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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1753

제주에서 운양 김윤식을 생각하다 1. 터에도 인연이라는 것이 있는 모양입니다. 제주 시내-여기서는 옛날 제주의 중심이랄 수 있는 구제주-를 어슬렁거리다가 만난 곳, '제주시 소통협력센터'란 이름이 붙은 여기가 조선 말 한문학 대가이자 온건개화파 거두 운양 김윤식(1835-1922)이 유배와 살던 곳이더군요. 동도서기東道西器 곧 동양의 정신과 서양의 기술을 소통, 협력시켜보자는 주장을 펼친 운양이 살던 곳에 소통협력센터가 들어서다니 인연도 이런 인연이 있을까요(억지스럽다고 하면 그것도 할 말은 없습니다만). 2. 김윤식은 을미사변 당시 외무아문대신으로 명성황후 폐위에 일조했다는 죄를 입어 1898년부터 1901년까지, 제주에 약 3년간 유배와 있었습니다. 여기 올 때 인천에서 화륜선을 타고 왔다니 그것부터 근대 느낌 물씬 나는데, 그가 .. 2024. 2. 13.
AI로 증폭한 안중근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는 사진들이 고화질일 리는 없다. 해상도 구리기 짝이 없어 50kb도 안 되는 것들이다. AI 증폭 기술로 이들을 얹어봤다. 왜곡도 적은 듯해 그대로 인쇄용으로 사용해도 무방할 듯 하다. 이전에 나는 사진은 고화질로 찍어야 한다 하면서 고화질은 줄일 순 있지만 저화질은 늘릴 순 없다 했지만 그 말은 철회한다. 2024. 2. 13.
안서도 둔전을 현화사에 시주했다는 기사 고려사절요 권3 현종원문대왕顯宗元文大王을 읽어가다 보면 그 11년, 1020년 8월에 왕이 안서도安西道 둔전 1,240결을 현화사玄化寺에 시주하니 양성兩省에서 두 세 차례나 논박했지만 왕이 받아들이지 않았다[八月. 以安西道屯田一千二百四十結施納于玄化寺. 兩省再三論駁, 不納.] 고 하거니와 이 말이 무슨 뜻일까? 난 이것이 무슨 뜻일가 몹시도 궁금하다. 혹 이에 관한 선행 연구가 있기는 할 법한데 찾아보지는 않았다. 안서도라면 고려사 지리地理3에 보이는 안서대도호부安西大都護府를 말할 것이어니와 그 수도는 해주海州라, 이는 지금도 도시 이름으로 남았거으니, 이에 의하면 이곳은 태조 왕건이 군郡 남쪽에 큰 바다가 있어 해주海州라는 이름을 내리고 성종 2년(983)에 12목牧을 설치할 때는 해주에도 그 하나가 설.. 2024. 2. 13.
1925년 풍납토성을 답사한 일본 인류학자 기요노 겐지[清野謙次] 일본의 저명한 형질인류학자로 기요노 겐지라는 인물이 있다. 청야겸차 清野謙次 라 쓴다. 1885년에 태어나 1955년에 사망했다. 교토제국대학 출신으로 독일 유학 뒤에 귀국해서 모교인 교토제국대학 교수가 되어 활동하면서 일본인은 아이누 후손이라는 주장을 부정하고 일본인 독자 형성론 혹은 혼혈론으로 주창해 열렬한 칭송을 받았다. 수집벽이 정신병적이라, 사찰 보물을 훔쳐내다가 잡혀서 유죄판결을 받아 면직되는가 하면, 이 사태로 당시 교토제국대 총장이면서 한국고고학계 일각에서는 여전히 신화적 인물로 추앙하는 하마다 코사쿠 빈전경작 濱田耕作 이 사임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 친구가 길러낸 제자 중에 731부대장이 있어, 이런 인연을 발판으로 생체실험에 깊이 간여한다. 전후 처리에 미국과 일본의 밀약으로 극적으로.. 2024. 2. 13.
AI로 복원한 도산 춘원 민세 단재 나혜석 AI 증폭 기술을 이용해 저화질 구린 서비스 사진 서비스가 이뤄지는 근세기 안재홍 안창호 이광수 박한영 신채호 나혜석 을 증폭해 봤다. 다른 데서는 문제가 안 생기는데 나혜석 할매는 얼굴 그림자를 수염으로 인식한다. 저런 건 후손질 포토샵을 활용해야 한다. 나머지는 그냥 써먹어도 왜곡 논란이 없을 정도로 완벽하다. 2024. 2. 13.
왕가도, 거란 선제공격을 주장한 매파(2-2) 두 건의 찬반투표 현종이 죽고 그의 아들 덕종德宗이 재위하던 시절 이야기다. 왕가도는 덕종의 장인이기도 하다. 덕종이 칭제하기 시작한 그 원년 1031년 6월 3일, 내내 고려와는 문제를 일으킨 거란 6대 황제 성종聖宗이 사망하고 그 아들 야율종진耶律宗眞이 즉위하니 이가 7대 황제 흥종興宗이다. 종주국으로 섬기는 왕조 황제가 사망했으니 공식 사절 조문단을 파견해야 했다. 그 소임을 공부낭중工部郞中 유교柳喬와 낭중郞中 김행공金行恭이 뽑혀 가게 됐다. 한데 거란 내부에 문제가 생겼다. 이를 틈타 부마駙馬 필제匹梯가 동경東京을 근거지로 삼아 난을 일으킨 것이다. 이 사태를 어찌 할 것인가? 이때 왕가도는 대 거란 강경파 선두주자에 서서 “거란은 우리와 우호를 맺고 예물도 교환하지만 매번 우리를 집어삼키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2024.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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