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역사문화 이모저모 2371 아 다르고 어 다른 소조상 도용陶俑, 부여 정림사지의 경우 “1979년 실시된 정림사지 재발굴 조사에서는 서회랑지 남서쪽의 기와 폐지 수혈과 금당지 외곽에서 100여 점이 넘은 소조상편이 출토되었다. 최초의 발굴 보고서에서는 흙으로 만든 인물의 두상, 상반신, 하반신 등 다양한 형태의 니상泥上을 ‘도용陶俑’이라 불렀다. 그러나 용俑은 장송의례에 사용하는 명기明器를 가리킨다. 정림사지는 무덤이 아닌 절터이므로 그곳에서 출토된 소형의 소조상들을 도용이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치 않다.” 어느 책 한 구절이다. 이 구절에는 내가 보기에는 사찰에 대한 결정적인 오해가 내재했다. 절이란 무엇인가? 부처님 사당[廟]이다. 그 중심을 차지하는 탑은 무엇인가? 부처님 무덤[墓]이다. 사당과 무덤인 곳에 묻은 소조상이 그의 말을 빌린다면 명기임은 명약관화하다. 간단히 말해 저 소조.. 2023. 7. 13. 추사학은 근대에 접근한 과학인가? by 허홍범 [추사가 활동한 19세기 전반의 학술수준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2층 중 코너 앞에서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는 아호雅號도 많이 썼지만, 인장 또한 많이 사용했습니다. 심정인審定印은 서화 작품의 감정에 사용되는 인장입니다. 이 가운데 여기 보시는 은 ‘김정희가 교정보고 읽은 책’에, 은 자신이 읽은 책에 찍은 인장입니다. 그러니까 개념적으로 명확히 구분되는 것이죠. 이것이 고증학의 본질입니다. 아는 것은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추사가 활동한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까지의 학술 수준을 오늘날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하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거의 근대 과학 수준에 육박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생.. 2023. 7. 10. 말각 방형 抹角方形, 개 똥폼 고고학(1) 암것도 아닌 걸, 또 개념어도 될 수 없는 걸 전문용어라는 이름으로 만들고 또 그게 무슨 대수가 되는양 그런 말을 남발하면서 그네가 종사하는 학문이 고상한 그 무엇이 되는양 치부하는 경향은 동서고금 막론하고 같거니와 저 말각방형만 해도 그런 대표 증좌라 간단히 말해 특정 구조물이 공중에서 내려다 보았을 때 평면이 방형, 곧 네모꼴이되 그 네 모서리는 직각이 아니라 둥글게 처리했다 해서 흔히 고고학도가 쓰는 말이다. 주로 우물이나 지붕 같은 데서 발견된다. 말抹이란 손으로 목졸라 죽이다는 뜻이니 일상어 중에는 말살抹殺이라는 말로 남았다. 따라서 말각이란 모서리를 죽였다는 뜻이다. 저건 개념어 축에도 못든다. 그냥 한번 모서리를 둥글게 처리한 평면 네모꼴 정도라 하고 한 번 지나가면 그 뿐이다. *** 아이.. 2023. 7. 7. 영묘사(흥륜사) 출토 불기에 대하여 by 김태형 조선후기 감로도를 보면 무진장 많은 불기와 의식구가 보인다. 문제는 제 불기들이 매일 사용되지 않는다는 사실. 떡이나 밥을 담은 불기는 별도의 지정된 창고에 보관하기도 하는데 그림에서처럼 대바라, 금강저 등등은 어디다 보관할까. 절집에 사는 사람들은 잘 안다. 바로 불단 밑이다. 요즘은 플라스틱 상자에 넣어 보관하는 예가 많지만 과거에는 사과박스같은데 담아 불단 밑에 두었다. 고려 때는 어찌했는지 모르지만 이번처럼 다량의 불구류가 발견되는 사례는 분명 십중팔구는 큰 불사가 없을 때 일상적으로 보관했던 거라 보는게 정확할 거다. 따라서 전쟁이니 뭐니 하면서 큰 의미 부여를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향후에라도 이런 사례가 더 나온다면 물론 앞선 사례도 충분히 검토해 봐야겠지만그저 일상적인 보관상태였다가 이렇.. 2023. 7. 7. 절집에서 보는 절집, 소위 퇴장유물에 대하여 by 김태형 영묘사(흥륜사)터에서 확인된 불기의 용도가 더 확실해진다. 다른 사찰 사례를 살펴보더라도 이 불구들은 대부분 의식용으로 보관하던 중 재난을 만나 현재 상태로 출토된것이다. 특히 전혀 쓸모없을 것 같은 것들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는 나중의 불사에 사용하기 위해 모아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삼국유사의 眞定師.孝善雙美에서 진정의 어머니가 집안에 남아 있던 쇠솥 하나를 시주승에게 시주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이렇게 모은 시주물들은 과연 어떻게 보관되었을까. 이 또한 불단 밑에 보관한다. 불단이라고 하니 대웅전 수미단만을 생각하겠지만 절집 살아본 사람들은 안다. 각 전각은 물론 스님들이 기거하는 방에도 작은 불단을 마련한 경우가 많다. 특히 그 불단밑에는 작은 공간들이 있어 지금은 스님들이 신도들한테.. 2023. 7. 7. 왜 공양구를 한꺼번에 묻었을까? by 김태형 퇴장 유물. 글쎄 전부터 그런 생각은 들었지만 전쟁통에 불기佛器를 굳이 파묻고 도망쳐야 했을까. 삼국유사 전후사리조에 사리를 보호하기 위해 숨겨두었다는 내용은 있지만 불기까지 그러했을까. 그러면 황룡사의 경우 그 큰 장육불들은 그냥두고? 수많은 크고 작은 불상들은? 왜 저런 의식기물이 중점적으로 출토되는지 곰곰히 생각해 볼 문제다. 송광사의 경우 사용하지 않는 불기들은 현재 모두 수장고에 보관하고 있고, 그에 앞서서는 불단 밑에 두기도 했다. 용도 폐기된 불구류, 의식구의 정리방법 중 하나가 아니였을까라는 의견에 동의한다. 대표적으로 부석사 무량수전 아미타상이 있는 불단 밑에서 일제강점기 보수공사 중에 40~50여 구 불상이 왕창 출토된 사례를 꼽씹어 생각해 볼 문제다. *** 송광사성보박물관 김태형 선.. 2023. 7. 6. 이전 1 ··· 220 221 222 223 224 225 226 ··· 396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