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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1753

거란과 여진, 정복으로 성장한 왕조는 정복이 끝나면 몰락한다 정복왕조는 거의 비슷한 성장 곡선을 겪는데 창업주가 한창 개고생하며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힘의 제국을 이룩하며 이를 바탕으로 두어 세대가 지난 다음에 전성기를 맞이했다가 급속도로 몰락한다. 창업기는 겨를이 없어 거개 땅 따먹기에 주력하고 그러다가 두어 왕이 지난 다음에 거개 재위 오십년 안팎에 달하는 군주가 등장해 그 정복을 완성하고는 내실 다지기에 들어간다. 하지만 모든 정복왕조는 이 전성기를 지나면서 그 성장보다 빠른 속도로 곳곳에서 분열을 일으키다 결국 자멸하고 만다. 왜 이런 현상이 빚어질까? 성장동력을 상실하는 까닭이다. 정복왕조 빛나는 급성장 비결은 말할 것도 없이 정복 그 자체다. 하지만 언제까지 마상馬上정치를 할 수 없는 노릇이고 또 무엇보다 이제는 내실을 다질 때라 해서 내정에 골몰하나 그.. 2024. 2. 13.
왜 조선의 이데올로그들은 이색을 개망신 주었는가? 역성혁명에 동참도, 동의도 못한 목은 이색은 충신의 길을 선택하지도 않았다. 신왕조 개창에 죽음으로 저항할 수 있었지만 그는 나약한 지식인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지성계에 차지하는 위치는 실로 막중해 이미 당대에 유학의 종장, 오야붕으로 통했다. 역성혁명 무렵 이색을 죽이라는 주장이 빗발쳤지만 이성계가 죽일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명분이었다. 죽여서 골치 아픈 지식인 한 명 처단하는 일로 끝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명분이 약했다. 여진족에 다름 없는 성계는 찬탈이란 오명을 두려워했다. 그 찬탈을 선양으로 미화하려면 목은이라는 이름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 역시 목은은 거부했다. 실로 소극적이었지만 그는 결코 찬동하지 않았다. 이런 그는 씁쓸히 고려가 패망하는 장면을 목도하고는 4년인가를 더 살다 생을 마감.. 2024. 2. 13.
애국이 나의 종교라는 허정 기대한 대로 한국 근현대사 실록이다. 실록은 사관에 따라 역사가 주물되기 마련이다. 이 실록은 간행 사십년만에 어찌하여 내 수중에 들어왔다가 곳곳이 파열한다. 서문에서 허정은 애국이 나에게는 종교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이 애국심은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이 말하는 바로 그것이다. 씨벌 릴리젼 civil religion 으로서의 페이트리아티즘 patriatism. 난 허정이 루소를 읽지 않았다고 본다. 읽었다 해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고 본다. 그런 그가 말하는 애국심 논리 구조가 루소의 그것이라는 사실이 나로서는 경이롭기만 하다. 어디에서 습득했을까? (2018. 2. 13) *** related article *** 또 하나의 회고록 《내일을 위한 증언-허정 회고록》 또 하나의 회고록 《내일을 .. 2024. 2. 13.
[부마駙馬 소배압] 종모성從母姓, 근친혼을 유지하는 족외혼 사회의 규율 고려거란전쟁에서 거란 쪽 군대 수뇌진, 특히 그 대빵으로 소배압蕭排押과 소손녕蕭遜寧이 집중으로 등장하는데, 두 사람은 친형제라, 배압이가 형이다. 동생 소손녕蕭遜寧은 실상 字라 본명은 소항덕蕭恆德이다. 거란 역사를 보면 황족을 성씨를 야율씨耶律氏라 하고, 황비족을 소씨蕭라 하는데, 본래 거란은 성을 쓰지 않았다가 당말 이후 야율아보기가 요를 건국하던 무렵에 그 사는 곳 이름을 따서 저런 성씨를 쓰게 된다. 앞서 지적했듯이 황제를 필두로 하는 황족을 야율씨라 하고 황비족을 소씨라 하지만, 이는 족외혼을 가장하기 위한 쇼에 지나지 아니해서, 두 씨족이 저리 되면 뒤죽박죽 콩가루가 되어 실상 야율씨라 하지만 소씨가 되고, 소씨가 야율씨가 되기도 하니, 성씨는 아버지를 물려받는다는 이 조건이 무척이나 편리해서 .. 2024. 2. 12.
개선장군 강감찬 맞으러 예성강변까지 버선발로 달려나간 현종 서전에서부터 거란군을 맞아 승승장구한 강감찬은 마침내 현종 10년, 1018 2월 1일 기축에 김종현과 합세해 귀주성 동쪽 벌판에서 최후의 대승을 거두고는 곧바로 이 기쁨 우리 왕님께 바치겠다 해서 전열을 다시 정비하고는 개경 귀환길에 오르니, 그의 행차는 닷새 뒤인 같은달 6일 갑오에는 이미 예성강을 넘었다. 그 남쪽에 영파역迎波驛이라 해서 주로 공무로 오가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국립호텔이 있었다. 하도 기쁨에 계웠던지 강감찬은 쏜살 같이 달렸지만, 개경에서 급보가 내려왔다. 천천히 오란 전갈이었다. 잉? 하는 강감찬한테 현종 특사가 말했다. 왕께서 직접 개선식 시켜준다고 영파역에서 대기하고 계시니 제발 천천히 속도 조절하며 내려와야 합니다. 우리도 준비를 좀 해야 할 거 아닙니까? 그러니 천천히 오소... 2024. 2. 12.
김종현金宗鉉, 제3차 고려거란전쟁의 숨은 영웅 김종현金宗鉉이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역사에 등장하기는 현종 2년 4월 6일 기유라, 고려사 현종본기 해당 항목에 이르기를 황보유의皇甫兪義와 최창崔昌 둘다 시어사侍御史로 임명하고, 유소柳韶를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로, 김종현金宗鉉과 박종검朴從儉을 모두 감찰어사監察御史로 임명했다는 기사가 그것이다. 이런 김종현이 같은 현종본기에 의하면 그 10년 3월 7일 갑자甲子에는 이응보異膺甫가 우복야右僕射로, 강민첨姜民瞻이 응양상장군 주국鷹揚上將軍 柱國으로, 유참柳參이 예빈경禮賓卿으로 전근한 그날 예부원외랑禮部員外郞으로 이름을 다시 드러낸다. 다시 그가 덕종 즉위년 7월 26일 경술에 단행된 인사 명단에 보이니 장극맹蔣劇孟을 병부상서兵部尙書로, 홍빈洪賓을 형부상서刑部尙書로, 이유섬李有暹을 공부상서工部尙書로, 김종현金宗鉉을 .. 2024.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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