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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2284

[유성환의 AllaboutEgypt] CT 스캔이 밝혀낸 아멘호텝 1세의 비밀 1881년 오늘날의 룩소르(Luxor) 시에 해당하는 테베(Thebes) 서안 데이르 엘-바흐리 공동묘역에서 훗날 ‘왕실 미라 은닉처’(Royal Cache)로 더 유명해질 귀족 분묘(TT 320) 하나가 발견되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 귀족 분묘에서 신왕국 시대(기원전 1550-1069년) 왕족 미라 50구가 한꺼번에 발견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들 미라는 제3 중간기에 해당하는 제21 왕조(기원전 1069-945년) 시대 신관들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도굴꾼 약탈을 피해 이들의 원래 매장지에서 이곳으로 옮겨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통해 당시 도굴 폐해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졸지에 제18 왕조 시대에 카르낙 대신전에서 아문의 대신관으로 활약한 피네젬 2세(Pinedjem II)와.. 2023. 1. 16.
사마르칸트가 이세민한테 바친 오리알 황금복숭아 by 이태희 국립중앙박물관 샤퍼가 자신의 책 제목을 "사마르칸트의 황금복숭아"라고 한 데서도 알 수 있듯 복숭아는 동아시아로 들어온 서쪽 문물의 상징 같은 과일이다. "정관21년(647) 강국康國(사마르칸트)에서 황도黃桃를 바쳤는데 크기가 거위알 만하고 그 색이 금과 같아 금도金桃라고도 불렀다.(大唐貞觀二十一年, (康國)其國獻黃桃, 大如鵝卵, 其色如金, 亦呼爲金桃.)" - 통전通典 변방邊防 서융西戎 가운데 위 기록에서도 볼 수 있듯 이 황금복숭아라는 게 요즘 우리가 먹는 황도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당시 거위알 만하다고 했는데, 요즘 거위가 알을 작게 낳는 것은 아닐 테고 더 크게 품종이 개량된 것일까? 비록 "황금"은 아니지만 복숭아가 중국에 들어온 것은 그 이전이다. "한무내전漢武內傳에 이르길, “서.. 2023. 1. 16.
신작로가 낸 능산리고분, 폐결핵이 준 선물 이를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능산리 고분군 출현은 부여-논산 구간 신작로 개발의 부산물이다. 한데 재미있는 점은 능산리 고분군이 한동안 알려지지 않은 사연이다. 이곳에 선산을 조성한 지방 유지의 압력 때문에 비밀이 새어나오지 못했다고 한다. 어떻든 이런 비밀을 군청에서 접한 세키노 일행은 능산리 고분군 현장으로 간다. 이때가 1916년 7월이라 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계절이었다. 이 조사에 동행한 이를 세키노는 “야쓰이 문학사와 고토後藤 공학사”라고 한다. 야쓰이는 1909년 조사에서도 동행한 인물이다. 한데 이번에는 고토라는 사람이 새로이 동참했다. 고토는 누구일까? 그는 고토 게이지(後藤慶二·1883~1919)다. 35세 젊은 나이에 요절한 그는 일본 건축사에서는 도쿄의 도요타마감옥豊多摩監獄 .. 2023. 1. 15.
흑판승미黑板勝美, 고문서학과 고고학의 만남 이 친구가 흑판승미黑板勝美..쿠로이타 카츠미(현행 외래어표기법상으로는 구로이타 가쓰미)다. 1874년에 태어나 1946년에 향년 73세로 졸했다. 도쿄제국대학 출신이나 늦은 나이에, 아마 서른살인가에 대학을 졸업했다. 그의 업적은 초인 그 자체다. 박사학위 논문이 고문서 양식론이다. 그는 일본 고문서학의 아버지다. 사료 정리에 혼신을 쏟았다. 제도로서의 역사학과 제도로서의 문화재정책을 수립한 일등 공신이다. 미친 듯이 일했고 미친듯이 써제꼈다. 열성적이었다. 자비로 유럽 문화재 현장을 시찰했다. 이집트를 보고는 고고학 겸업을 선언했다. 혼자 배운 고고학을 실현할 현장을 찾다가 마침내 조선에 상륙해 지산동 무덤을 파고 능산리 고분을 팠다. 그의 발굴보고서는 그래서 동시대 세키노 사단의 그것과는 달리 무척이.. 2023. 1. 14.
퇴계 전문박물관으로서의 도산서원, 문화재 보수 잘못해서 신세 조진 서원 원장 도산서원을 배알한 기문〔謁陶山書院記〕 이익李瀷(1681~1763), 《성호전집星湖全集》 제53권 기記 내가 청량산淸凉山에서 발길을 돌려 도산을 방문할 때 신택경申澤卿이 함께하였다. 반나절쯤 길을 가서 온계溫溪를 지날 적에 길가에서 멀리 서원을 가리키며 물으니, 답하기를, “노老 선생의 선대부先大夫 찬성공贊成公과 종부從父 승지공承旨公, 형 관찰공觀察公 세 분을 제사하는 곳입니다.” 하였다. 영남 사람들은 선생을 지극히 존경하여 선생의 어버이와 스승에 대해서도 모두 추중推重하고 향모向慕함이 이와 같다. 하물며 선생의 유적遺迹이 있고 가르침을 베푼 곳을 사람들이 우러러보고 공경함이 마땅히 어떠하겠는가. 다시 작은 고개를 지나 먼저 애일당愛日堂을 들렀으니, 바로 이 농암李聾巖이 살던 곳으로 매우 아늑하고 절묘한.. 2023. 1. 13.
[AllaboutEgypt] 성가족의 이집트 방문(3) 부바스티스와 삼각주 지대 by 유성환 앞선 회차에서 말씀 드린 것처럼 성가족의 이집트 피난을 가장 자세하게 기록한 사람은 알렉산드리아 23대 대주교 교황 테오필로스(Theophilus: 384-412년)입니다. 그의 회고록과 이를 바탕으로 작성된 『콥트 정교회 성인열전』(Coptic Synaxarium)에 따르면 성가족이 이집트에서 첫 번째로 방문한 도시는 오늘날의 카이로(Cairo)에서 동북쪽으로 약 100킬로미터 떨어진 텔 부바스타(Tell Bubasta)입니다. 이 도시는 이름이 고양이 여신 바스테트(Bastet)를 주신으로 섬긴 고대 이집트 도시 부바스티스(Bubastis)에서 유래합니다. 헤로도토스(Herodotus: 기원전 484-425년)는 자신의 저서 『역사』(Histories)에서 부바스티스 신전이 이집트에서 가.. 2023.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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