 하거니와 그는 단순히 대중적이 아니었고, 그들의 아픔을 대변하고자 한 흔적이 역력하다. 물론 그가 진정으로 이러했느냐는 별개지만 말이다. 낙천이라면 흔히 비파행과 장한가를 떠올리나, 또 그것이 낙천 문학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문학의 금자탑임에 틀림이 없으나, 내 보기엔 그의 엑키스는 이 신악부에 도사린다... 2023.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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