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역사문화 이모저모 2405 신사의 나라에선 적선도 정장 차림으로? 이 사진에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다. A well-dressed beggar running alongside King George V’s coach, 1920. 곧, 영국왕 조지 5세가 탄 마차와 나란히 달리는 잘 차려입은 거지라 하며 촬영 시점은 1920년이라 한다. 영국이 신사의 나라라서인가? 거지도 정장을 해야 하나? 하긴 더구나 적선을 받고자 하는 대상이 왕이니 오죽했겠는가? 턱시도라도 차려입을 것을. 저 사진 내력을 좀 더 검색하니 아래와 같은 글이 걸린다. https://rarehistoricalphotos.com/beggar-alongside-king-george-v-1920/ A beggar running alongside King George V's coach, 1920 - Rare Hi.. 2024. 7. 15. 히다스페스 전투, 알렉산더가 조우한 코끼리 부대 기원전 326년 히다스페스 전투[Battle of the Hydaspes]는 알렉산드로스(알렉산더) 대왕에 의한 마지막 위대한 전투였고 그것은 그의 놀라운 군사 경력에 알맞은 절정이었다. 위대한 아케메네스 왕조를 무너뜨린 후, 알렉산더는 그가 인도를 침략할 수 있는지 맛보기로 결심했다. 그는 군대를 남쪽으로 돌려 침략을 시작했다. 그는 모든 면에서 거인이었던 포로스Porus 왕의 영토에 도달하기 전까지 거의 저항을 받지 않았다. 포로스 왕은 그가 전투에서 마케도니아 사람들을 이길 수 있다고 믿을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그의 군대는 2만-5만 명의 보병, 2천 명의 기병, 300대 전차, 그리고 무엇보다 마케도니아 사람들이 거의 경험하지 못했을 동물인 200마리 코끼리로 무장했다. 그러나, 알렉산더는 이 .. 2024. 7. 15. 파체리 미라[Mummy of Pacheri], 방부 기술의 최고 스타 프톨레마이오스 시대 Ptolemaic Period (기원전 305~30년경)에 살았던 키 약 1.65m 남자 미라다. 방부 처리 embalming 의 품질과 보존 상태로 눈에 띄고 주목할 가치가 있는 표본이 되었다. 미라는 방부 처리 기술을 이해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완벽한 예이며, 이것이 바로 방문객 관심을 끄는 이유일 것이다. 이 미라의 매력을 더해주는 것은 박물관 내 위치이기도 하다. 실제로, 큰 석관실 뒤쪽 작은 벽감에 위치한다. 소위 오시리스 지하실 꼭대기에 있는 미라는 특정한 희미한 빛에서만 볼 수 있으며 마치 바쁜 박물관에서 마치 휴식이 필요한 것처럼 다른 유물로부터 격리되어 잘 숨어 있다. 엑스레이 분석 결과, 이 미라는 성인 남성 미이라로 확인됐다. 급하게 쓴 그의 이름은 파체리Pache.. 2024. 7. 14. 2차대전이 끝나고 귀국하는 미국 군인들 1.4후퇴 때인가 흥남부두 피난 풍경이 아닌가 하겠지만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군 병사들을 뉴욕 항구로 실어오는 장면이다. 저렇게 많은 병사가 전장터로 동원되었다. 관련 자료를 더 검색하니 이런 사진도 보이는데, 아마 같은 배 아닌가 한다. 1만2천 명이 탔다는 해설이 보인다. 나아가 아래와 같은 사진도 있는데, 규모로 보아 앞과는 다른 배 같다. 이 사진은 배경 설명이 있는데, 1945년 6월 21일 미국 군인들을 뉴욕항으로 귀국시키는 퀸 메리 Queen Mary 호 갑판과 선미 모습이라 한다. 영국의 대형 여객선 '퀸 메리'가 1만4천 미군으로 가득 차 있다고. 메리 여왕과 엘리자베스 여왕은 1940년 3월 21일부터 1,243,538명 병력을 수송하여 전 세계 곳곳을 누볐다고 한다. 2024. 7. 14. 로마왕이 된 에트루리아계 세르비우스 툴리우스 Servius Tullius 타르퀸Tarquin이 부상하자 왕비 타나퀼Tanaquil은 그가 숨을 쉬고 있을 때 재빨리 그를 궁전으로 옮겨갔다. 나중에 그녀는 궁전 창문에서 모인 군중에게 연설을 통해 타르퀸이 죽기 전에 왕이 될 다른 사람을 지명했다고 말했다. 리비우스Livy가 "왕뿐만 아니라 원로원과 백성 모두에게 최고의 존경을 받았다"고 진술한 사람은 세르비우스 툴리우스Servius Tullius였다. 첫 행동으로, 툴리우스는 권력 쟁취에 눈이 먼 왕의 암살한 자들을 체포했다. 세르비우스 툴리우스 역시 에트루리아인이었지만 타르퀸과는 친척 관계가 아니었다. 그는 왕이 뒷배를 봐주는 젊은이 프로테게protégé로 입양되어 궁전에서 자랐다. 성인이 되자 그는 신임받는 왕의 조언자가 되었다. 그는 초라한 배경을 딛고서 왕의 딸과 결.. 2024. 7. 14. 결혼은 꼭 남녀끼리만? 꼭 그렇지도 아니해서 결혼은 꼭 남자와 여자 사이에 이루어져야 하는가? 로마인에게는 그렇지 않은 듯하다. 적어도 독점적이지는 않았다. 고대 그리스 세계에서 pederasty는 유명하다. paederasty라고도 하는 이 페데라스티는 흔히 소년애라 옮기지만 암튼 드물지 않은 관행이었다. 고대 세계에서 저와 같은 동성 간 성적 관계는 흔했다. 특히 로마 문화에서는 남성이 여성과 결혼하는 동시에 공개적으로 동성 관계에 참여하기도 했다. 2024. 7. 14. 이전 1 ··· 50 51 52 53 54 55 56 ··· 40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